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물내란 막아낸 금강, 천막농성 700일 투쟁 전환 4대강 재자연화 국정과제 이행 촉구 기자회견 ⓒ 이경호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는 늘 무언가가 남는다. 어떤 곳에는 쓰레기가 남고, 어떤 곳에는 기억이 남는다. 세종보 상류 금강변에 세워졌던 녹색 천막 자리에는 수많은 시민들의 기억이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천막이 사라진 모래톱에는 다시 생명이 자리할 것이다. 풍경은 달라졌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 700일이라는 시간은 길고 복잡한 결을 가진 시간이었다.
지난 30일 오후 1시 30분, 세종시 기후에너지환경부 정문 앞에 익숙한 얼굴들이 모였다. 전국 각지에서 강을 지켜온 활동가들과 그 곁을 지켜온 시민들이었다.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아래 시민행동)은 이날 '4대강 재자연화 국정과제 이행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700일간 이어온 세종보 천막농성의 종료를 공식 선언했다.
이 자리는 단순한 종료 선언이 아니라 4대강 재자연화 정책의 속도를 높이고 방향 전환을 요구하는 자리였다. 앞서 지난 24일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시민사회는 4대강 재자연화 추진 합의안을 발표했다. 연내 16개 보 처리 방안을 마련하고, 일부 보는 2027년 상반기까지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낙동강 취·양수장 개선과 녹조가 심각한 하류 보 개방 추진도 포함됐다.
이는 후퇴했던 물 정책이 다시 움직이겠다는 신호로 해석되지만, 이행을 담보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4대강 사업 이후 반복된 정책 후퇴를 고려할 때, 선언을 넘어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해단식 아닌 기억식, 700일의 시간 되짚다

▲발언하고 있는 문성호 시민행동 공동대표 ⓒ 이경호
문성호 시민행동 공동대표는 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목표로 시작된 700일의 농성이 실제 재가동을 막아냈다는 점을 강조했다. 2024년 4월 29일 세종보 상류에 천막이 설치된 이후, 전국에서 약 2만여 명의 시민과 활동가들이 현장을 찾았다. 그는 "이 농성은 단순한 현장 대응을 넘어 물정책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강호열 낙동강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녹조 문제를 다시 짚었다. 수많은 생명이 사라졌고, 녹조 독성으로 인한 주민 건강 위협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회를 보는 보철거시민행동 임도훈 상황실장 ⓒ 이경호
임도훈 시민행동 상황실장은 2017년 이후 추진된 재자연화 정책이 2021년 보 처리 방안 확정에도 불구하고 실제 철거로 이어지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특히 윤석열 정부 시기 정책이 다시 후퇴했다고 비판했다. 기존 보 처리 방안 취소와 국가물관리기본계획 변경으로 자연성 회복 기조가 흔들렸다는 것이다. 수생태 연속성 확보 사업 중단과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기후대응댐 추진도 문제로 지적됐다.
기자회견문에서는 "농성의 종료는 투쟁의 끝이 아니라 실질적 이행을 위한 전환"이라는 점이 강조됐다. 시민행동은 향후 재자연화 추진 과정을 면밀히 점검하고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기후에너지환경부를 향해 재자연화 추진을 위한 실무조직을 조속히 구성하고, 합의된 과제들을 지체 없이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오후 2시 30분,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인 필자의 사회로 농성장에서 해단식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날 행사는 시간을 정리하는 자리는 해단식이 아니라 기억식으로 진행되었다.
금강에서 시작된 흐름은 낙동강과 영산강, 전국의 현장으로 이어졌고, 서로 다른 자리에서 이어진 싸움이 결국 하나의 문제로 연결돼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기억식에서는 비에 잠겼던 날들, 폭염 속에서 버텨야 했던 시간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가장 치열했던 순간들이 차례로 복기되었다. 하루하루가 켜켜히 쌓여 만들어진 시간이었고, 공간이었다.
세종보 농성장은 인간의 투쟁 공간에만 머물지 않았다. 농성장 앞 작은 웅덩이에서는 너구리와 고라니가 모습을 드러냈고, 세 번의 봄 동안 멸종위기 야생조류인 흰목물떼새의 번식이 확인됐다. 멸종위기 어종인 흰수마자와 미호종개도 현장에서 발견됐다.
안정된 모래톱과 얕은 수변 환경이 형성되면서 번식이 가능해졌고, 이는 금강의 자연성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신호로 평가됐다.
"연대로 버텼다"... 700일 어워드
이 농성장을 버텨낸 것은 생태적 변화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연대가 그 중심에 있었다. 이런 의미를 담아 '700일 어워드'가 진행되었다.

▲소감 발표 중인 세종보철거를원하는시민대책위원회 ⓒ 대전환경운동연합
'기대 이상' 상은 세종보철거를원하는시민대책위원회가 받았다. 시민대책위는 출범 초기부터 천막농성장의 든든한 우군이었다. 거창한 구호보다 필요한 순간에 힘을 보태는 방식으로 현장을 지탱해왔다. 농성이 길어질수록 중요한 것은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라 꾸준함이라는 사실을 이들은 몸으로 보여주었다. 이들의 '기대 이상'의 지원은 세종보 농성을 떠받친 중요한 기반이었다.
'항상' 상은 대전교구생태환경위원회에 돌아갔다. 이들은 말 그대로 늘 그 자리를 지켜왔다. 정기적으로 이어진 거리 미사는 단순한 종교 행위를 넘어섰다.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사람이 많든 적든 미사는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반복은 공간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고, 동시에 사람들을 다시 그 자리로 이끄는 역할을 했다.

▲영~~~상 수상 받는 김병기 전 <오마이뉴스> 기자 ⓒ 대전환경운동연합
'영~~~상'이라는 이름의 상은 김병기 전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주어졌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이 상은 기록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강은 길을 잃지 않는다', '슬기로운 천막생활' 등의 기사와 영상을 통해 현장을 외부와 연결해왔다.
다소 비전문적으로 보일 수 있는 방식이었지만, 그 기록은 단순한 아카이브를 넘어 이 싸움이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 통로가 됐다. 시간이 지나면 현장은 사라지지만 기록은 남는다. 그리고 때로는 그 기록이 다시 사람을 불러오기도 했다.
'출몰상'은 유진수 금강유역환경회의 사무처장에게 돌아갔다. 이름 그대로였다. 어디선가 늘 나타났고, 필요한 순간에는 빠지지 않았다. 상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현장을 지키는 그의 존재감은 농성장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축이었다. 모든 싸움에는 전면에 나서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균형을 잡는 사람이 함께 존재한다.

▲수상중인 정의당 대전시당 ⓒ 대전환경운동연합
'목상'은 정의당 대전시당이 받았다. 다소 단순해 보이는 이름이지만, 그 안에는 구체적인 시간이 담겨 있다. 매주 목요일마다 현장을 지켜온 사람들이다. 정해진 요일에 반복된 참여는 농성장의 시간을 구조화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누군가는 월요일을, 누군가는 주말을 기억하겠지만, 이곳에서는 목요일이 하나의 약속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상 받으러 나온 김은실씨 ⓒ 대전환경운동연합
'고맙밥상'은 김은실에게 주어졌다. '고맙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이름이다. 농성장에서 밥은 단순한 끼니를 넘어 사람을 붙잡는 가장 현실적인 조건이자 관계를 이어주는 기본적인 방식이었다. 따뜻한 한 끼는 말보다 오래 남는다. 그가 차려낸 밥상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 이 공간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기반이었다.
이날 호명된 이들은 일부에 불과했다. 현장에 함께하지 못해 상을 전달받지 못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름 없이 다녀간 시민들, 잠시 머물렀다가 일상으로 돌아간 이들, 멀리서 지켜보며 마음을 보탠 사람들까지. 이 농성장은 특정한 몇 사람의 힘으로 유지된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작은 참여가 쌓여 만들어진 시간이었다.
그래서 700일은 단순히 길었던 시간이 아니다. 버텨낸 시간이자, 서로 이어지고 연결된 시간이었다. 농성장이 유지된 이유를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결국 700일은 몇몇의 헌신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작은 선택이 쌓여 만들어진 시간이었다.
"끝이 아니라 시작, 남은 것은 이행"

▲해단식 마치고 ⓒ 대전환경운동연합
행사의 마지막 순서로 '구구절절'이라 이름 붙은 일곱 번의 절이 이어졌다. 강의 회복을 기원하는 첫 번째 절부터 700일의 시간을 기억하고 미래를 다짐하는 마지막 절까지, 절이 이어질수록 현장은 고요해졌다.
이어 참가자들은 '흘러라 강물아'를 함께 불렀다. 700일의 시간을 지켜온 노래로 농성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상징적인 곡이었다.
천막이 철거된 자리에는 소박한 솟대 네 개가 세워졌다. 현장에서 구한 재료로 만든 솟대는 금강의 생명을 지켜달라는 바람을 담고 있었다.
현장에서 누구도 '끝'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천막은 걷혔지만 강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고, 그 흐름을 지켜야 할 책임도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서 금강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누군가의 시간과 선택, 포기하지 않았던 마음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