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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4.06 09:03최종 업데이트 26.04.06 09:03

눈물도 마르는 사막을 기어가는 그 아이

[시로 읽는 오늘] 문동만 '사탕과 꽃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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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사탕과 꽃잎
- 문동만

전쟁은 우리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우는 아이로 만들었습니다
아니, 우는 아이들을 만들기 위해 전쟁은 태어났습니다
웃는 아이들을 먼저 죽이고
우는 아이들도 쓰러뜨리며 진격해 왔습니다

우리도 죽으며 태어나던 그 아이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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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분노'* 의 제물이 된
피범벅이 된 무력한 神의 얼굴로 쓰러진 샤자레 타이예베 여자초등학교
'파티메 자레'** 와 그 친구들처럼...

76년 전 우리도 그렇게 죽었습니다
근근한 삶과 장엄한 삶을 이어 이어
피를 닦으며 흙을 파며 여기까지 왔는데
얼마 전 우리는 다시 죽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벽의 벽다운 운명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무너뜨리려면 무너지지 말아야 하는 사람들이 되어

섬광으로 난사되는 핏빛 하늘을 뚫고
불탄 물고기 떼 뒤척이는 사해를 헤엄쳐
눈물도 마르는 사막을 기어가는 그 아이가 되어

무너지기 위해 서 있는 벽 앞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절박한 포옹으로 무너져 내린
평화의 파편을 얻기 위하여
덜 미워하고 더 사랑하기 위하여
마침내 적을 얻지 않기 위하여!

쓰디쓴 사탕을 입에 물고 꽃잎을 뿌리며

* 미국의 이란 전쟁 작전명
**2026년 2월 28일 미국의 폭격으로 죽은 175명 중 한 명, 소녀는 아홉 살이었다. 조문객들은 운구 행렬 위에 사탕과 장미꽃잎을 뿌려주었다.

출처_<2026 DMZ세계문학 페스타> 임진각 평화기원제에서 낭송, 3월 29일
시인_문동만 : 1994년 계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네> <구르는 잠> <설운 일 덜 생각하고> 등이 있다.

 우리도 죽으며 태어난 그 아이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죽으며 태어난 그 아이들이었습니다. ⓒ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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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너머 지구 반대편의 비극은 종종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어떤 시는 그 아득한 물리적 거리를 단숨에 좁히며 타인의 고통을 우리의 삶에 접속시킨다. '사탕과 꽃잎'은 거대한 폭력 아래 무력하게 쓰러진 먼 이국 아이들의 얼굴 위로, 비극의 시대를 건너온 우리 공동체의 기억을 포개어 놓는다. 그리하여 "우리도 죽으며 태어나던 그 아이들이었습니다"라는 고백은 타인의 불행을 향한 형식적 연민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는 먼 곳에서 벌어진 죽음의 감각을 우리의 뼈아픈 역사로 환원하는 숭고한 연대의 선언이다. 우리는 타국의 참상 앞에서 결코 무관한 타자일 수 없다. 거대한 폭력 앞에서 인간은 장벽을 세우고 또 무너지기를 반복하지만, 절망하지 않고 "덜 미워하고 더 사랑하기 위하여" 무너져 내린 장벽의 파편을 그러모아 평화의 테두리를 짓기로 다짐한다. 비극을 통과해 낸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연대로, 우리는 비로소 폭력의 굴레를 멈추고 서로의 상처를 안아주는 진정한 애도의 주체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정은기 시인)

#문동만시인#사탕과꽃잎#DMZ세계문학페스타#한국작가회의#시분과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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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오늘

(사)한국작가회의는 이 땅의 대표적인 문인단체로서 표현의 자유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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