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접이 중심이 된 동학교단은 남접 중심의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기로 결정하였다. 최시형은 각포 두령들은 9월 18일 보은의 청산(靑山)으로 모이라는 동원령을 내렸다. 그리고 <초유문(招諭文)>을 발령했다.
최시형은 이 자리에서 하늘의 뜻에 이르렀음을 지적하면서 북접이 남접의 전봉준과 합세하여 무력항쟁에 나설 것을 명령하였다. 이로써 동학혁명은 남북접이 함께 봉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혁명 참여를 결정한 최시형은 신속하게 진영을 갖추도록 했다. 전경주의 포를 선봉, 정규석 포를 후군, 이종훈 포를 좌익, 이용구 포를 우익, 손병희를 종군통령으로 임명하여 각 포를 총지휘도록 하였다. 손병희는 북접군 총사령이 된 것이다.
때를 기다리던 북접 소속 동학도들은 9월 18일 각포 두령들의 지휘 아래 청산으로 모였다.
9월 18일에 신사(神師) - 교도참살의 보(報)를 듣고 각포 두령을 소집하여 청산에 모이게 하니, 이때에 장석(丈席)에 모인 자 수만인이었다. 이때까지 북접 각 포에서는 아직 신사의 명교(命敎)를 기다리고 동(動)치 아니하였더니 이때에 손병희·손천민 등이 장석에 거의(擧義)하기를 청한대 신사 가로되 "인심이 곧 천심이라 차는 곧 천운 소치(所致)니 군 등이 도중을 동원하여 전봉준과 협력하고 사원(師寃)을 신(伸)하며 오도의 대원을 실현하라" 하시고 손병희에게 통령기(統領旗)를 주어 일제히 전선에 서게 하였다.
손병희는 북접 소속의 통령이 되어 10만 명에 이른 동학농민군을 지휘하는 위치가 되었다.
손병희가 북접의 중군통령으로 임명되어 직립 동학혁명의 최전선에 참여한 것은 그의 생애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동학에 입도하여 수행과 포교 그리고 교조신원운동의 중견간부에서 이제 비록 훈련받지 않은 오합지졸이지만 보국안민·척왜척양의 기치를 든 혁명군의 리더로 바뀌었다. 중국 청대의 홍수전(洪秀全) 등 역사상 종교지도자가 혁명가로 변신한 경우는 적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