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글쓰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은 무엇일까요.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기자들의 경험을 통해 나의 성장을 돕는 인공지능 활용 기준을 모색해 봅니다.
AI를 처음 쓴 이유는 단순했다. 글을 쓰면서 같은 표현을 반복하는 것이 싫었다. 인터넷 사전을 뒤질 때마다 문장에 잘 들어맞지 않는 동의어 몇 개만 던져주는 한계가 늘 실망스러웠다. 한 문장에 적확한 단어 하나를 고르는 데도 종일 끙끙 앓아야 했다. 혹시나 싶어 AI에게 문장 속 단어의 예시를 보여주며 물었다.
"이 단어 말고 다른 표현 뭐 있어?"
AI는 수 초 만에 선물 보따리처럼 동의어들을 풀어놓았다. 한두 개가 아니라 선택 가능한 다수의 언어들. 그중에서 원하는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됐다. 시간이 대폭 줄었고, 문장은 훨씬 유연하게 흘렀다. 처음으로 '쓸 수 있는 도구'를 제대로 만났다는 느낌이었다.
책 출간을 고민할 때
진정한 효능감은 그다음이었다. 나는 배우이자 오마이뉴스에 <배우 차유진 에세이>를 3년째 연재하고 있다. 매달 한 편씩,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써온 덕분에 어느새 서른 편이 훌쩍 넘었다. 그 글들을 모아두고 골똘히 생각했다.
'이걸 한 권의 책으로 묶을 수 있을까?'
막막했다. 단행본 출간을 목표로 글을 살펴보니, 수필부터 기행문, 인터뷰까지 다양하게 쓰여 있어 하나의 주제로 묶이지 않았다. 출판에 대해 아는 정보도 사람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묻기엔 질문이 너무 두서없이 많았고, 상대의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을까 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작정하고 AI에게 무차별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글 전부를 보여주며 내 글이 어떤지, 어떤 색깔을 갖고 있는지, 책을 낸다면 어떤 방향이 좋은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논의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실례를 걱정할 필요 없는 낮밤 없는 회의가 이어졌다.

▲AI생성 이미지. AI는 도구이자 조언자일 뿐, 판단은 여전히 내 몫이다. ⓒ 오마이뉴스
긴 대화 끝에 하나의 결론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화려하거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기록. 그것이 내 글의 중심이라는 것.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타인의 언어로 확인되는 순간 더욱 확신이 됐다.
문제는 분량이었다. 정해진 주제를 중심으로 글을 모아보니 책 한 권으로 묶기엔 편수가 부족했다. AI와의 열띤 토론 끝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애정을 담아 쓴 절반의 글들을 덜어냈다. AI는 탈락된 글들이 왜 목차에 들어오지 못하는지도 자세히 짚어주었다. 그 글들은 나의 일상에 대한 사유를 주제로 따로 엮으라고 했다.
그럼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글이 유독 하나 걸렸다. '30년 만에 피아노를 다시 치는 이유.' 왜 이 글은 주제의 방향과 어긋나 있을까. AI는 명석하게 짚었다.
"사유는 있으나, 주인공이 없다."
정확했다. 다른 글에는 모두 누군가가 있었다. 나에게 영향을 준 인물, 관찰 대상,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성찰. 그런데 이 글은 나 혼자만의 사색에 그쳤다. 힘이 약했다. 이어진 AI의 제안은 섬광 같았다.
"글에 잠깐 등장하는 언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확장해보면 어때?"
곧바로 글을 전면 수정했다. 피아노를 사랑했지만 삶에 밀려 멀어진, 나의 언니를 중심에 세웠다. 그렇게 완성된 글은 다른 글쓰기 플랫폼 주간 인기 랭킹에 올랐다. AI가 아니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시선이었다.
AI, 생각을 밀어붙여 주는 상대
물론, 모든 의견이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AI는 '묘하게 닮은 배우와 변호사'라는 글을 목차에서 제외하자고 했다. 이웃의 범주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관계가 멀고 직업이 달라도 삶의 구조와 감정의 결이 닮아 있다면, 그것 또한 충분히 이웃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되레 생각을 넓히라고 AI에게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그 글은 결국 목차에 남겼다. AI는 도구이자 조언자일 뿐, 판단은 여전히 내 몫이다.
그 밖에도 AI는 출판사 투고에 관한 구체적인 가이드가 되어주었다. 내 글과 잘 맞는 출판사와 공모전을 리스트업 해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지금은 합의한 방향대로 사람을 관찰하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건져 올리는 글을 쓰는 데 집중하고 있다. 편수가 충분히 쌓이면 다시 AI와 심층 회의를 시작할 것이다. 더 치열하게, 더 구체적으로.
AI와 함께 글을 쓴다는 것은, 대신 써주는 존재를 갖는 일이 아니다. 생각을 밀어붙여 주는 상대를 갖는 일에 가깝다. 혼자라면 멈췄을 지점에서 한 번 더 묻게 하고, 막혔던 문장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한다. 때로는 맞고, 때로는 틀리다. 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인간의 사고를 확장시킨다. 결국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현재 AI와 나의 관계는 '선 넘지 않는 사이'다. 잘 쓰면 굿 파트너, 잘못 쓰면 가스라이팅이 된다. 경계는 얇다. 그래서 기준은 더 분명해야 한다. 무엇을 묻고, 무엇을 선택할지. 결국, 글을 쓰는 사람은 나다. 도구가 좋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좋은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