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해요. 제가 지금 연극에서 맡고 있는 배역이 있는데요. 그 사람도 그래요. 슬며시 사라진다는 건 참 견디기 힘든 거예요."
지난해 배우 이종윤과 만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화제작 <카지노> 두 개 시즌에서 꽤 인상 깊은 조연으로 출연했고, 여러 단편영화에서 활약하고 있는 그이지만, 여전히 대중에게 존재를 각인 시키진 못했다 해야 옳겠다. 그의 존재가, 그 연기가 더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행한 인터뷰가 예상보다 더 긴 시간이 걸려서야 끝났다(관련 기사 :
연기인생 30년, 아직도 '무명'인 이 배우의 생존법) . 그만큼 서로 묻고 답하는 게 흥미로웠다는 이야기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는 대학로에서 연극 무대에 서야 한다며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그러다 문득, 오늘 같은 인터뷰가 더 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본인이 지금 맡고 있는 인물 또한 그렇다며.
그날 나는 계획에 없던 그 연극을 보았다. 지난해 대학로에서 초연 10주년을 맞아 다시 무대에 올린 <12인의 성난 사람들>이 바로 그 작품이다. 이종윤이 연기한 건 9번 배심원. 한 명의 배심원이 다른 11명의 배심원을 설득해 1급살인 혐의를 받던 소년의 사형 집행을 막아내는 이야기, 법정 영화 역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영화이자 연극으로도 꾸준히 재연되고 있는 이 작품 속 가장 나이든 인물이다. 8번 배심원은 피의자의 혐의를 굳게 한 나이든 증인의 증언에서 결정적 허점을 발견한다. 다만 그가 왜 거짓된 증언을 했는지 그 동기가 해소되지 않는 상황. 9번 배심원이 입을 여는 게 이 때다. 막상 영화를 보았을 땐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았던 그의 대사가 이종윤의 연기를 통하여 내 마음에 박혔단 건 의미 깊은 일이다(관련 기사 :
의심하는 인간이 세상을 구하는 까닭).
"여기 있는 사람 중엔 내가 제일 그 노인에 대해서 잘 알 거라고 봐요. 자기 이름이 한 번도 신문 구석에 나 본 적도 없는 아주 조용하고 겁 많고 보잘 것 없는 늙은이. 일흔다섯 해를 살았지만 아무도 자기를 모르고, 아무도 자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없고, 아무도 자기 조언을 구하는 사람이 없어요.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에요. 이런 상태가 되면 누군가 자길 알아주길 원하죠. 자기 말을 들어주길 원하고. 한 번이라도 좋으니 자기 의견이 반영되길 원해요. 그건 아주 중요해요. 슬며시 사라진다는 건 참 견디기 힘든 거예요."
-<12인의 성난 사람들> 중 9번 배심원의 말
평범한 사람에게 주인공의 자리를 허하다
책 <세일즈맨의 죽음>은 문학사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유명한 작품이다. 꼽는 이에 따라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후 가장 유명한 극작가로 평가되는 아서 밀러의 대표작으로, 현대 희곡이 자리 잡기까지 반드시 거쳐야 했던 분기점이 되었다. 이 같은 극찬엔 합당한 이유가 있다. 무대에 올려 관객들이 볼 만한 의미 있는 비극엔 이전까진 몇 가지 공식 아닌 공식들이 주요하게 작용했는데, 그중 주요한 걸 이 작품이 깨어버렸다는 것이다. 바로 평범한 인물도 주인공일 수 있다는 것.

▲책표지 ⓒ 민음사
이전까지 비극의 주인공은 대개 대단한 인물이었다. 셰익스피어만 해도 그렇다. 희극에선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인물도 얼마든지 내세운 그가 비극 가운데는 왕, 왕자, 장군 등 높은 지위의 인물을 내보인다. 높은 곳에 있어야 떨어질 때 아프다는 원리랄까. 저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 속 비극들도 대개가 그렇다. 위대한 이들이, 적어도 탁월한 재능을 지닌 이들이 아픔을 맛본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다르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그 제목에서 말하듯 세일즈맨, 그러니까 당대도 그렇고 여전히 가장 평범한 직업을 가진 이가 주인공이란 걸 시사한다. 평범한 직장인의 죽음을 가지고 한 편 비극을 쓴 것이다. 당대 극작계에선 '세일즈맨이 죽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하는 말이 돌아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여전히 재벌집 경영권 다툼이며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 알고 보니 대단한 누구 누구의 자식이었다는 출생의 비밀 따위가 드라마의 주된 설정으로 쓰이는 시대가 아닌가. 아서 밀러는 대체 얼마만큼 앞서 있었던가.
윌리 로먼은 로먼 가정의 나이든 가장이다. 이제는 정년을 넘긴 나이지만 늙은 몸을 이끌고 뉴욕에서 워싱턴까지, 멀리 차를 몰아 물건을 판다. 세일즈맨으로 평생 일한 그는 이제는 다른 일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아직 주택 구매 융자금을 다 갚지 못해 돈 들어갈 곳은 많은데 벌이가 좋지 못해 부담감이 크다. 작품은 윌리의 두 아들, 비프와 해피가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함께 지내는 만 하루 간의 이야기다. 그 사이로 과거와 비현실적 환상 등이 끼어들어 극의 공간과 시간적 제약을 극복하는 현대극의 특성 또한 드러난다.
훌륭한 극이 자주 그러하듯 갈등은 곳곳에 있다. 비프와 해피, 윌리와 아내 린다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한때 윌리는 비프와 해피에게 존경 받는 아버지였다. 그러나 이제는 부자 간의 그런 유대는 박살난 지 오래인 듯. 옛날엔 제 친구이자 이웃인 찰리의 아들보다 훨씬 유망한 젊은이였으나 이제는 그와 비교조차 되지 않는 한량인 비프가 못마땅하다. 윌리는 제 기대에 미치지 않는 비프에게 심한 말을 쏟아내기 일쑤고, 비프도 지지 않고 그를 받아친다.
그럼에도 부자 사이를 끊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든 잘 지내보기 위해 한 말들과 어찌할 수 없는 기대가 둘에게 쉽게 달성할 수 없는 과제를 부여한다. 아버지 윌리는 본사를 찾아가 사장에게 더 나은 처우를 요구한다. 아들 비프는 전에 일했던 스포츠 용품점 사장을 찾아가 제 사업체를 여는 데 필요한 투자를 요청한다. 그로부터 이들은 제가 이 세상에서, 또 다른 이들에게 어떤 무게를 지닌 인간인지 확인한다.
"더 많은 관심이 있어야만 해"
비극이다. 평생을 일한 직장에서 노인이 되어 시대에 뒤처진 직원이 아무렇지 않게 해고된다. 직원은 제가 사장이 태어났을 적엔 이름까지 지어줬던 공로 있는 이라고 항변하지만 오늘의 세상은 과거를 좀처럼 기억하지 않는 법이다. 아들의 경우도 그렇다. 사장은 비프가 제 밑에서 일했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윌리는 "오렌지처럼 알맹이만 빼 먹고 껍질을 던져버릴 수는 없어"하고 외치지만 이미 세상은 사람을 오렌지와 다르지 않게 대한다. 아메리칸 드림, 모든 이가 제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환상은 그를 이루는 이가 훨씬 더 적다는 현실을 외면한 이에게만 보이는 법이다.
2026년 오늘의 독자에게 70년도 더 된 이 작품의 비극이 와 닿는 건 극 속 인간을 몰아붙이는 세상과 사회의 경향이 더 분명하고 가혹해진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일자리가 사라지고, 급변하는 기술과 제도는 인간을 돌보지 않는다. 각자도생의 환경은 이들이 모여 쉴 가족과 가정, 최소한의 공동체마저 해체하고 있지 않나.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 사회가 이들을 배제하는 방식, 감정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개인, 소통하지 않고 할 수도 없는 사람들의 모습은 <세일즈맨의 죽음> 속 세일즈맨이 그저 윌리라는 1940년대 어느 미국인에 한정되지 않음을 말한다.
작품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역시 아내 린다가 남편을 위하며 하는 "더 관심을 가져줘야 해"란 말이다. 이건 그저 린다가 제 아들들에게 아버지를 신경 쓰라고 하는 말로만 읽히지 않는다. 작품 속 세상이 늙고 지친 윌리에게, 아니 작품 바깥 전 사회가 모든 뒤처지고 낙오할 위험 앞에 있는 개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절실한 요구처럼 다가온다. 그렇다. 배우 이종윤과 9번 배심원의 말처럼 "슬며시 사라진다는 건 참 견디기 힘든" 것이다. 윌리와 위증한 노인에게만 그런 게 아니다. 글을 쓰는 나와, 읽는 당신과, 우리가 알았고 또 알지 못하며 알았어야 했던 모두에게 그렇다.
우리 모두를 구하기 위해 더 많은 관심이 있어야 한다. '세일즈맨'이 아닌 인간으로 죽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