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월 24일 서울시 내 한 마트에 판매 중인 다양한 크기의 종량제봉투. 2026.3.24 ⓒ 연합뉴스
"네? 가격이 올라요?"
"그렇다네? 나도 오늘 연락받았어."
이래서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이 글을 쓰기 하루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평온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로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으로 인한 플라스틱·비닐 대란을 특별히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존재하지 않는 위기로 글을 쓸 수는 없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바로 다음 날, 우리 가게 거래처 사장님이 "플라스틱 용기 가격이 오를 것 같다"고 이야기해 줬다(사장님은 우리와 식용유, 탄산음료, 플라스틱 용기, 비닐봉지를 거래한다). 물건을 떼 오는 제조업체에서 플라스틱 용기 가격을 올리겠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그 다음 말에 더 놀랐다. "그래서 언제요?"라고 물어보니 자기들도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단다.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아니, 가격을 올리겠다는 사람들이 기한도 안 정했다고?
얘기를 들어보니 그쪽도 곤란한 건 마찬가지 같았다. 상도덕이란 게 있으니 이미 가격이 책정된 재고품들이 다 소진되고 난 뒤 판매가를 인상하겠다는데, 원자재가 언제 들어올지는 제조업체 자신들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때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아까 맞은편 마트에서 비닐봉지를 박스째 사 가던 과일가게 사장님. 바로 물어봤다.
"그럼 비닐봉지는요?"
"그렇지 않아도 특정 거래처 몇 곳에서 비상식적으로 발주를 많이 시키는 통에 이렇게는 안 팔겠다고 직접 연락을 했다던데? 그래도 비닐봉지는 아직 계획 없다 하더라고. 일단 한 주 더 지켜봐야지."
조류 인플루엔자·
팬데믹 때도 버티고 버텼는데
갑자기 기름값도 올랐다. 1865원 하던 휘발유가 삽시간에 1895원이 되더니 4월 1일 오전에는 전국 평균 1903.51원을 기록하고 있다(오피넷 기준). 팬데믹을 간신히 넘겼더니 내란에 '오일쇼크'라니. 세상이 그냥 두질 않는다.
그렇다고 또 우는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다. 식당 개업 20년 차, 이 정도 풍파는 이제 그냥 담담하다. 2016년 조류 인플루엔자으로 계란이 부족해 온 나라가 난리가 났을 때 기억하나? 그때 우리는 옆 블록 빵집과 계란을 주고받으며 돈가스를 팔았다(이른바 계란 스와프 협정이다). 그마저도 부족할라치면 집 냉장고에 있는 계란까지 다 꺼내와 돈가스덮밥을 팔았다.
팬데믹 때는 인건비 건질 생각일랑 아예 접은 채 일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콩들이 전멸해 식용유 물량이 품귀였을 때도 그랬다. 맞은편 꽈배기집과 식용유를 주고받으며 버텼다. 세상도 쉽지 않지만 우리도 호락호락하진 않다.
다만 걱정되는 건 과거와는 다른 국제정세다. 동네에서 돈가스나 파는 주제에 무슨 국제정세를 얘기하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게다. 하지만 곱씹어보자. 코로나19 팬데믹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의 국제적 이동이 확산의 주원인이었다. 식용유 가격 폭등은 남반구를 강타한 가뭄 때문이었다.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나프타 도입 차질로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이 감산에 나서면서 국내 플라스틱 가공업체들이 어려움에 처한 가운데 24일 경기 안산시의 한 플라스틱 필름 제조 공장 내 폴리에틸렌 등 원료가 쌓여 있어야 할 원료창고가 듬성듬성 비어있다. 2026.3.24 ⓒ 연합뉴스
세계를 휩쓴 인플레이션 국면은 2022년에 터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이었다. 유가 폭등과 나프타 부족 사태 역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에서 촉발됐다. 모두 우리나라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데서 시작된 일들이다. 국제적 사건들이다.
문제는 국제 이슈를 대하는 개별 국가들의 대응 방식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국제사회는 공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자국의 이해관계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극우, 고립주의 노선의 정당들이 자국에서 힘을 얻으며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 공존이 필수인 세상
극우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은 정치인들은 이민자들에게 자기 나라로 돌아가라 명령하고, 자유무역 대신 관세와 제재의 언어를 꺼내 든다. 인류의 보편적 권리나 정의는 자국의 이익만을 우선하겠다는 주장에 힘을 잃고 있다.
하지만 이는 국내정치용 기만에 가깝다. 자국민에게 '우리의 이익이 먼저다'는 말은 표를 얻기 딱 좋다. 하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완전무결하게 자급자족이 가능한 국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식업자의 세계관에서 봤을 때, 인류는 이미 서로에게 없으면 안 될 존재들이다. 아무 식당에 들어가서 벽에 걸린 원산지 내역을 보라. 베트남에서 들여온 고춧가루, 인도네시아산 후추, 브라질산 닭고기, 일본산 조미료들이 한데 모여야 닭볶음탕 백반 한 상이 차려진다. 인도산 정제버터 수입이 끊어지면 당장 우리 집 앞 빵집은 "맛이 변했다"며 손님이 끊어질 게다.

▲중동 사태에 따른 원료 수급 불안 영향으로 ‘비닐 대란’이 우려가 확산하고 있는 25일 서울의 한 시장에서 비닐 관련 용품을 정리하고 있다. 2026.3.25 ⓒ 연합뉴스
비단 음식만은 아니리라. 욕망은 곧 필요고, 필요는 곧 교환이다. 교환을 위해선 공존이 필수다. 공존을 위해선 때때로 서로 도와야만 한다. 대립 관계여도 어쩔 수 없다. 공조가 있어야 위기를 잘 넘긴다. 국가는 국경을 닫고 금지와 봉쇄를 외칠 수 있지만, 사람은 혼자 먹고살 수 없고, 나라는 혼자서 모든 것을 자급할 수 없다.
결국 사람은 서로 도와야 한다. 사재기를 하는 것보다, 문을 걸어 잠그며 나 몰라라 하는 것보다, 서로 가진 걸 나눠야 더 잘 버티는 것처럼. 우리 가게 '계란 스와프'가 그것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