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 신문 누리집 갈무리 ⓒ 김슬옹
최근 서울대 신문 <대학신문> 기자가 광화문 한글 현판 문제로 인터뷰를 요청해 서울대 신문 제호가 한자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오래전에 서울대 갔다가 안 사실이지만 아직도 한자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대한민국의 공용 문자인 한글이 아니라, 한자로 쓴 제호가 74년째 서울대학교의 얼굴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은 한글 사랑을 떠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대학신문>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불편한 진실과 마주한다. 1947년 7월 1일 서울대 문리과대학 학생회 문화부가 창간한 학보의 제호가 바로 <대학신문>이었다. 당시 문리과대학은 경성제국대학 문학부와 이학부만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필자는 이런 제호 선택에 경성제대 계승 의식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의심한다. 그 뒤 1948년 <서울대학신문>에 이어 한국전쟁 중인 1952년 부산 전시연합대학 시절에 현재의 <대학신문>이 창간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大學新聞'이라는 한자 제호는, 알고 보면 경성제대의 문화적 관성이 해방 후에도 청산되지 않은 채 굳어진 잔재가 아닌가. 일제가 이 땅에 세운 제국대학의 후예라는 의식이, 한자라는 문자의 권위를 빌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은 아닌가. 이것이 과연 서울대학교가 자랑스럽게 내걸 만한 유산인가.
서울대학교는 스스로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을 자임한다. 그 지성의 전당에서 발행하는 공식 언론의 얼굴이 한자라니, 이것은 대한민국 헌법 정신에도, 국어기본법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 자기모순이다. 국어기본법 제3조는 "'한글'이란 국어를 표기하는 우리의 고유문자"라고 규정하고, 제14조는 공공기관의 공문서를 한글로 작성하도록 명시한다.
서울대학교는 국립대학법인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학의 공식 매체가 한자 제호를 고수하는 것은 공용 문자 한글에 대한 명백한 거부이자, 시대착오적 권위주의의 표상이다.
전국의 대학 학보사 가운데 한자 제호를 고집하는 곳이 얼마나 되는가. 서울대 <대학신문>의 한자 제호는 '한자가 한글보다 격이 높다'는 식민지 시대의 낡은 관념을 재생산하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야 한다.
우리가 한자 써온 역사가 오래되었지만 광복 후 국한문 혼용 등 한자 잔재는 일제 지배 영향이 컸다. 이는 필자가 번역한 조선 총독부 핵심 요원들이 쓴 "이노우에 등 90인 지음/신한준·김슬옹 옮김(2023). <조선통치의 회고와 비판>(일본인이 쓴 역(逆) 징비록). 가온누리. *원 출전: 朝野諸名士(쇼와 11년, 1936) , <朝鮮統治の回顧と批判>, 朝鮮新聞社. *<朝鮮新聞>(조선신문)은 1888년(메이지 21년) 4월 3일에 일본인이 창간한 신문"에 잘 드러나 있다.
광화문 현판이 바뀌는데, 서울대는?
지난 1월, 정부는 광화문(光化門) 현판에 훈민정음체 한글 현판 추가 설치를 검토·추진하기 시작했다. 광화문 현판 문제와 서울대 <대학신문> 제호 문제는 본질이 같다. 한자가 한글보다 우월하다는 근거 없는 관념,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관성, 그리고 바꾸면 '격이 떨어진다'라는 착각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다.
그러나 진정한 격은 문자의 종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자가 담고 있는 정신에서 온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까닭이 바로 그것이었다. 백성이 읽고 쓸 수 있는 글자, 누구나 제 뜻을 펼 수 있는 문자, 그것이 한글의 본래 정신이다.
올해 2026년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580주년이 되는 해다. 동시에 조선어학회가 '한글날'을 제정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한글 역사에서 이보다 더 뜻깊은 해가 또 있겠는가. '한글 580·100'이라는 이 겹경사의 해에, 서울대학교가 <대학신문> 제호를 한글로 바꾼다면 그것은 단순한 글자의 교체가 아니다. 식민지 잔재의 청산이자, 한글 정신의 회복이자, 대한민국 최고 국립대학이 이 나라 공용 문자에 보내는 존중의 선언이 될 것이다.
거창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신문' 넉 자를 한글로 쓰라는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서울대학교에는 수만 명의 구성원이 있다. 교수, 학생, 직원, 동문,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아는 이가 정녕 한 사람도 없는가. 한국어학, 국어교육, 역사학, 사회학을 가르치고 배우는 이들이, 자기 대학 공식 매체의 한자 제호를 보면서 아무런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지성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지성인가.
<대학신문> 기자들에게도 묻는다. "잠들지 않는 시대정신"을 표방하는 매체가, 정작 자신의 제호에서 시대정신을 잠재워 둔 채 74년을 보냈다. 언론이라면, 그것도 대한민국 최고 대학의 학보사라면, 스스로의 간판부터 돌아보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전통이니까", "창간 이래의 역사니까". 그러나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잘못된 것까지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전통의 계승은 시대에 맞게 바로잡는 데 있다. 서울대학교 스스로도 수십 년에 걸쳐 교명, 학제, 조직을 바꿔 왔다. 제호 넉 자 바꾸는 것이, 그 어떤 변화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
세종대왕은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새 문자를 만들었다. 그로부터 580년, 한글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이자 자존심이 되었다. 유네스코가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1997)한 훈민정음 해례본의 나라, 한류 문화로 한국어가 전 세계에 퍼져 나가는 이 시대에, 정작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대표 국립대학 학보사 간판이 한자라니, 이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대학신문' 넉 자를 한글로 바꾸는 것, 그것은 서울대학교가 국립대학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한글580·100의 해, 2026년이 가기 전에 반드시 바꾸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