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준비, 탈가정, 가족돌봄, 고립은둔. 우리 사회 청년들이 겪는 위기는 단 하나의 이름표로 규정하기 어렵다. 복잡하게 얽힌 청년들의 삶을 이해하고 사각지대 없는 지원망을 구축하기 위해 현장 실무자들이 나섰다. 이들의 무기는 거창한 정책 제안이 아닌 '스터디'였다. 관심을 두고 알게 되면, 결국 당사자를 향한 사랑과 연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지난 18일 서울 명동의 온드림 소사이어티에서 '청년 스터디 라운드테이블'이 열렸다. 봉앤설이니셔티브, 282북스, 돌봄온, 펭귄의 날갯짓이 공동 주최한 이번 행사는 위기 청년 지원 실무자들이 현장의 고민을 나누기 위해 마련됐다. 현장에는 기업과 재단, 공공기관 등에서 청년 지원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담당자 60여 명이 함께 했다.
'청년 스터디 라운드테이블' 소개를 맡은 봉앤설이니셔티브 박강빈 선임은 기획의 출발점이 한 청년의 소셜미디어 메시지였다고 설명했다. 자립준비청년이면서 조현병을 앓는 가족을 돌보고, 고립은둔의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는 사례였다.
박강빈 선임은 실무자들조차 타 영역의 지식이 부족해 통합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현실을 자각했다. 이후 각 분야 실무자들이 모여 서로의 지원 대상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 앎의 과정이 이번 행사로 이어졌다.

▲지난 18일 서울 명동의 온드림 소사이어티에서 열린 ‘청년 스터디 라운드테이블’에는 기업과 재단, 공공기관 등에서 청년 지원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담당자 60여 명이 참석해 정보와 고민을 나눴다. ⓒ 정진영
부모 있는 비율 53.5%, 우리가 몰랐던 자립준비청년의 진짜 현실
이어진 세션에서 박강빈 선임은 자립준비청년의 '원가정'에 얽힌 복잡한 현실을 조명했다. 대중 매체에서 자립준비청년은 흔히 '보육원에서 자란 고아'로 묘사되지만 현장의 실태는 다르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자립지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립준비청년 중 부모가 살아 있는 비율은 53.5%에 달한다. 원가정이 있음에도 가정 외 보호 조치를 받는 가장 압도적인 이유는 '학대'다. 2024년 기준 보호대상아동 발생 원인의 43.9%가 학대로 집계됐다.
보호 유형의 통념도 다르다. 보육원(아동양육시설) 보호 비율은 31%인 반면, 가정위탁보호 비율은 58.7%로 가장 높았다. 특히 가정위탁 중에서도 조부모가 양육하는 '조손 위탁' 비율이 65.4%로 압도적이었다.
박 선임은 이러한 원가정의 특성이 청년들에게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상속 포기 제도를 몰라 친부의 빚을 떠안은 청년, 친부모가 아동의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해 미납금을 발생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또한 조손 가정에서 자라다 성인이 된 후 아픈 할머니를 돌보거나 자신의 정착금을 생계비로 소진하는 등 돌봄 관계가 역전되는 현상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박 선임은 행정상 자립준비청년의 기준에는 부합하지 않지만 제때 보호받지 못하고 자립 지원이 필요한 사각지대의 청년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봉앤설이니셔티브의 박강빈 선임이 복합적인 문제를 겪는 한 청년의 사례를 소개하며 ‘청년 스터디 라운드테이블’의 탄생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 정진영
가출 아닌 '생존', 81%는 모든 노력 끝에 탈가정 선택
282북스 강미선 대표는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고군분투하는 '탈가정청년'의 현실을 짚었다. 이들은 가정 내 폭력과 학대를 피해 스스로 물리적, 경제적 단절을 감행한 청년들이다.
하지만 이들을 가로막는 것은 서류상 존재하는 '가족'이다. 우리나라의 복지 정책이 가족과 주소지를 기본 단위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소득이 잡히거나 정보 제공 동의를 받지 못해 국가장학금이나 임대주택 등 주요 지원에서 번번이 배제된다.
가정폭력을 신고해도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는 어렵다. 상담 대비 경찰 신고율은 2.3%에 불과하며, 신고 건수의 절반 이상은 현장에서 종결된다. 폭력이 인정되어 형사 사건이 아닌 가정보호 사건으로 송치되면 가해자와 분리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이들이 생존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적극적인 관계 단절뿐이다.
강미선 대표는 사람들의 편견을 꼬집었다. 그는 "사람들이 탈가정을 할 때 '그냥 충동적으로 선택한 거 아니냐'라고 하는데, 282북스가 자체조사한 결과 81%는 모든 노력을 기울인 다음에 탈가정을 선택했습니다. 탈가정은 충동적인 선택이 아니었다라는 거죠"라고 강조했다.
강 대표는 해녀들이 고된 물질을 마치고 뭍으로 나올 때 안전을 돕는 전통인 '물마중'을 언급하며, 탈가정청년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안전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실무자들의 물마중 역할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282북스 강미선 대표는 참석자들이 오늘 행사 이후 탈가정 청년을 만났을 때 단순히 ‘안타깝다’는 생각을 가지기보다는 ‘탈가정 배경을 갖고 있구나’라고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 정진영
"가족돌봄청년도 충분한 돌봄을 받아야 할 존재"
돌봄온 김율 대표는 17년간 아버지를 돌본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족돌봄청년(영케어러)'의 정보 접근성 문제를 꼬집었다. 이들은 청춘의 시간을 간병에 쏟아부어 학업과 취업 기회를 잃는 '시간 빈곤자'이자 '숨겨진 집단'이다. 그러나 공적 지원 체계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서울시가 2023년 발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족돌봄청년의 76.4%가 "외부 지원을 잘 모른다"고 답했다.
정보의 부재는 생명과 직결되는 위기를 낳는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돌보던 20대 손자는 퇴원 후 소변줄 소독 관리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해 할머니를 패혈증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조현병 동생을 돌보는 언니는 약물 부작용이라는 정보를 알지 못해 동생의 복약 거부와 증상 악화, 그리고 가정폭력을 감당해야 했다.
가족돌봄청년에게 간병의 종착지는 대상자의 죽음이며, 남는 것은 사회 재진입의 막막함이다. 김 대표는 이들을 위한 자립을 새롭게 정의했다. 단순히 돌봄 상황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취약성과 공존하며 심리적·경제적 균형을 회복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영케어러를 만날 때 잊지 말아야 될 것은 누군가의 보호자로 호명되기 이전에 충분한 돌봄을 받아야 되는 존재라는 인식 이에요"라며 이들의 지연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돌봄온 김율 대표는 17년간 아버지를 돌본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공유하며 가족돌봄청년들이 겪는 실질적인 어려움을 전달했다. ⓒ 정진영
꼬리표가 아닌 '상태'일 뿐…고립은둔 청년의 삶을 바라보는 법
마지막으로 펭귄의 날갯짓 이광호 대표는 고립과 은둔에 대한 사회적 오해를 풀었다. 정신질환과 고립을 직접 경험한 당사자로서 그는, 고립이 단순히 개인의 나약함이 아닌 경쟁과 연령 규범 등 사회적 압박의 결과라고 진단했다. 청년들은 직장이나 사회에서 "1인분의 몫을 다하지 못한다"고 자책하며 퇴사와 고립을 선택하기도 한다.
물리적인 은둔의 결과인 '쓰레기 집' 안에서도 청년들은 치열하게 생존을 고민한다. 벽에 "어떻게든 이겨내 보겠다", "내가 뭘 할 것인지는 내가 늘 통제할 수 있다"는 메모를 붙여두며 발버둥 친다. 하지만 유년기의 폭력 트라우마나 직장 내 괴롭힘 등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취업을 하더라도 다시 무너진다. 실제로 은둔 청년의 58.8%가 재고립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표는 일시적인 취업이나 커뮤니티 지원을 넘어선 세분화된 접근을 강조했다. 긴급 상황 발생시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는 '고립'과 제한된 공간에서 나오지 않는 '은둔'을 명확히 구분해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고립·운둔이라는 건 상태이고 그 사람의 특성이 아니다. 그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면 또 다른 개별적인 청년일 뿐"이라면서, 제한된 시선의 틀을 벗어나 청년이 살아온 삶 전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 줄 것을 당부했다.

▲펭귄의 날갯짓 이광호 대표는 고립·은둔 청년이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정진영
각자의 현장으로 뻗어나갈 연대의 불씨
주제 발표가 끝난 후, 참석자들은 6개의 테이블로 나뉘어 소그룹 토론을 진행했다. 실무자들은 각자의 현장에서 겪는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나눴다. 특정 청년에게 지원이 편중되는 '중복 수혜' 문제와 복지 경계선에 놓인 청년들을 위한 대안, 청년 지원 연령을 벗어난 40대 고립은둔자에 대한 접근법 등 실질적인 논의가 오갔다. 청년들의 상처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그들이 살아온 역사 자체를 훌륭한 '자원'으로 바라보자는 인식 전환의 목소리도 나왔다.
가족돌봄 테이블을 이끈 김율 대표는 "내가 전하는 이야기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따뜻하고 이상적인 당사자의 사례가 아닐 텐데 어떡하지"라며 걱정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사회에 꼭 필요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용기를 냈고, 공감을 받겠다는 생각보다는 균열과 틈을 내보자는 마음으로 준비했는데 오히려 테이블에 오신 분들이 정말 많은 공감을 해주셔서 내가 이해받고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행사를 마무리하며 마이크를 잡은 박강빈 선임은 청년 지원 실무를 하면서 느낀 점을 전하면서 이번 스터디의 진정한 의미를 되짚었다.
그는 "'모르는게 약'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청년들의 현실을) 알아버리니까 멈출 수가 없다. 마음이 많이 쓰이고 소진된다"면서도 "그럼에도 '아는 게 힘'이다. 그 대상을 이해할수록 방법을 더 알아보고 싶고 더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청년 스터디 라운드테이블은 알아가기 위해 진행했다. 앞으로 각자의 장소와 시간에서 테이블이 파생되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가족돌봄 테이블을 이끈 김율 대표는 참석자들의 눈빛에서 공감과 이해를 느낄 수 있어 따뜻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 정진영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소셜임팩트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