5살 손자에게 그림책을 읽어줍니다. 그림책 속에서 나의 동심을 발견하기도 하고 삶의 지혜를 얻기도 합니다.
몇 해 전 도쿄의 크레용하우스를 찾은 적이 있다. 아이들 책이 가득한 그곳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한 사람이 오래 붙들어 온 신념이 모여 있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 공간을 만든 이는 일본의 작가 오치아이 게이코다. 그는 어린이책을 통해 평화와 생명, 환경을 이야기해 온 동시에 차별과 폭력에 맞서 목소리를 내온 실천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랑하니까 사람>을 읽는 일은 한 권의 그림책을 읽는 시간을 통해 그가 평생 던져온 질문을 마주하는 일이 된다.

▲책 표지오치아이 게이코의 사랑하니까 사람 ⓒ 너머학교
어린이책의 얼굴을 한, 어른을 향한 질문
이 책은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의 형식을 하고 있다. 실제로는 어른을 향한 질문으로 가득하다. 사랑은 따뜻하고 좋은 감정이라는 익숙한 정의를 흔들어 놓는다. '사랑이란 뭘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이런 대답을 한다.
본 적도, 만진 적도 없지만
사실은 보고 있고, 만지고 있는지도 몰라.
푹신하고 부드러워, 막 빨아서 쓰지 않은 새 수건처럼.
하지만 가슬가슬하고 따끔따끔한, 좀 아픈 것인 듯도 해.
엄마와 아빠를 사랑하면서도 때로는 귀찮고 성가시게 느끼는 마음, 아픈 할머니를 마주하며 도망치고 싶어지는 마음, 도움을 주지 못한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까지, 작가는 사랑의 이름 아래 감춰왔던 감정들을 그대로 드러낸다. 사랑을 깨끗하게 정리하지 않고, 흔들리고 모순된 마음 전체 안에서 묻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정직하다.
나는 이 책을 손자 로리와 함께 읽었다. 그림책이지만 다소 어려운 내용이어서 중간중간 멈춰 이야기를 나눴다. 할머니 댁에 가는 장면과 부모를 사랑하는 대목에서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물었고, 로리는 잠시 생각하다 "좋아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아이다운 그 대답은 진심이었다. 사랑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아이는 생각하고 있다. 함께 있고 싶고, 보면 반갑고, 이름을 부르고 싶은 마음. 사랑의 출발은 분명 그곳에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지점에서 멈추지 않는다.
남자가 남자를 사랑해.
여자가 여자를 사랑해.
그런 것을 동성애라고 한다고 들었어
다들 '불쾌해'라고 말하지만
'그저 수의 문제가 아닐까' 하고 너는 생각하지
......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 사랑하는 것은
그냥 멋진 일일뿐인데
오치아이 게이코가 말하는 사랑은 가족 안의 감정을 넘어 더 넓은 세계로 나간다. 동물보호센터에서 사라지는 생명, 피부색과 차이에서 비롯되는 두려움, 성소수자를 향한 낯선 시선과 침묵, 장애가 있는 이들을 향한 무관심까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외면해 온 장면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묻는다. 사랑의 반대는 무엇일까. 미움이나 전쟁이 아니라, 어쩌면 '무관심'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 지점에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품격이 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서 시작해, 끝내 그를 외면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불편하고 낯설어도 시선을 거두지 않는 것. 오치아이 게이코가 평생 이어온 평화와 환경, 생명에 대한 실천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다.
작가의 사랑에 대한 질문은 계속된다. 그중에서 내 마음에 가장 와닿은 문장이 있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걸까?'
'어떻게 하면 자신을 좀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은 정답이 아니라 오래 붙들 질문이다
이 책은 사랑의 정의를 내리지 않는다. 대신 우리를 질문 앞에서 생각하고 머물게 한다. 나는 누구를 사랑한다고 말해왔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존재를 못 보고 지나쳐 왔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로리가 말한 "사랑은 좋아하는 거야"라는 대답은 그래서 더욱 깊이 와 닿는다. 다시 로리에게 물었다.
"
이 책을 쓴 작가는 할머니가 아파서 못 움직이고 가족을 힘들게 했을 때, 귀찮아서 도망가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겼다고 했잖아? 로리도 그럴까?"
"아니 아니, 그건 아니야. 나는 할머니 돌봐 줄 거야. 나는 우리 가족을 사랑하니까"
손자인 로리는 사랑이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족을 사랑하는 자기의 사랑은 무지갯빛이라고도 말한다. 그 마음이 타인을 향한 관심과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그 물음은 어른에게 남겨진다.
<사랑하니까 사람>은 결국 어른이 자신을 다시 읽게 만드는 책이다. 사랑은 아마도 하나의 답이 아니라, 끝내 포기하지 않고 바라보려는 마음의 방향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