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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남편의 주문이 늘었다. 제철 음식이나 입맛에 맞는 요리를 해달라는 부탁이다. 한두 번에 먹을 수 있는 요리는 언제든 OK지만, 양이 많은 음식은 은근히 부담이 된다. 지난 3월 31일, 오후에 출근 준비를 하던 남편이 넌지시 한마디 건넸다.

"김밥 좀 싸주면 좋겠다. 요즘엔 유부초밥도 잘 안 싸주네."

나는 남편의 주문을 바로 머릿속에 저장해 두는 편이다. 그날 저녁 마트에 김밥 재료를 사러 갔다. 진열대를 지나는 도중 파릇파릇한 냉이를 발견했다. 문득 냉이 김밥도 싸볼까 하는 생각에 한 팩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김밥과 유부초밥 재료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김밥이나 유부초밥은 즉석에서 해 먹어야 제맛이 난다. 밤낮으로 일하는 남편이라 집에 있는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마침 오전 근무만 하고 오후에 쉬는 날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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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3일, 글을 통해 알게 된 작가가 부산에서 대구로 올라왔다. 실제로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봄 소풍을 가듯 김밥을 싸고 따뜻한 국을 끓여 준비했다. 여러 과일도 도시락에 예쁘게 담았다. 그날 오전엔 남편이 집에 있었다. 김밥을 썰고 난 꽁다리를 옆에서 주워 먹으며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더 신나 했다.

그 모습을 보니 어릴 때 엄마 옆에서 김밥 꽁다리를 서로 먹으려고 오빠하고 엎치락뒤치락했던 기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도시락을 만들고 남은 김밥은 통에 차곡차곡 담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내가 집을 비워도 남편의 맛있는 점심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담아 두었다. 그날의 주인공은 부산에서 올라온 작가였고 남편은 조연이었다. 이번에는 조연이 아니라 당당하게 주연으로, 김밥의 주인공을 남편으로 캐스팅하게 되었다.

남편이 원하는 김밥은 두 가지였다. 당시 먹었던 땡초 김밥과 묵은지 김밥이 맛있었는지 아니면 부러웠는지 똑같은 주문을 해 왔다. 나는 거기에 하나 더 보태 냉이 김밥도 싸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냉이는 요즘 겨울에도 시중에 나온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해 겨울에도 나오지만, 한데서 나는 봄 냉이와는 천지 차이다. 겨울을 땅속에서 이겨낸 그 생명력을 다른 어디에 견줄 수 있을까.

남편은 화물 운송업에 종사한다. 업무가 많아 하루를 통으로 쉬는 날이 드문 편이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도착할 시간에 맞춰 김밥을 싸기 시작했다. 뭐니 뭐니 해도 금방 만든 음식이 최고의 맛이다.

남편 위한 도시락

김밥재료 냉이 김밥, 땡초 김밥, 묵은지 김밥의 재료
김밥재료냉이 김밥, 땡초 김밥, 묵은지 김밥의 재료 ⓒ 황윤옥

가장 먼저 냉이를 끓는 소금물에 데친 후 잘게 썬 다음 참기름과 참치 액젓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땡초는 씨를 바르지 않고 잘게 썰어 간을 한 다음 기름에 볶는다. 그러면 매운맛과 감칠맛이 확 올라온다. 2년 된 묵은지 한 포기는 굵은 양념만 살살 털어내고 김치 꼭지만 잘라둔다. 주재료가 이 세 가지이기 때문에 부재료는 맛살, 햄, 우엉, 그리고 오이와 단무지만 준비하였다. 오이는 길게 잘라 소금에 절인 다음 씻어서 물기를 빼고, 맛살과 햄은 센불에 볶아두었다.

냉이 김밥은 김의 거친 면이 위로 오게 하여 흰밥을 고루 펴준 다음 냉이를 듬뿍 넣고 다른 재료를 올린 뒤 말아준다. 땡초 김밥도 같은 방법으로 하면 된다. 묵은지 김밥은 밥 위에 김치를 한 장 올린 후 다른 재료를 다 넣은 다음 김치를 한 장 더 올려서 말아준다. 이렇게 김밥 10줄이 완성되었다. 김이나 다른 재료가 10줄 기준으로 판매되다 보니 한 번 만들면 양이 많아진다. 먹기는 쉬워도 싸기는 늘 망설여진다.

오전 10시부터 김밥을 싸기 시작했는데 다 끝나고 보니 12시 20분이었다. 남편에게 깜짝 전화를 걸었다.

"마쳤어? 어디야?"
"마지막 집까지 다 배송하고 이제 차에 탔어."
"우리 오늘 데이트할까? 김밥 싸서 한실 공원으로 갈 테니까 거기에서 만나는 건 어때?"
"좋지. 그럼 우리 봄 소풍 가는 거네."

전화기 너머에서도 남편의 좋아하는 모습이 다 보이는 듯했다. 남편이 주차하는 곳이 공원 근처이고, 나도 큰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 거리다.

마지막으로 동전 육수로 만든 파국을 두 개의 통에 담고 김밥은 종류별로 도시락에 차곡차곡 담았다. 천혜향과 참외도 깎았다. 김치냉장고에 넣어둔 시원한 맥주도 두 캔 준비하였다.

김밥 도시락 공원에서 김밥과 국을 펼쳐 놓고 남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밥 도시락공원에서 김밥과 국을 펼쳐 놓고 남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황윤옥

먼저 공원에 도착하여 돗자리를 깔고 준비해 간 도시락을 펼쳤다. 뒤이어 남편도 도착하였다. 평일 오후라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공원은 한적했다. 세 가지 김밥을 다 먹어본 남편의 반응은 각기 다른 맛이라 등수를 매기기가 어렵다고 했다. 처음 먹어본 냉이 김밥은 한입 베어 물 때마다 입안 가득 봄 내음이 퍼졌다.

"우와! 냉이 김밥은 김밥을 먹는 게 아니라 봄을 먹는 것 같네. 땡초의 이 매콤함도, 묵은지의 깊은 맛도 다 맛있어. 그래도 최고는 땡초 김밥이네."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입맛을 맞추며 함께 살아간다.

"또 먹고 싶은 음식 있으면 말해요. 언제든 만들어 줄게요."
"감사합니다."

기분이 좋으니 서로에게 높임말까지 쓰며 장난스레 마음을 나누었다. 둘이 등을 마주 대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너무 오래간만이었다. 따스한 햇볕이 머리 위로 소복소복 내려앉았다.

요즘 1인 가구도 많고 우리처럼 부부만 사는 집도 점점 늘고 있다. 그래서 양이 많은 음식을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간단히 사 먹는 게 가성비가 좋을 때도 있다. 전날 유부초밥 24개를 혼자서도 다 먹은 남편이니 음식량을 두고 고민할 필요도 없어졌다.

먹고 싶다면 언제든 남편을 주연으로 발탁해 줄 마음이 있다. 나는 건강과 맛을 책임지는 주방 감독이니까.

한실공원 남편이 김밥을 먹으며 봄 소풍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찰칵 찍었습니다.
한실공원남편이 김밥을 먹으며 봄 소풍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찰칵 찍었습니다. ⓒ 황윤옥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냉이김밥#땡초김밥#묵은지김밥#봄소풍#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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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좋아서 세종사이버대 문예 창작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다해 정성껏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현재 브런치 작가입니다. 사는 이야기를 주로 씁니다. 가끔 음식 이야기도 씁니다. 삼강 문학상 수필 부문 신인상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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