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농성은 강이 흐르길 바라는 마음들이 모여 이어졌다. ⓒ 보철거시민행동
'강물아, 흘러라'
아직도 귓가에 남아있는, 우리의 요구이자 구호였던 이 말은 강이 흐르기를 바라는 수많은 이들의 입과 글로 옮겨졌다. 그리고 700일의 투쟁으로, 바라던 현실이 조금 앞으로 다가왔다. '강이 흐르길 바라는 마음'은 동지들과 우리의 농성을 이어 준 간절함이었고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지도 않은 명쾌한 말이기도 했다. 이 말을 실제 해내는 것은 이제부터다. 어쩌면 더 어려운 길이 될지도 모르겠다.

▲4대강 재자연화 국정과제 이행촉구 기자회견 ⓒ 보철거시민행동

▲천막농성 해단식을 찾은 이들 ⓒ 박은영
'천막농성을 마칩니다.'
지난 30일, 기후에너지환경부(아래 기후부) 앞에는 50여 명의 시민, 활동가들이 모였다. 이 날은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아래 보철거시민행동)이 700일간 이어온 '세종보 재가동 중단과 4대강 재자연화 촉구 천막농성' 종료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들은 기후에너지환경부와 합의안 발표로 정부의 4대강 재자연화 국정과제 추진에 대한 의지를 확인했음을 알리며 700일의 천막농성 종료를 발표했다. 또 '투쟁의 마침표가 아니라 실질적 이행을 위한 전환'임을 선포하며 이후의 투쟁에 대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이어 진행된 해단식에는 100여 명의 시민들이 천막농성장을 찾았고, 그간의 감사한 마음을 나누었다. 활동가들은 함께 천막을 걷어내고, 솟대를 세워 이 자리가 투쟁의 자리였음을 표시하기도 했다.
처음을 모두와 함께 열었듯, 함께 닫아냈다. 700일, 결코 짧지 않은 여정이었다.
생명과 마주했던 700일의 시간

▲우리가 강에서 만난 수달의 모습. 사람을 향한 호기심의 눈빛이었다. ⓒ 보철거시민행동
'와, 수달이다!'
100일 행사를 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강을 가리키며 외쳤다. 모두 강을 바라보자, 수달 한 마리가 머리만 내밀고 뭐 하는지 궁금하다는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헤엄치고 있었다. 신기해서 행사를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천막농성장에 있는 동안 우리는 가만히 그 자리에 존재함으로 자연의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강에서 수많은 생명과 눈을 마주쳤다. ⓒ 보철거시민행동

▲강의 친구 가마우지 ⓒ 임도훈

▲강의 친구 오소리 ⓒ 임도훈
농성 19일차에 고라니가 천막 옆에 똥을 싸고 갔던 기억에 기뻐했는데 (참고 기사 :
며칠 전 고라니가 천막 옆에 똥을 쌌다, 기뻤다) 2년의 시간동안 강의 친구들은 천천히 더 우리와 가까워졌다. 청년고라니가 천막 앞 만장 앞으로 다가와 천막 안 사람들을 한참 바라보기도 했고, 오소리들은 천막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먹이를 찾기도 했다. 할미새들은 천막 지붕에 앉는 것이 예사였고, 어느 날은 서스럼없이 가까이 다가와 걷기도 했다. 가마우지 1천여 마리가 금강 상하류를 오가며 출퇴근하는 모습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
그만큼 자연과 가까워졌다. 이 녹색천막이 그렇게 그 곳에 살던 생명들에게 익숙해져 간 것이다. 강의 친구가 된다는 것은 이렇게 가만히 지켜보고 눈을 맞추는 일임을 녹색천막이 깨닫게 해 주었다. 사람과 강이 어우려저 살아가는 것은 그 자리에서 주어진 만큼 누리고 알아가는 것임을 강의 친구들은 알게 해 주었다.
자연을 지키는 것, 생명의 편에 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분명해졌다. 보도자료를 잘 쓰고, 정책을 잘 지적하는 것을 넘어 생명이 있는 곳에 스스로를 던져 지켜내는 것, 생명 하나가 존재한다면 타협하지 않고 지켜내는 것이 환경운동임을 어느 해보다 더 절실하게 깨닫는 시간들이었다.
8번의 계절, 6개의 천막

▲2024년 봄, 천막농성장 ⓒ 박은영

▲2025년 여름, 천막농성장 ⓒ 박은영

▲2024년 가을, 천막농성장 ⓒ 박은영

▲2024년 겨울, 천막농성장 ⓒ 박은영
천막농성장에서 보낸 8번의 계절. 세종 천막농성장은 우리의 투쟁본부이자 동지들과 만나는 집 이었다.
계절마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여름은 특히 장마와 더위로 혹독한 계절이기도 했다. 푹 찌는 더위를 맨몸으로 견뎌냈고, 장마는 차마 저항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을 그대로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쏟아내리는 비에 넘치는 강의 흐름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이 차오르기 전에 천막의 이런저런 집기들을 가지고 올라오면 머리카락 사이, 주머니 등에서 곤충들이 기어나왔다. 함께 장마를 대피한 동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라운드 골프장 위까지 물이 훌쩍 차버릴 때는 두렵기도 했다. 자연의 힘을 조절하고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었다.
그 간 6개의 천막을 떠나보냈다. 비에 잠기는 천막을 보면서, 우리는 수문이 닫혔을 때의 우리의 모습을 그려보곤 했다. 절대 수문을 닫게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그 자리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고, 수문이 닫혀도 끝까지 저항할 거라고 몇 번씩 다짐하기도 했다. 배를 타겠다, 끈으로 몸을 묶어서 버티겠다 하면서 나눴던 대화들이 기억난다. 그렇게 진지하게 우리는 싸워야 했고, 그렇게 버텨왔다.
15년이 넘게 싸워 온 4대강 재자연화를 위한 투쟁을 돌아보면 승리와 패배를 반복해왔다. 이명박 운하사업을 막았다고 판단했을 때, 4대강사업이 등장해 결국 16개 보가 건설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보 처리방안을 확정했을 때, 모두가 이겼다고 생각했지만 윤석열 정부가 그 흐름을 끊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성과는 결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금은 우리가 '이겼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거세고 끈질기게 우리를 던져 저항하는 순간들이고, 그 순간들이 우리에게 '완전한 승리' 일 것이다. 주어지는 것은 없다. 우리의 끈질긴 마음 그 자체가 승리일 뿐이다.
2만여 명의 발걸음, 연대의 힘

▲함께 강의 친구들이 되어준 동지들 ⓒ 보철거시민행동

▲4대강 16개 보 철거 촉구 1차 전국결의대회 ⓒ 보철거시민행동

▲농성하는 와중에도 간절한 마음으로 열었던 전국 생명지킴이대회 ⓒ 보철거시민행동
2만명의 동지들. 매일 세보기를 포기했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농성장을 찾아주었다. 첫 기자회견이 열린 5월 30일부터 지금까지 농성을 하면서 뭔가 부족했던 적이 없다고 느낄 정도로 고마운 손길들이 이어졌고, 우리의 투쟁을 지지해주었다. 강이 결국 흐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를 넘어 수많은 시민들의 염원이고 바람이었다.
매일 밤 야간당번을 맡아서 해주던 손길들, 금요일밤마다 천막을 떠들석하게 했던 금요동지들, 기자회견과 집회 때마다 손을 빌려주신 세종보철거를원하는시민대책위 회원들 등 사실 얼굴도 이름도 이곳에 다 쓸 수 없도록 많은 이들이 이 농성을 같이 해왔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새벽이든 한밤중이든 달려와서 농성장 활동가들을 살폈고, 손을 거들어 천막의 망가진 곳을 보수하고 튼튼히 했다.
방송을 보고 위치를 몰라 금강스포츠공원을 떠돌다가 겨우 찾고는 음료 하나만 던져주고 후다닥 가버린 대구 시민, 인근 아파트에 산다며 수문 닫히면 안 된다고 힘내라고 생수를 전해주고 간 주민분들도 기억한다. 혹여나 금방 이 농성장이 철거되지 않을까 맘을 졸였던 때라 얼굴도 모르는 그 분들이 두고 간 마음 또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해단식 위 풍경 ⓒ 박은영
천막이 모두 거두어진 자리를 바라보니 처음 이 곳으로 들어왔던 2024년 4월 29일로 돌아간 듯 하다. 하지만 이 자리를 바라보는 마음은 그 때와는 사뭇 다르다. 아무것도 없지만 꽉 채워져 충만하게 보이는 풍경이다.
금강은 여전히 농성장이다. 녹색천막은 없지만, 그 농성은 생명들이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고라니가 순한 눈으로 아이들과 두 발로 뛰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고, 흰목물떼새가 알을 낳고 아이들을 키우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오리들이 두 발로 '촤악~' 수영 연습을 하면서, 밤이면 너구리가 슬그머니 나와 강가를 헤매며 농성을 이어갈 것이다. 할미새들의 연약해 보이는 짹짹거림은 한두리대교를 울리는 누구보다 강한 구호다. 어쩌면 이 농성은 처음부터 생명들이 이어오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농성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결코 금강을 떠날 수 없다. 그 곳이 삶의 터전인 생명들의 농성에 연대해야 하므로,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날 때 울려퍼지던 새들의 노랫소리가 여전히 귓가에 맴돌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세종보 재가동 중단과 4대강 재자연화를 요구하는 천막농성장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썼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