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9년차 온라인 마케터다. 2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1년 전 개인사업자를 냈다. 지금은 외주 작업을 하며 살아가는 2년차 1인기업 프리랜서다. 프리랜서라는 말에는 늘 불안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고정 수입이 없고, 일이 끊길 수도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 나 역시 처음에는 그 불안을 피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일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흘러오기 시작했다.

한 번 함께했던 곳에서 다시 일을 맡기기도 하고, 담당자가 바뀌어도 나를 다시 찾아주기도 한다. 누군가는 나를 다른 곳에 소개해주었고, 또 어떤 날은 내가 남겨둔 글 하나를 보고 SNS를 통해 연락이 오기도 했다. 예상하지 못한 경로로 일이 이어지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을 품게 됐다.

'브랜딩이란 대체 뭘까?'
'사람들이 나를 찾는 이유는 뭘까?'

AD
많은 정의가 있지만, 요즘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브랜딩은 결국 내가 지나온 시간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다. 내가 실제로 해온 일, 고민했던 흔적, 좋아했던 것들. 그 조각들이 쌓여 누군가에게 닿고,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과거의 내가 미래로 보내준 선물들을 하나씩 꺼내 쓰고 있는 기분으로 감사하며 살아간다.

온라인 마케터의 시작은 블로그 글쓰기였다. 그저 기록이 좋아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남기고 싶어서 시작했던 글쓰기였다. 그렇게 쌓인 기록은 자연스럽게 온라인 커뮤니티로 이어졌고, 어느 순간 운영진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전공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마케팅을 따로 배운 적도 없었고,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좋아서 했던 일들이었을 뿐이다. 그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실무에서 인플루언서, 블로거, 제휴업체와 소통할 때 나는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기에 진심을 다할 수 있다. 숫자와 데이터만으로는 알 수 없는 감각을, 나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것은 곧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다. 결국 마케팅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마음으로 깨닫는 요즘이다.

또 하나의 축은 나의 오래된 취미다. 나는 15년 가까이 손글씨와 손그림을 좋아해왔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시작한 것도 아니고, 잘해야겠다는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좋아서,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어져 온 시간이다. 어쩌면 이 취미만큼은 상업적으로 흘러가지 않길 바라며 끝까지 취미로 남겨두고 싶은 영역이기도 했다. 이런 내게 캘리그라피와 디지털 드로잉 이 취미들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나에게 일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어느 날, 내가 기록처럼 쌓아두었던 손글씨 포트폴리오를 보고 한 통의 연락이 왔다. '송글송글'이라는 앱을 개발 중인 팀이었다. 외국인들이 한글 쓰기를 배울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였고, 그 안에 들어갈 손글씨 작업을 함께 해달라는 제안이었다.

대표님과의 미팅 자리에서 나는 이 어플이 지향하는 방향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단순히 글자를 따라 쓰는 기능을 넘어서, 한글을 더 자연스럽고 감각적으로 익힐 수 있도록 돕는 것.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손글씨 쓰기 연습 앱 '송글송글' 손글씨 크리에이터로 등록
손글씨 쓰기 연습 앱 '송글송글'손글씨 크리에이터로 등록 ⓒ 김태리

손글씨 쓰기 연습 앱 '송글송글' 손글씨 크리에이터로 등록
손글씨 쓰기 연습 앱 '송글송글'손글씨 크리에이터로 등록 ⓒ 김태리

그리고 대표님은 말했다.

"자연스럽게 쓰인 손글씨라서 더 좋았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글씨체가 너무 마음에 들어요. 한글을 배우고 싶은 외국인들이 따라 하기에도 부담이 없을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랫동안 단지 좋아서 꾸준히 써왔던 나의 손글씨 시간이 떠올랐다. 잘 쓰기 위해 애쓴 적도 없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연습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닿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순간은, 내가 이 어플의 방향성을 빠르게 이해했다는 점이었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기록과 온라인 마케팅 경험들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언어가 되어주었다. 이 앱이 개발 단계를 잘 마무리하고, 널리 배포되어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수많은 K-컬처 팬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제주 서귀포 수제 패브릭노트 공방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자신만의 속도로 하는 로망의 실현 '수상한 토끼'
제주 서귀포 수제 패브릭노트 공방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자신만의 속도로 하는 로망의 실현 '수상한 토끼' ⓒ 김태리

최근에는 작은 수제 패브릭 노트 공방에서 온라인 마케팅을 돕고 있다. 이곳은 나에게 '덕업일치'라는 단어를 가장 현실적으로 체감하게 해주는 공간이다. 공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한쪽 벽은 다양한 패브릭의 수제노트들이 진열되어 있고, 천과 종이, 망치와 가위, 재봉틀과 여러 도구들이 각자의 자리를 잡고있다. 손으로 하나씩 만들어지는 과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공간. 그 안에서 나는 묘한 안정감을 느낀다.

제주 서귀포 수제 패브릭노트 공방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자신만의 속도로 하는 로망의 실현 '수상한 토끼'
제주 서귀포 수제 패브릭노트 공방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자신만의 속도로 하는 로망의 실현 '수상한 토끼' ⓒ 김태리

공방을 운영하는 대표님의 삶은 내가 지향하는 방향과 닮아 있다.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만들어가는 삶.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은 '노트 공방'이지 않은가. 내가 좋아하는 손글씨를 마음껏 쓸 수 있는 이유가 생겼다.

우리는 대표와 직원이기도 하지만, 1인기업과 1인기업으로 만났다.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며 협업하는 일.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의미가 있다.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도 인상 깊다.

충분히 이야기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방향을 함께 결정한다. 빠르게 결과를 내는 것보다, 납득할 수 있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인지 하나의 결과물이 완성될 때마다 느끼는 만족감이 크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손글씨를 쓴다. 또 어떤 날은 그림을 그리고, 종이를 자르고, 고객에게 닿을 상품의 구성과 배치를 함께 고민한다. 그렇게 신나게 대화 나누고, 놀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된다. 그리고 매달 작지만 소중한 월급이 들어온다.

손글씨 손그림 작업 수제 노트공방과의 콜라보
손글씨 손그림 작업수제 노트공방과의 콜라보 ⓒ 김태리

문득 생각한다. 대표 입장에서는 '온라인 마케터를 고용했는데 손글씨 쓰는 것을 좋아하는 직원이니, 공방의 입장에서 이건 나의 강점일 수 있겠다'라고. 내 입장에서는 '손글씨를 좋아하는데 이걸 업무에 녹여낼 수 있으니, 일과 취미의 접점에서 너무 행복한 작업이다'라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것이 생계로 이어진다는 것. 어쩌면 막연한 이상처럼 느껴졌던 문장이, 지금의 나에게는 일상이 되고 있다.

나의 손글씨와 손그림, 그리고 온라인 마케팅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진심으로 쓰이고 싶다.
'내 일'을 하고 싶어서 퇴사를 결심했던 시간들. 불안함 속에서도 하나씩 준비해왔던 과정들. 그 모든 시간들을 돌아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결국 나는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 몇 년 만에 연락이 온 지인이 있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며 강의와 전시 기획을 함께 해달라고 했다. 미팅 자리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저를 떠올리셨어요?"

잠시의 고민도 없이 돌아온 대답은 단순했다.

"그냥요. 그냥 딱 떠올랐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과거의 나에게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특별한 전략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도 아니었다. 그저 좋아서, 꾸준히 해왔던 시간들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 그게 나에게는 무엇보다 큰 보상이었다.

좋아서 하는 일에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시간들. 돈이 되지 않는 일에 더욱 열심히 계속 쌓아왔던 경험들.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에게 하루하루 작은 응원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40대의 나는 2-30대 청춘의 내가 보낸 결과물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기록한다. 이 일상의 작은 조각들이 언젠가 또 다른 나에게 닿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작은 신호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사소한 일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은 시간들, 돈이 되지 않아 망설여지는 선택들. 그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나를 먹여 살리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고. 힘겨운 눈을 뜨고, 월요일을 버티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가 작은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

좋아서 하는 일은, 결국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나는 그 진심을 믿는다.

#수상토#수상한토끼#수제노트공방#송글송글#수제패브릭노트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태리 (mistaeri) 내방

손글씨와 그림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 제주에서 달리고, 쓰고, 만들며 작은 일상을 기록합니다.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어 창업한 <그마음굿즈> 공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2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