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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26 13:29최종 업데이트 26.03.26 13:29

실연하면 술 찾는 초파리, 3mm 몸에 담긴 인류의 설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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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길을 나아가던 신밧드는 폭풍우를 만나 외딴 섬에 오른다. 먹거리를 찾던 중에 힘없는 노인을 만나 강을 건너게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맘씨 좋은 신밧드는 노인을 업었지만 등짝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를 않는다. 끔찍하게도 죽어 쓰러질 때까지 짊어져야 하는 '어부바 괴물'의 꾐이었다.

며칠 동안 시달림을 당하던 신밧드는 신묘한 꾀를 낸다. 포도를 따 주물러 두자 푹 익으면서 알싸한 술이 만들어졌다. 어부바 괴물은 포도주를 마시고 신밧드를 옭아매던 힘이 스르르 풀렸다. 때를 놓치지 않고 괴물을 내동댕이 친 신밧드는 큰 돌을 번쩍 들어...

먹다 남은 과일을 놔두면 삭으면서 술이 빚어지고 나중에는 식초로 바뀐다. 3mm 크기의 초파리는 푹 익어가는 과일에 몰려드는 술꾼이다. 식초 냄새를 유난히 좋아해서 초파리라고 한다. 시큼한 냄새가 나기도 전에 날아들어 짝짓기를 하고 알을 슬어 놓는다. 술에 취하면 사람이 건드려도 잘 도망치지 않는다.

노랑초파리. 쉰 과일에 몰려드는 3mm 크기의 날파리.
노랑초파리.쉰 과일에 몰려드는 3mm 크기의 날파리. ⓒ 이상헌

전세계에 3000여 종이 사는 초파리는 유전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생물이다. 금방 자라고 몸집도 작아 관찰 대상으로 안성맞춤이다. 엄지벌레(성충)는 12시간이 지나면 짝짓기를 하고 이틀 뒤에 알을 낳는다.

암놈은 한번에 알을 수십개 정도 낳으며 사는 동안에 400여개 까지 깔 수 있다. 깨어난 구더기는 5일 남짓에 두 번의 허물을 벗으며 자란다. 참깨와 닮은 번데기로 탈바꿈 한 뒤 일주일 내외면 날개돋이 한다. 온도에 따라 다르지만 알에서 엄지벌레까지 대략 보름이면 충분하다.

우스꽝스럽게도 짝짓기에 실패한 수컷은 마음이 상해 술을 더 찾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하찮아 보이는 곤충도 실연 앞에서는 주정뱅이로 바뀐다. 새빨간 겹눈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말이다. 반면에 만취한 수놈은 적극적으로 짝을 찾지만 신체 조절 능력이 떨어져 구애의 노래를 잘 하지 못한다. 결국 암놈에게 선택받으려면 적당히 마시는 절제가 필요하다.

번식을 위해 어미는 충분히 익은 과일에 알을 까지만 때로는 알코올 농도가 높은 곳에 산란한다. 기생벌을 피하기 위해서다. 성장에는 다소 불리하지만 대를 이어갈 수는 있으니 꽤나 똑똑한 비용편익이다. 맹모삼천지교가 떠오르는 '파리모술독산란'이다.

우주로 날아간 초파리 카세트

초파리는 인류보다 앞서 우주로 간 최초의 생물이다. 1947년 미국은 전리품으로 획득한 독일의 V2 로켓에 초파리와 옥수수를 실어 보냈다. 우주 방사선이 생물에게 끼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초파리는 조그만 카세트에 담겨져 지구 밖 구경을 하고 다시 돌아왔다. 걱정과는 달리 초파리와 옥수수는 돌연변이 없이 산 채로 귀환하여 우주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북미에 사는 초파리(Drosophila bifurca)는 정자 길이가 60mm로서 몸 길이의 20배에 이른다. 실타래처럼 감겨 있다가 암컷의 몸에 들어가면 마법처럼 풀린다. 인간에게 대입하자면 170cm 사람이 30m 길이의 정자를 만드는 셈이다.

비밀은 정자 경쟁(Sperm Competition)과 성선택(Sexual Selection)이다. 전자는 암컷의 긴 생식관을 물리적으로 꽉 채워 다른 수컷의 정자가 자리 잡지 못하게 하는 알박기다. 후자는 마치 유행처럼, 취향처럼, 암컷이 긴 정자를 더 좋아라한다. 수놈은 도도한 암놈에게 간택받기 위해 정자 길이를 늘려왔으니 자연은 심심치 않게 과잉 진화한다.

초파리는 20세기에 들어와 유전학이 꽃을 피우게 만들었다. 단일 동물로는 가장 많은 노벨상을 배출했다. 1933년에 초파리 연구로 첫 노벨상을 탄 사람이 토머스 모건(Thomas Morgan)이다. 그는 유전자가 염색체에 있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입증했다. 1946년에는 허먼 멀러 (Hermann J. Muller)가 초파리에게 X선을 쪼이면 돌연변이가 증가함을 알아냈다.

1995년에는 세 과학자(Edward B. Lewis, Christiane Nüsslein-Volhard, Eric F. Wieschaus)가 생명의 설계 원리가 공통임을 밝혔다. 초파리와 인간은 약 60퍼센트의 유전자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질병 유전자만 따지면 대략 75퍼센트가 일치한다. 초파리 연구로 지금까지 9명이나 노벨 생리·의학상을 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달 후 운영중인 홈(www.daankal.com)에도 실립니다. 해당 기사의 사진은 글쓴이의 초접사 사진집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의 일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초파리#유전학#성선택#정자경쟁#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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