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급식실 식판세척기급식 노동자들은 하루 수백 개의 식판을 처리한다. ⓒ 산지니출판사
수제 돈가스가 나오는 날이다. 학생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바삭한 튀김옷, 두툼한 고기, 죽 늘어난 치즈까지. 완벽한 한 끼가 식판 위에 올려진다. 하지만 그 식판이 학생의 손에 닿기까지, 아무도 묻지 않는 시간이 있다.
새벽 여섯 시. 아직 교실에 불도 켜지지 않은 시각, 급식실에는 이미 불이 환하다.
출근 시간 한 시간만 일찍 와달라는 부탁은 이제 익숙하다. 키에 맞지 않는 작업대 앞에 허리를 구부린 채, 수백 장의 돈가스를 직접 두드리고 빚는 손들이 있다. 고온의 튀김기에서는 발암물질이 섞인 연기가 피어오르지만, 환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무거운 솥을 들다 손목이 삐끗해도, 인원이 부족하니 옆 동료에게 미안해 입을 다문다. 산재 보험 대신 사비로 결제한 영수증이 늘어간다.
작가 정다정은 그 말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들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급식 노동자였다. 부당한 처우를 묵묵히 감내해온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작가는 펜을 들었다.
이 책 <밥 짓는 여자들>(2026년 2월 출간)은 그렇게 태어났다. 작가의 석사 논문 '학교 급식 노동자의 모순적 경험과 대응'을 토대로 쓰인 이 책은, 학문의 언어가 아니라 사람의 언어로 급식 노동자들의 삶을 복원한다.

▲정다정 지음 <밥 짓는 여자들> ⓒ 산지니출판사
그들은 오랫동안 '밥하는 아줌마'라고 불렸다. 기술이 아니라 성별로, 노동이 아니라 역할로 호명됐다. 왜 급식실은 기혼 여성으로 채워지게 됐을까.
1990년대, 정부는 학교 급식을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를 위한 정책으로 내세우며 주부 재취업에 적합한 일자리로 홍보했다. 집안일과 유사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그 '유사성'은 곧 급식 노동을 가사 노동의 연장으로 보이게 만들었고, 숙련된 기술도, 위험한 환경도, 제대로 된 평가도 없는 노동으로 굳혀버렸다.
책에 등장하는 현장은 가혹했다. 900명의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단 9명. 한 명이 빠지면 나머지가 그 몫을 나눠 감당해야 한다. 아파도 쉬지 못한다.
"병가도 잘... 얘기하기도 미안해. 한 명 빠지면 힘들잖아. 그럼 또 눈치 보고. 내가 아파서 쉬고 싶어도 못 쉬는 거야."
이 말은 한 사람의 하소연이 아니다. 책 속 인터뷰에 응한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같은 말을 했다. 더 안타까운 건, 그들 스스로도 자신의 노동 가치를 낮춰 말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수십 년간 '아무나 하는 일'이라는 시선이 노동자 자신에게도 스며든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오늘도 출근한다. "양질의 음식을 제공하는 일"이라는 의미를 스스로 붙들며,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자부심을 가슴에 품고. 자부심은 쉽게 오는 것이 아니다. 차별을 견디고, 통증을 참고, 그러면서도 식판을 채워온 세월이 만들어낸 것이다.
최근 5년간 178명의 급식 노동자가 폐암 진단을 받았다. 그 중 15명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고, 살아남은 이들은 '10년 이상 근무'라는 문턱을 넘어야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들의 기본급은 월 206만 6000원, 방학이 시작되면 73만 원으로 쪼그라든다.
지난 1월,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급식 노동자 1인당 적정 식수 배치 기준과 안전 기준 마련이 담겼다. 십수 년간 이름 없이 그림자 노동을 해온 이들에게 닿은, 작지만 단단한 변화다.
<밥 짓는 여자들>은 묻는다. 오늘 당신이 아무 생각 없이 비웠던 식판을 누가 채웠는지. 그 손이 얼마나 오래, 얼마나 아프게 일했는지. 책을 덮고 나면, 내일의 점심시간이 달라 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