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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3이었을 때, 수학이 너무나 어려워 울었다. 혼자서 도저히 수학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학교수학교사에게 과외를 하는 짝꿍은 시험 성적이 쑥쑥 오르는데 가난한 나는 '수학의 정석'을 들고 울기만 했다. 여름방학이 되자 어머니는 나를 대구에 있는 대학생 친척집으로 보냈다. 2주 동안 나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대구에서 수학공부를 했다.

사교육을 둘러싼 논쟁은 늘 격하다. 어떤 이는 사교육을 교육을 망치는 주범으로 보고, 어떤 이는 사교육이야말로 현실을 반영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공교육에 있었던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학습형 사교육을 보내지 않았다. 내가 공교육에 몸담고 있는데 학교를 믿고 가고 싶었다. 그러나 내 여동생은, 그 아이 역시 별로 사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자기 아이 4명을 스케줄을 짜가며 사교육의 도움을 받았다.

사교육을 무조건 악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현실을 놓치는 일이다. 사교육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괴물이 아니라 공교육이 채워주지 못하는 빈틈을 시장이 파고들어 만들어낸 정교한 시스템이다. 부모는 이상적인 교육론보다 아이가 오늘 어디에 들어가야 하는지, 어떤 기준을 통과해야 하는지부터 생각한다. 아이 역시 "공부를 잘하려면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는다. 이 선택이 모두 비뚤어진 욕심 만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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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은 하나로 묶을 수 없다. 예체능, 취미·교양, 학습형 사교육은 성격이 다르다. 피아노, 미술, 체육 같은 영역은 아이의 취향과 소질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지만 교과 사교육은 대체로 입시와 직접 연결된다. 실제로 소란과 갈등의 중심에 있는 것도 대부분 학습형 사교육이다.

문제는 학습형 사교육이 아이의 배움을 돕는 수준을 넘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필수 장치처럼 굳어졌다는 점이다. 학원은 선택이 아니라 보험처럼 작동하고 부모는 그 흐름에서 빠지지 않기 위해 애쓴다. 결국 사교육은 교육의 보완재라기보다 불안을 관리하는 시장이 되어버렸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오로지 변별력과 경쟁에 매몰된 '학습형 사교육'이다. 이것은 교육이라기보다 입시라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한 점수 획득 기술에 가깝다. 부모들은 이 기술을 사지 않으면 내 아이만 낙오될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이 열차에 승차한다.

문제는 결국 입시와 연결된다. 대학 서열과 선발 경쟁이 유지되는 한 부모들은 "현재를 먼저 통과해야 한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래교육, 대학 차별화, 새로운 인재상 같은 말이 아무리 멋져 보여도 당장 아이를 어디에 넣고 어떻게 준비시킬지 모르는 부모에게는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현실을 건너뛰는 교육 담론은 쉽게 기만처럼 보인다.

질문은 다시 '평가'로 돌아온다. 상대평가와 정답 찾기 중심의 수능 체제를 그대로 둔 채 사교육 대책을 논하는 것은 공허하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역량은 정답의 재현이 아니라 질문의 생성이다. 인간 고유의 사유 능력을 측정하는 방향으로 평가의 축이 이동하고 대학 서열화의 벽이 낮아질 때 비로소 사교육은 불안의 시장에서 성장의 조력자로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단체들이 사교육비 통계를 내고 폐지를 외치지만 현실은 요지부동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교육은 교육의 문제인 동시에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학 서열이 공고하고 한 줄 세우기식 입시가 건재하며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의 경로가 결정되는 구조 아래서 사교육 수요를 억제로 막는 것은 기만이다. 입시라는 종착역의 신호등을 바꾸지 않은 채 사교육이라는 열차만 멈추라고 하는 것은 부모들에게 낭떠러지로 떨어지라는 말과 같다.

이제 공교육과 사교육의 관계를 정직하게 재정립해야 한다. 공교육은 마땅히 모든 아이의 기초 학력을 책임지는 최후의 보루이자 사회적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 단 한 명의 아이도 배움의 낙오자가 되지 않도록 품는 것이 학교의 제1책무다. 반면 사교육은 특정 분야에 재능이 있거나 더 깊은 탐구를 원하는 이들의 선택적 보완재로 존재해야 한다. 사교육이 공교육의 앞지르기 수단이나 대체재가 되어 학교를 무력화하는 기형적 구조를 바로잡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사교육은 우리 교육의 실패를 비추는 거울이다. 거울을 깬다고 해서 본래의 모습이 바뀌지는 않는다.

#사교육#공교육#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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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교육공동체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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