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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 김치를 담은 두부김치 도시락 ⓒ 임경화
도시락 만들어 파는 일을 한지 19년 차에 접어들었다. 매일 다른 종류의 도시락을 만들고 있지만 대부분의 고객이 10년 이상 단골이다 보니, 혹시라도 식상하거나 지루하지 않을까 신경이 쓰여 메뉴 선정에 공을 들이는 편이다. 이를테면 계절에 따라 김치의 종류를 달리 하는 거다.
한식 도시락에서 기본 중의 기본은 바로 김치다. 보통의 경우는 배추 포기김치를 가지런히 썰어 준비하지만, 김치찜이거나 김치볶음밥 등 주요리에 김치가 쓰인다면 무 석박지를 만들기도 하고 겨울에는 단단하고 아삭한 무생채를 만든다. 그러나 긴 겨울이 지나 3월 말쯤 되면 어떠한 김치도 좀 질린다고 느껴진다.
뭔가 새콤하고 신선한, 금방 담가 기분까지 전환되는 그런 김치가 생각난다. 고맙게도 요맘때면 새벽 시장에 신선한 열무와 얼갈이가 등장한다. 내가 사는 부천 인근 일산에서 재배되는 열무는 '일산 열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데 지척이다 보니 싸고 풍성한 열무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오늘 새벽시장에서 튼실하고 맛있어 보이는 열무 세 단과 얼갈이 두 단을 샀다. 열무김치 하면 물론 열무가 주재료이지만, 열무만 하는 것보다 얼갈이를 5대 3 정도로 같이 만들면 보기도 좋고 맛도 더 깊어진다. 마침 오늘 주요리가 두부김치 도시락이다. 볶음용 김치는 푹 익은 배추로 하고 도시락 첫칸에 상큼한 열무김치를 담을 요량이다.
먼저 열무와 얼갈이를 새끼손가락 만큼씩 듬성듬성 썰어 깨끗하게 두어 번 씻는다. 조심해야 할 것은 바락바락이 아니라 설렁설렁 손가락 사이로 물이 빠져 나가도록 해서 씻어야 한다. 봄 열무는 연하고 부드러워서 힘주어 씻다 보면 김치에서 풋내가 난다고 친정엄마께서 알려주셨다.
소쿠리에서 물기를 조금 뺀 후, 2년 정도 간수를 뺀 천일염을 열무와 얼갈이 사이사이 골고루 뿌려가며 절여 놓는다. 30분 정도 절여질 동안 풀죽을 쑨다. 열무김치는 반드시 찹쌀 풀죽을 묽게 끓여서 양념과 비벼야 제맛인데 미리 준비해 식혀두면 시간이 절약된다.
다음은 믹서에 양파와 청양고추, 마늘 한 줌과 생강 몇 알 그리고 사과 두 개를 잘라 넣은 다음 멸치액젓을 두 컵 정도 넣고 갈아준다. 곱게 갈린 양념을 양푼에 붓고, 식혀둔 풀죽을 섞은 다음 고춧가루를 섞어서 저어 놓는다. 시간이 좀 있어야 고춧가루가 풀어지고 고운 빛깔의 빨간색이 난다.
다음은 절여 놓은 열무를 두어 번 뒤섞은 후 물에 한번 씻어 건진다. 짠 물이 조금 빠지는 동안 쪽파 한 단과 양파 몇 개를 썰어 준비한다. 이러면 다 되었다. 큼직한 양푼에 열무와 얼갈이를 넣고 쪽파와 양파도 넣고 불려 둔 양념을 넣어 살살 버무려준다. 이때도 너무 세게 버무리지 말고 양념이 고루 묻을 수 있게 설렁설렁 버무린다. 양념은 한꺼번에 붓지 말고 반 정도 붓고 빛깔 봐 가면서 부으면 실패를 줄일 수 있다.
봄이 오면 이 맘 때 꼭 먹어야 하고, 어김없이 생각나는 열무 얼갈이김치. 도시락에도 담고 우리 식구들도 먹고 이웃과도 나누려고 조금 넉넉히 만들었다. 이렇게 또 한 계절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봄 열무김치 ⓒ 임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