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매화 사이에서 꽃꿀을 먹는 직박구리
최호림
전북 전주 덕진공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낭만적인 산책로가 아니었다. 도심 속 야생동물들이 혹독한 추위와 온몸으로 부딪히며 버텨내던, 그야말로 처절한 '생존의 현장'이었다.
얼어붙은 연못 위, 수달은 굶주린 배를 채우려 얼음 구멍 사이로 고단한 '얼음낚시'를 이어갔다. 먹잇감을 구하지 못한 백로의 위태로운 날갯짓은 메마른 겨울 하늘에 비산(飛散)하며 계절의 잔상만을 간신히 증명하고 있었다.
물러날 기색 없던 동장군의 서슬 퍼런 기세 앞에서, 봄은 그저 손에 닿지 않는 아득한 신기루처럼만 느껴졌다.
4월을 목전에 둔 3월 30일, 덕진공원 호수길을 걷다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아침 공기 끝자락에는 여전히 겨울의 냉기가 서려 있었지만, 나뭇가지 끝에서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하얀 매화가 팝콘처럼 톡톡 터져 나오고 있었다. 봄은 이미 와 있었다.
예년보다 이르게 핀 매화 사이로 회색빛 손님도 찾아들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어 오히려 무심히 지나쳤던 새, 바로 직박구리였다. 녀석의 움직임은 분주했다. 아니, 치열했다. 꽃봉오리 사이를 오가며 부리를 깊숙이 들이미는 모습은 봄을 즐기는 상춘객의 '감상'과는 전혀 다른 결이었다.
가지 끝에 위태롭게 매달린 채 꿀을 찾는 몸짓은 겨울을 견뎌낸 생명의 '생존' 그 자체였다. 부리 끝에 꽃가루가 묻어날 때마다 하얀 꽃잎이 눈처럼 흩날렸고, 그 찰나의 순간은 묘한 장관을 연출했다.
▲직박구리와 매화가 증명한 자연선택
최호림
이 광경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문득 160여 년 전 찰스 다윈이 설파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의 현장이 지금 내 눈앞에서 생생히 재현되고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새는 치열하게 배를 채우고, 매화나무는 달콤한 꿀을 내어주는 대가로 자신의 유전자를 멀리 퍼뜨릴 종족 보존의 기회를 얻는다. 인간이 만들어낸 복잡한 셈법과는 차원이 다르다. 자연은 그저 수억 년을 이어온 묵묵한 '계절의 순환'이라는 약속을 이행하며, 생존과 공생의 질서를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대도 이제 도심의 새들은 좀처럼 아랑곳하지 않는다. 인간의 시선보다 제 할 일이 더 급한 존재들. 어느새 이들은 관찰의 대상을 넘어 당당한 '도심의 주인'이 된 것처럼 보였다.
사실 요즘 우리의 일상은 그리 녹록지 않다. 중동 전쟁의 여파로 기름값은 연일 치솟고, 기대를 모았던 증시는 개미 투자자들의 마음도 모른 채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종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뉴스를 채우는 소식들은 하나같이 숨이 막히는 것들뿐이다.
그래서였을까. 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느낄 여유가 없었다. 무기력함이 일상을 잠식해 가던 그 순간, 덕진공원의 풍경은 잠시나마 삶의 무게를 내려놓게 했다. 추운 겨울을 견뎌낸 나무에서 다시 피어난 꽃 한 송이, 그리고 작은 새 한 마리의 분주한 움직임. 그 장면을 바라보며 비로소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실감한다.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자연은 '올 것은 오고, 갈 것은 간다'는 단순하지만 명징한 이치를 말해준다. 봄은 늘 소리 없이, 그러나 어김없이 찾아온다.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잊고 살아가지만, 자연이 건네는 이 장엄하면서도 소박한 호의 덕분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1970년대에 태어난 이들이라면 이 영화를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1990년 이미연과 김보성(허석)이 출연한 영화 <그래, 가끔은 하늘을 보자>. 입시 경쟁에 지친 청춘을 그린 이야기였지만, 세월이 흘러 그때의 청춘들이 중년이 된 지금의 우리에게도 그 제목은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건넨다.
오늘만큼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건 어떨까. 어느덧 우리 곁에 당도한 봄을 바라보며, 걱정과 근심을 모두 내려놓고 자연의 생명력을 조용히 느껴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