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6재단 기억의 수호자 후원의 밤2026년 1월 28일, <기억의 수호자> 후원의 밤을 열어 재난피해를 겪은 청소년·청년을 응원하는 마음을 모았습니다. ⓒ 4·16재단
올해 첫 벚꽃봉오리를 보았습니다. '봄이 왔구나.' 2014년 4월 16일 이후에는 봄꽃을 한껏 즐기기 어렵습니다. 안산에서는 흐드러지게 핀 벚꽃 아래 웃으며 사진을 찍던 250명의 청소년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가슴 시리게 벚꽃을 바라볼 이들이 있음을 압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열두 번째 봄인데도 매번 어렵습니다.
벚꽃 피는 봄이면 가슴 시린 이들
봄이 되면 더 그리운 이들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걱정하시니, 떠난 00의 몫까지 잘 살아야 한다.'는 무거운 위로와 책임을 어깨에 지고, 베갯잇이 다 젖도록 울어도 부모님 앞에서는 한번을 티 내지 않던 형제자매들입니다.
'OO가 다녔던 학교이니, 저라도 졸업하려고요'라고 결연하게 이야기한 이도 있습니다. 진학하거나 직장을 다니기 시작할 때,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유가족임을 밝히는 것이 좋을지를 묻기도 했습니다.
혹 세월호참사를 혐오하는 이들이면 어쩌나 싶어 너무 조심스러워합니다. 형제자매들은 또래 모임을 통해 서로에게 묻기도 하고, 답을 얻기도 하며, 지혜롭게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살아냈습니다. 그런데도 사회적 참사 유가족으로 사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고, 곁에서 가늠하지 못할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2016년 4월 16일 기억식에서 한 청년이 유족 어머니에게 찾아와 인사를 건네었습니다. 떠난 아이의 벗이었던, 생존 청년이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인사를 건네고 싶었지만, 혹여나 상처가 될까 봐 망설이다 이제야 인사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마음 깊이 안아 위로했지만, 참사 현장에서 살아 돌아온 생이 참 무거웠겠구나 싶었습니다.
제가 만난 재난을 겪은 청소년, 청년의 삶이 모든 이들을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최선을 다해 두 몫을 살겠다고 애쓰는 이들도 있고, 때때로 통화로 '이제는 서른이나 되었다'며 '잘 지내고 있다'고 씩씩하게 답하는 청년도 있습니다.
세월호 어머니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직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청년들도 있다고 합니다. 재난 참사를 통해 경험한 사회는 생명을 지켜주지 않는 신뢰할 수 없는 사회였고, 너무도 참혹한 민낯에 어떠한 도전도 어려웠을 겁니다.
잘 지내다가도 어느 날 문득 트라우마로 공황장애를 겪거나 신체화된 증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트라우마로 인한 어려움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오래도록 흔적은 남았고, 이를 홀로 견디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4.16 Memorial Supporters4·16재단은 세월호참사를 경험한 청소년·청년 피해자(형제자매, 생존 학생)가 참여해,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운영하는 '4.16 Memorial Supporters'를 진행한 경험이 있습니다. ⓒ 4·16재단
트라우마를 홀로 견디는 청년들
4.16세월호참사를 포함해 사회적 참사를 경험하며, 우리가 건네는 위로에 대해 돌아봅니다. '네가 희생자의 몫까지 살아내야 한다'는 위로의 말, 오히려 책임의 무게까지 얹혀 위로가 될 수 없었던 일, 살아 돌아온 삶의 무게가 무거워 유가족과 다른 이들 앞에 서기가 어려웠던 생존 청년들의 삶들을 곁에서 보며, '어떤 위로의 말과 행동이 적정한가'라는 질문을 갖게 합니다.
재난 참사를 경험해 일어서기조차 어려운 피해자들에게 우리 사회는 쉽게 회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피해 당사자들에게 묻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 그들의 속도에 맞추어 곁이 되어 기다리는 일이 그들에게 필요한 위로와 응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함께'가 사라졌을 때는 믿기 싫었어요. 없어진다는 말을 딱 들었을 때는, 내가 여태까지 그곳에서 봤던 사람들, 보내온 시간들, 이게 싹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요즘 출퇴근길에 '우리함께'가 있던 곳 근처를 지나가거든요. 딱 한 곳 밖에 안 보여요. 저기는 '우리함께'가 있던 곳인데.…
-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 온다프레스, 2024) 중
4.16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마주해 발간한 책에는 형제자매의 삶이 있었던 '우리함께' 공간이 사라진 사실에 대한 아쉬움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열두 해가 지난 지금은'우리함께'를 포함해 피해자를 위한 공간은 대부분 사라지고 겨우 하나의 공간만이 남았습니다. 모두 재정적 어려움으로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형제자매가 이야기한'그곳에서 봤던 사람들이 사라지는 느낌'이라는 말이 오래도록 숙제처럼 마음에 남았습니다.
청년들과 손잡는 기억의 수호자
매해 크고 작은 참사가 발생합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참사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습니다. 진상규명 활동이 길어지면서, 살아남은 재난 경험자의 삶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봄이면 더 그리운, 재난을 직접 겪은 생존 청년과 재난으로 형제자매를 잃은 형제자매의 삶이 그러합니다.
그들이 바깥세상으로 나서는 일이든, 상처받은 치유자로 다른 참사 피해자를 돕는 일이든 '기억의 수호자'들이 그들의 속도에 맞추어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더살림'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첫 월급을 타면 후원을 하고 싶었다던 스스로를 '세월호 세대'라고 부르는 청년, 그날의 나를 잊지 않는 것이 '기억을 이어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변영주 영화감독, 기억함으로써 산 자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박태웅 대표, 재난 참사를 겪은 청년들은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증거라고 이야기하는 박래군 등 2026년 4월을 맞은 현재 총 135명이 '기억의 수호자'가 되었습니다. 결심한 동기는 저마다 다르지만, 재난을 경험한 사람들의 곁이 되어 사라지지 않고 함께 하겠다는 마음만은 같았습니다.
'더살림 프로젝트'는 올해 6월 청년들 곁을 찾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서는 최종적으로 416명의 <기억의 수호자>가 필요합니다. 재난 참사를 기억하는 개인부터 기업, 단체를 포함해 당신이 마음을 내어 <기억의 수호자>가 되어주시길. 재난 경험 청년들의 손을 잡아주십시오.
#기억의수호자 함께 하기 :
https://416foundation.org/guardians-of-mem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