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벽 속의 또다른 벽돌
- 이설야
우리는 벽을 조금씩 밀었다
한 손에는 꽃을 들고
한 손에는 죽은 물고기를 들고
반대편에서 던진 벽돌로 벽은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각자 던진 벽돌을 세면서
어차피, 벽엔 또다른 벽들이 쌓이겠지
어차피, 넌 벽 속의 또다른 벽돌일 뿐이야
한 발과 또다른 한 발이, 벽 아래 그어진 금을 넘는다
그것은 벽 속에 낀 그림자를 꺼내는 일
우리가 우리를 넘는 일
조금씩 허물어지던 벽이 등을 돌려,
우리는 각자의 얼굴을 깨기 시작한다
*핑크 플로이드 'Another Brick in the Wall' 중에서.
출처_시집 <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 창비, 2022
시인_이설야 : 2011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 <굴 소년들> <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가 있다.

▲우리는 벽을 조금씩 밀었다. ⓒ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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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넘어선다는 것은, 경계를 넘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이동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죽은 물고기" 같은 절망을 감당해야 하고, "꽃" 같은 전망도 손에 꼭 쥐어야 하죠. 무엇보다 우리 안에 쌓인 경계와 반목과 증오의 벽돌들을 발견해야 하는 일도 고통스럽지만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안에 그어진 경계는, 쌓인 벽돌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 안팎의 벽들에 끼여 납작하게 눌리고 만 우리의 "그림자"의 시간도 수습해야 하죠. "우리가 우리를 넘"지 않으면 진정으로 경계를 넘는다는 것, 벽을 넘어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 모릅니다. 안팎의 벽돌들로 굳어진 각자의 얼굴을 깨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없을지 모릅니다. 다시, 벽을 넘어선다는 것, 경계를 넘어간다는 것은, 이쪽과 저쪽이 아닌 새로운 평화의 세계로 이행한다는 말입니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만발한 '꽃밭'을 열어젖힌다는 말입니다. (김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