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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얼마 전부터 헛제삿밥 타령을 하는 통에 시장을 볼 때마다 갈등을 느꼈다. 헛제삿밥은 경상도의 향토 음식이다. 제삿날이 아니어도 제삿밥처럼 만들어 먹던 데서 붙은 이름이다. 말이 쉽지, 헛제삿밥을 만들려면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음식이다. 그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만 재촉하는 남편이다. 만들어주긴 해야 하는데 마음의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우리 집은 예전만 해도 설과 추석, 아버님, 어머님 제사를 따로 지냈다. 설에는 떡국 차례를 지내기 때문에 나물 반찬을 따로 하지 않는다. 추석과 두 분 제사 때는 커다란 함지박에 오색 나물을 가위로 잘게 자른 다음 김 가루와 튀긴 미역을 갈아 넣고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제사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제삿밥이었다.

명절 때는 각자 맛있는 음식을 사 와서 간단히 먹고, 두 분 제사는 한 날에 지내기로 한 게 근 4~5년 되었다. 지난 2월 28일이 아버님 기일이었다. 가족들이 다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제사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막내 시동생도 맛있었는지 남은 제삿밥을 싸 달라고 할 정도였다.

"제삿밥 오래간만에 먹으니까 정말 맛있다."

오색나물 헛제삿밥의 재료
오색나물헛제삿밥의 재료 ⓒ 황윤옥

남편은 어떤 음식이든지 그날 한 음식이 최고로 맛있다는 평을 해준다. 매번 똑같은 방법으로 해 줘도 "저번보다 더 맛있다"라며 감탄하고 먹어준다. 요리한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입꼬리가 하늘까지 치솟았다. 40여 년 가까이 같이 살며 해 준 음식만 해도 수천 가지는 될 터이다.

지난 19일, 둘이 장을 보러 갔다. 평소엔 혼자 시장을 보는 편인데 그날은 무거운 재료도 있고 남편도 오전에 쉬는 날이라 함께 갔던 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눈을 반짝거리며 어린아이처럼 내 옷소매를 붙잡고 늘어진다.

감칠맛 가득, 양푼에 슥슥 비빈 헛제삿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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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제삿밥 한번 해 줘. 오늘 온 김에 재료 사자."
"일단 사 놓기만 하자. 이번 주에는 바빠서 못하고 다음 주 월요일에야 할 수 있어. 그래도 괜찮지?"

해야 할 공부와 써야 할 글이 많은 터라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있었다. 조금 떨떠름하게 대답해도 좋아하면서 이것저것 재료를 골라 카트에 담는 이 귀여운 남편을 어찌하면 좋은가. 예쁘지도 않은 나를 세상에서 최고로 예쁘다고 해 주는 남편의 휴대전화에는 "이쁜 마누라 짱"이라고 저장되어 있다. "마누라 최고다"를 입에 달고 사는 남편 덕분에 가끔 물먹은 솜처럼 내려앉는 기분도 깃털처럼 가벼운 구름이 된다. 그런 남편이 먹고 싶다는 음식은 당연히 해 주는 것이 또 내 도리가 아닐까.

바쁜 일도 다 끝냈고 남편이 오전에 집에 있는 날 헛제삿밥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그날이 바로 지난 23일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냉장고에 잠들어 있는 오색 나물을 깨워 싱크대에 줄지어 세워 놓았다.

도라지는 소금물에 담가 두고, 삶은 고사리는 찬물에 헹궜다. 가스 불에서 물이 끓을 동안 시금치를 손질하였다. 시금치를 데쳐 찬물에 헹구고 물기를 꼭 짜두었다. 잘게 채 썬 무와 씻은 콩나물을 냄비에 넣고 소금과 참치 액젓으로 간을 하여 보글보글 끓여 놓았다. 헛제삿밥은 재료 준비하는 데만도 시간이 제법 걸리는 일이다. 이 정도 수고 쯤이야, 하나 뿐인 내 편을 위한 일인데.

도라지와 고사리를 참기름에 달달 볶은 뒤, 참치 액젓으로 간을 맞춘다. 참치 액젓을 만난 후부터 조선간장은 좀처럼 간택 되기 쉽지 않은 양념이 되어버렸다. 후 순위이긴 하지만 조물조물 시금치를 무칠 땐 한 숟가락 넣어주며 너무 서운해하지 말라고 다독여줬다.

"헛제삿밥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네."

남편이 슬그머니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립서비스를 날린다. 이 남자, 지금까지 내가 음식 준비하는 걸 옆에서 본 적이 거의 없다. 회사 일이 바빠 그랬겠지만, 그는 늘 '금 나와라. 뚝딱!'만 외치면 음식이 금세 차려지는 줄 아는 사람이었다. 립서비스든 애교든, 뭐든 괜찮다. 이제 음식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을 알게 된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남편의 사랑 가득 한마디

헛제삿밥 오색 나물 넣고 김 가루와 간 미역 넣고 맛있게 조물조물 비볐습니다.
헛제삿밥오색 나물 넣고 김 가루와 간 미역 넣고 맛있게 조물조물 비볐습니다. ⓒ 황윤옥

마지막으로 기름을 펄펄 끓여 미역을 튀겨 절구에 갈면 모든 준비는 끝이다. 양푼이에 흰 쌀밥과 오색 나물을 담고, 김 가루와 빻은 미역을 넣어 손으로 조물조물 비빈다. 식구가 적어 양푼이에 비비니 더 손맛이 난다. 나물과 미역의 짭조름한 맛이 더해져서 감칠맛이 입안 가득 살아난다.

"우와 정말 맛있다. 헛제삿밥을 먹는 게 아니라 정성을 먹는 거네."

세 그릇이나 퍼서 맛있게 먹는 남편을 보니 '뭐 이 정도 수고로움은 아무것도 아니지' 싶다. 그래도 뼈 때리는 말을 한마디 던졌다.

"아직 나물 반찬이 더 있으니 이틀 동안은 다른 반찬 없어."
"아이고, 이것 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좋을 때마다 높임말을 하며 애교를 부리는 남편, 이러니 같이 산다. 봄볕이 좋은 날, 산책을 보답으로 선물한 남편과 거니는 길이 가슴속까지 따뜻해지는 하루였다. 헛제삿밥과 남편의 애교가 함께한 날, 참 행복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헛제삿밥#경상도향토음식#남편#오색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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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좋아서 세종사이버대 문예 창작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다해 정성껏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현재 브런치 작가입니다. 사는 이야기를 주로 씁니다. 가끔 음식 이야기도 씁니다. 삼강 문학상 수필 부문 신인상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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