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찾아 도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고 전합니다. 원하는 일이 있는데 두려워서 시작을 망설이는 2030에게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포복절도한 기억이 언제인가요? 우리는 매일 조금씩 웃으며 살아가지만, 눈물이 쏙 빠지고 배가 아플 만큼 소리내 터져 나오는 이 압도적인 웃음을 만나는 일은 점차 드물어져 갑니다. 누군가에겐 그저 운 좋게 우연히 만나는 찰나의 순간 혹은 이미 희미해진 감각일지 모르지만, 이 웃음의 정점을 일상 속 삶의 한 부분으로 들여놓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촌코미디클럽은 회사원 김수지, 큐레이터 박재용, 프리랜서 작가 정성은이 2023년 서촌 작업실에 모여 시작해 오픈 마이크, 워크숍, 공연 등을 주최하는 스탠드업 코미디 클럽입니다. 낮에는 각자의 일터에서 사회의 언어로 성실히 살던 이들은, 밤이 되면 무대 위에서 자신 안에서 살아있는 언어로 코미디를 써 내려갑니다.
이들에게 코미디는 단순히 소비적인 취미가 아닙니다. 코미디를 쓴다는 건 지극히 일상적이고 자조적인 상황들조차 한 발짝 떨어져 관찰하고 농담으로 개발하는, 삶을 '메타적으로' 바라보는 일종의 현대미술 작업이라고 말합니다.
누가 만들어준 무대를 구경하는 대신, 직접 클럽을 만들고 사람들을 모아 판을 벌리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단순히 웃고 떠드는 것이 아닌 내가 가장나 다울 수 있는 웃음이 나오는 세계를 내 손으로 직접 구축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 나누는 농담의 시간은 나의 진짜 모습과 맞닿아 있습니다. 주어진 환경에 나를 맞추는 대신 나를 웃게 만드는 가치를 위해 기꺼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지난 3월 20일, 서촌코미디클럽의 김수지, 정성은님을 만나 그 유쾌한 에너지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저 재밌어 보여 시작한 코미디 클럽

▲정성은, 김수지 인터뷰 모습 ⓒ 비사이드클럽
- 원래는 글을 쓰는 사람, 회사원이신데 어떻게 코미디를 시작하게 됐어요?
정성은 : "코미디를 막 좋아해서 시작한 건 아니에요. 작업실이 있어서 이 공간에서 뭐할까 하다가 스탠드업 코미디 보는 모임을 개최했어요. 그러다가 얼레벌레 하는 모임이 됐어요. 각자 자기 삶에서 우스운 이야기를 나누는… 웃음 치료처럼. 그렇게 2주에 한 번 일요일마다 모여서 웃긴 얘기를 했고, 멤버인 재용의 연말 파티에서 사람들 앞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얼떨결에 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사람들이 우리를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고 불러주기 시작했죠. 그 뒤로는 부담감에 압박감이 심해서 1년 동안 활동을 못했지만요."
- 뉴욕에서 오픈마이크를 보고 한국에서도 해야겠다 싶었다고요. 그 마음이 어떻게 생겼어요?
정성은 : "뉴욕에 유학 간 사촌 동생 따라 갔다가 6주 코미디 클래스를 들었어요. 뉴욕엔 오픈마이크라는 게 있더라구요. 혼자 뚜벅뚜벅 올라가서 마이크를 잡고 자신이 쓴 코미디를 테스트 해보는 거였는데, 잘 해도 좋고, 못 해도 남들에게 용기를 주는 시스템이었어요. '적어도 내가 쟤보단 잘하겠다' 하는 마음을 품게 해주더라고요. 그 문화가 신선했어요. 한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를 준비할 땐 마치 직장인 연극 동아리처럼 다 같이 모여 연습하고 압박감도 심했는데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어요. 그래서 이 오픈마이크를 한국에서도 해보고 싶었고, 마침 서촌에 공간이 있던 재용, 수지와 함께 시작했어요."
김수지 : 저희 셋이 '어디서 뭐 봤는데 재밌어 보이더라, 우리도 해보자'이런 얘기를 자주 해요. 엄청 원대한 꿈과 계획을 갖고 하는 게 전혀 아니에요. 재밌어 보이니까, 그게 전부에요. 성은이 뉴욕 갔다와서 오픈마이크를 하자고 했고, 그냥 한 거죠. 근데 결국에 뭔가를 실제로 하기까지의 '리드 타임'을 줄이는 게 저는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해야 되지, 이렇게 해야 되나 저렇게 해야 되나 오래 고민했을 때랑 짧게 고민했을 때 결과물에 별로 질적인 차이가 없더라고요. 저희 셋이 이렇게 계속하는 할 수 있는 이유는 셋 다 시작할 때 별 생각이 없어서인 것 같아요."
- 이미 스탠드업 코미디 신이 있었는데, 왜 굳이 새 클럽을 만들었어요?
정성은 : 처음 기존의 스탠드업 코미디 신에서 같이 하기엔 코미디 신은 남성주의적이었어요.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클럽을 시작하던 2022년만 해도 그들의 농담이 듣기 불편했죠.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 크루인 블러디퍼니도 잘 하고 있었어요. 여성이나 퀴어, 이렇게만 같이 한다는 이유로 비주류가 되는 게 자존심 상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그냥 우리가 한번 열어보자 했죠."
- 초창기에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정성은 : "처음엔 온갖 사람이 다 왔어요. 페미니즘과 퀴어에 우호적인 친구들도 오고, 일부 기존의 남성주의적 코미디언들도 오고요. 그런데 둘 다 서로 싫어하는 거예요. 페미니스트인 친구들은 남자들이 앞에서 불쾌한 성적인 농담 하고 있다고 화내고, 다른 한 쪽에서도 누구든 마이크 잡고 자기 이야기를 진솔하게 해 달라는 분위기를 보며 이건 진정한 스탠드업 코미디가 아니라며 무시하기도 했어요. 결국 양쪽 다한테 인기가 없었어요."
김수지 : "모객은 항상 부담스럽고 리스크가 있는 일이지만 그 정체성 충돌이 진짜 고민이었어요. 그 사이 어디 쯤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는지, 초반에 고민을 참 많이 했어요."
정성은 : "결국엔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분위기에서 자기 얘기를 못 했던 사람들이 저희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기 시작하면서 좋아졌어요. 스탠드업 코미디는 결국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자신을 향한 혐오 섞인 농담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입을 뗄 수 없으니까요. 결과적으로 저희가 그런 분들을 위한 등용문 같은 게 됐어요. 우리한테 편하고 우리한테 재밌는 걸 하다 보니까 클럽도 저희 정체성을 따라간 것 같아요."
함께 모여 포복절도 하는 것
-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동기는요?
김수지 : "저는 직장이 없거나 프리랜싱을 한다고 생각하면 앞이 막막해요. 회사에서 돈 벌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걸 되게 좋아하고. 조직 사회에서 인정받고 내 몫을 하는 게 필요한 사람이에요. 근데 얄궂은 게 회사에만 신경을 쓰고 내 삶의 전부가 되면 회사 생활을 길게 못하겠더라고요. 회사와 완전히 관련이 없는 일들도 있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삶의 밸런스가 맞아요.
그래서 '뭐가 내 인생에 필요하지?' 생각을 시작했어요. 힘든 일이 있을 땐 미국 드라마 <오피스>를 8번 정도 통째로 봤는데,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코미디더라구요. 그러면서 소소한 웃음, 은은한 행복말고도 포복절도가 있어야 살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죠. 방구석에서 인터넷 뒤져 웃긴 거 찾아서 5초 웃고 끝나는 것보다, 사람들이랑 모여서 얘기하면서 웃는 웃음이 강도도 높고 행복감이 오래 가잖아요. 그게 저한테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정성은 : "코미디는 한 편의 현대 미술 같아요. 어떤 라이프 스타일을 가졌든 어떤 직업을 가졌든, 메타적으로 얘기를 할 수 있어요."
- 4년 넘게 하다 보면 고민도 생길 것 같아요.
정성은 : "작년을 회고했을 때 제일 아쉬운 게 아마추어리즘에 빠져 준비 없이 무대에 올라간 거더라고요. 제 안에 완벽주의가 있어서 못했을 때 너무 괴로운데도 뭔가 준비를 잘 못하겠는 거예요. 이걸 계속하려면 잘 해야 되니, 잘 하려고 자주 하는 게 목표입니다. 근데 각자 본업에 쓰는 시간이 훨씬 더 많으니까 그런 부분에서 좀 온도 차이가 있어서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지, 그게 요즘 고민이에요."
- 코미디를 하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김수지 : "코미디를 안 했으면 못 만났을 사람들을 되게 많이 만났어요. 사람은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으로 자기를 정의하게 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회사 다니고 집에만 있을 땐 비슷한 경계 안의 사람들밖에 없었는데, 코미디 클럽을 하면서 다른 직업의 사람을 만나게 됐어요. 다양한 사람들이랑 이야기할수록 세상에 대한 이해도가 달라졌고, '저 사람 왜 저래'라고 생각했던 게 이제는 거의 없어졌어요. '다 이유가 있지, 내가 꼭 알아야 하는 건 아니지' 이런 마인드가 생겼어요."
정성은 : "이제는 무슨 일이 생겨도 크게 타격 받지 않아요. '어? 이거 다음 무대 소재로 딱인데?' 하고 넘길 수 있으니까요."
- 본업에도 영향이 있나요?
정성은 : "이걸로 큰 돈을 벌 생각은 아직 없는데 이득은 보고 있어요. 제가 에세이 작가인데 지금 준비하는 책 제목이 <치부 노트>거든요. 뉴욕 코미디 스쿨 다닐 때 매주 사람들 앞에서 웃긴 이야기를 해야 했어요. 할 얘기들을 계속 모으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제 안의 힘들고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쌓였고, 그게 책이 됐어요. 다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김수지: "재용도 현대미술 분야에서 코미디 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더해져서 메이저 출판사에서 코미디 관련 책 번역 의뢰가 왔어요. 저는 자기소개할 때 스탠드업 코미디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엄청 관심 가지고 신기해해요. 어쨌든 이득을 보고 있죠."

▲2025년 10월 30일 서촌코미디클럽 공연 모습 ⓒ 서촌코미디클럽
- 앞으로 서촌코미디클럽을 어떤 방향으로 운영하고 싶으세요?
정성은 : "공간 협업이나 행사 협업을 많이 하고 싶어요. 서촌 코미디 클럽이 가진 자산은 주변에 훌륭한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는 재밌는 사람들, 코미디언들이에요. 어떤 주제로 재밌는 얘기를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면 저희가 재밌는 이야기 에이전시처럼 재밌는 사람과 이야기를 보내드릴 수 있어요. 또 누구나 마이크를 잡고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판도 더 다양하게 깔아보고 싶어요."
- 하고 싶은 건 있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한테, 첫 번째 스텝을 추천해준다면요?
정성은 : "'쪽팔림'을 감수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못 웃길 것 같아서 오픈마이크를 안 나가는 것보다, 일단 나가서 못 웃기더라도 한번 해보는 게 낫거든요. 의외로 정말 망할 것 같았는데 잘해버리기도 하니까요. '쪽팔려서' 괴로운 건 하루 이틀만 지나면 까먹어요. 막상 해보면 '별 거 아니네' 싶을 걸요?"
직접 판을 짜고 마이크를 잡은 이유
사람은 진짜 자기라고 느끼는 세계에서 가장 편안하고 깊게 웃습니다. 그렇게 웃을 수 있는 세계를 스스로 만드는 것, 이것이 이들이 서촌코미디클럽이라는 판을 직접 짜고 기꺼이 마이크를 잡은 이유일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일상의 문제들에 빈틈없이 매몰되어 좁은 시야에 갇히곤 합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렌즈를 주욱 뒤로 당겨 보세요. 줌 아웃해서 바라보면 세상의 전부인, 엄청난 큰일인 줄 알았던 나의 상황이 사실은 미니어처 같은 세상 속에서 일어난 귀엽고 재밌는 일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 줌 아웃이 만든 여유 공간 안에서 내가 진짜 좋아했던 것이 무엇인지, 나를 숨 쉬게 하는 농담이 어디에 있었는지 다시 한 번 발견할 수도 있어요.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좋아하며 나만의 세계를 구축할 때, 우리 삶에는 건강한 선순환이 시작됩니다. 조금 부끄러우면 어떤가요, 어차피 내일이면 까먹을 텐데요. 일단 저질러 보는 것, 그것이 밀도 높은 인생을 만드는 첫걸음이라면 감수할 만하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비사이드클럽 인스타그램 계정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