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종범의 은퇴이몽’은 퇴직 4년차로서 은퇴 전후의 현실을 기록합니다. 숫자만이 아니라 몸, 관계, 생활기술, 돌봄, 역할의 전환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 봅니다.

"돈은 세상으로 연결되는 티켓일까?"

이 질문을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은 그리 반갑지 않다. 돈이 사람의 가치를 전부 설명한다고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퇴직 후 4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며 자꾸 인정하게 되는 사실이 있다.

소득은 단지 생활비를 감당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돈은 내가 세상과 얼마나 이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올해 들어 그 생각은 더 짙어졌다. 강의소득이라는 변동소득이 흔들릴수록, 국민연금이라는 고정소득이 주는 안도감이 예전보다 훨씬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AD
직장에 다닐 때는 월급날이 되면 일단 마음이 놓였다. 액수와는 별개였다. 정해진 날짜에 약속된 돈이 들어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생활의 질서가 맞춰졌다. 한 달의 계획을 세우고 다음 달을 가늠하는 기준도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은 통장에 찍히는 숫자의 결이 다르다.

입금이 되었는데도 마음은 편안해지지 않는다. 숫자를 확인하는 순간에도 머릿속은 벌써 다음 달 일정표로 달려간다. 비어 있는 날짜가 몇 칸인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강의는 몇 개인지, 그 공백을 무엇으로 메워야 할지부터 계산하게 된다.

소득의 결 월급과 소득(ai이미지)
소득의 결월급과 소득(ai이미지) ⓒ 이종범

올해는 그 불안이 더 짙어졌다. 보험사 교육과 공공기관 강의에서 들어오는 소득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장에 숫자가 찍혀도 예전처럼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따지기도 전에, 다음 달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다음 달은 좀 나아질까."

퇴직 전에는 입금 사실 자체가 마음을 안정시켰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번에 들어온 돈보다, 다음 달에는 조금 더 나아졌으면 하는 기대와 불안이 함께 마음을 흔든다.

그렇다고 그 돈이 덜 고마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절실하다. 강의료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돈이 아니다. 누군가 나를 불러주었고, 나는 시간을 비우고 자료를 다듬고 현장에 가서 청중 앞에 섰다. 그 과정에 내 경험과 에너지, 긴장과 집중이 녹아 있다.

그러니 액수가 줄었다는 사실은 분명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동시에 아직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줄어든 강의소득은 오히려 더 눈물겹게 고맙다.

내게 강의소득은 돈이기 전에 사회적 연결이다. 보험사든 공공기관이든 누군가 "와서 이야기해달라"고 손을 내밀어야 비로소 생기는 소득이기 때문이다. 연락 한 통, 일정 하나, 강의 한 번이 벽돌처럼 쌓여 한 달의 수입이 된다. 그렇게 보면 연간 소득은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기도 하다. 적어도 내게 강의료가 단순한 수입으로만 읽히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물론 강의가 잡혔다고 해서 마음이 마냥 편한 것은 아니다. 준비 과정의 압박이 있고, 강단에 서기 전의 팽팽한 긴장도 있다. 때로는 "이번 강의는 괜히 맡았나" 싶은 순간도 스친다. 하지만 현장을 다녀오면 몸은 녹초가 되면서도 마음 한쪽에는 분명 남는 것이 있다.

여전히 내 말을 경청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작은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은 피로와는 다른 힘으로 내 안에 쌓인다. 그래서 강의는 힘든 일이면서도, 나를 다시 세상 쪽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일이 된다.

퇴직후 소득 고정소득vs 변동소득(ai 이미지)
퇴직후 소득고정소득vs 변동소득(ai 이미지) ⓒ 이종범
돌이켜보면 퇴직 후 나를 더 크게 위축시킨 것은 비단 소득의 절대적 감소만이 아니었다. 나를 찾는 연락이 뜸해지고, 내가 설 자리가 좁아지고, 세상과 맞닿아 있던 접점이 느슨해질 때 더 크게 흔들렸다. 그런 면에서 강의소득은 나를 불안하게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미끼이기도 하다.

반면 국민연금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내 마음을 다독인다. 매달 25일이면 어김없이 들어오는 160여만 원. 강의료에 비하면 소박한 금액일지 몰라도, 그 돈이 찍히는 날 아침의 공기는 분명히 다르다.

"이번 달도 들어왔네."

그 한 마디가 주는 안도감이 있다. 무언가가 흔들려도 바닥까지 무너지지는 않겠다는 믿음, 적어도 삶의 마지노선은 지켜지고 있다는 든든함이다. 그런 점에서 강의료는 움직여야 얻는 '쟁취의 돈'이라면, 국민연금은 날짜가 되면 도착하는 '약속의 돈'이다. 이 차이는 액수보다 더 깊은 심리적 지지선을 만든다.

나는 정년을 앞두고 나름대로 '4층 소득'을 완성했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임대소득, 강의소득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설계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퇴직연금은 퇴직 후 1년 만에 자녀 지원으로 사라졌고, 임대소득 역시 가로주택정비사업으로 조만간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향후 내 앞에 남는 현실적인 버팀목은 종신소득인 국민연금과 내 노동이 담긴 강의소득뿐이다.

다시 4층 소득을 복원할 자신은 없다. 이제 와서 빈자리를 하나하나 메우겠다고 덤빌 형편도 아니다. 지금 내게 급한 것은 남은 두 소득이 쉽게 흔들리지 않고, 가능한 오래 버텨주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국민연금은 내 삶의 바닥을 지켜주고, 강의소득은 그 위에서 세상과 이어져 있다는 감각을 유지하게 한다. 고정소득이 있어야 변동소득의 불확실성을 견딜 수 있고, 바깥에서 벌어오는 소득이 있어야 삶이 삶이 지나치게 쪼그라들지 않는다.

강의소득만 바라보면 달력의 빈칸이 가시처럼 눈에 밟히고, 연금만 바라보면 삶이 지나치게 밋밋해질 수도 있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사람들 앞에서 소통하고, 내 존재가 여전히 누군가에게 닿고 있다는 느낌이 있어야 하루가 가라앉지 않는다.

결국 퇴직 후의 삶은 통장에 찍히는 숫자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어떤 돈은 나를 세상으로 이끌고, 어떤 돈은 나를 무너지지 않게 붙든다. 돈은 숫자로 입금되지만, 삶 속에서는 관계와 안심이라는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퇴직자로 산다는 것은 소득의 많고 적음만 따지는 일이 아니라, 나를 밖으로 걸어 나가게 하는 돈과 나를 끝내 주저앉지 않게 하는 돈의 균형을 배워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통장을 보며 생각한다. 내 삶을 지탱하는 것은 통장에 찍히는 숫자 자체일까, 아니면 그 숫자에 실려 오는 연결의 무게와 버틸 수 있다는 안도일까. 퇴직 후의 삶은 그 둘 사이의 간격을 이해하며, 내 속도로 다시 살아가는 법을 천천히 배워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국민연금#은퇴준비#강의소득#은퇴이몽#고정소득VS변동소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재

이종범의 은퇴이몽

퇴직 이후 40년을 ‘어떻게 버틸까’가 아니라 ‘어떻게 다시 살아볼까’라고 묻는 사람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듣고, 설명하고, 함께 고민해 온 이야기를 강의와 글로 천천히 풀어냅니다. 거창한 비법보다, 같이 버틸 수 있는 ‘노후해법’을 독자들과 함께 찾아가고 싶습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