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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갑신정변의 주역들 왼쪽부터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김옥균. 이들은 친일 의존적인 급진적 개화 운동을 펼쳤다. 이들은 이동인의 사상적 제자였다.
1884년 갑신정변의 주역들왼쪽부터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김옥균. 이들은 친일 의존적인 급진적 개화 운동을 펼쳤다. 이들은 이동인의 사상적 제자였다. ⓒ 이병길

김옥균·박영효·홍영식 등 개화파 지식인들이 1884년 12월 청국에 의존하려는 척족 중심의 수구당을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하는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이들은 새 정부를 구성하고 혁신정강으로 문벌폐지와 인민평등권 확립, 과세의 개혁, 지조법(地租法)의 개혁, 재정의 일원화 등 14개 항목을 내세웠으나 미처 공포하기도 전에 위안스키가 지휘하는 청국군이 출동하여 신정부의 본거지인 창덕궁을 공격함으로써 집권은 '3일천하'로 끝나고 주도자들은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독립당을 제거한 사대당 정부는 더욱 보수화되고 청의 세력이 강대해진 가운데 청·일 두 나라의 조선쟁탈전은 갈수록 격화되었다. 조선사회의 낡은 봉건체제에서 근대국가로 발전시키려한 최초의 개혁이 처절하게 좌절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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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이 실패한 것은 개화파가 일본을 지나치게 믿으면서도 민중을 자신들의 지지 기반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데다, 그들을 적극 지지할 근대적 시민층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데도 그 원인이 있었다. 더구나 개화파는 봉건적 토지소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조세제도를 개혁하려는 차원에서 해결하려 했다.

그것은 지주 입장에 섰던 개화파의 계급적 한계와도 깊은 관련이 있었다. 또 개화파는 외세의 침략성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 결과 정권 탈취와 개혁에 일본을 이용하려던 자신들의 주관적 뜻과는 달리 거꾸로 일본에 이용당하고 말았다.(역사학연구소 지음, <함께 보는 한국 근현대사>, 39쪽, 서해문집, 2005)

개인은 물론 사회나 국가에서도 운명을 가름하는 기회가 자주 있는 것은 아니다. 개혁의 기회를 놓치면 혁명이나 파국을 불러오게 된다. "비혁명적 변화가 실패함으로써 혁명적 변화가 되고 말았다."(찰머스 존슨)는 말처럼, 조선의 민초(민중)들은 500년 누려온 수구 기득세력에 더 이상 기대하는 것이 무망함을 깨달았다.

갑신정변 이후 민씨 정권과 수구파는 나름의 근대적 개혁을 실시했으나 개혁정책은 그들끼리의 권력 나눠먹기식이었고 봉건적 수탈에 시달리는 절대다수 농민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없었다. 극대로 치닿던 사회적 모순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다소 고전적이긴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혁명을 회피(예방)하는 방법으로 13가지를 들었다. 거꾸로 해석하면 혁명발발의 정치사회적 요인을 말하는 것이다. 조선 말기의 상황과 겹치는 진단이다.

① 통치의 실패원인을 충분히 연구할 것.
② 사소한 사항에 대해서도 법률을 엄격하게 지키는 정신을 함양하여 법의 권위를 확보할 것.
③ 민중을 기만하는 방법에 의존하지 말 것.
④ 관직자의 권력남용을 막기 위해 어느 정도 관직의 교대제를 인정할 것.
⑤ 일계급으로 하여금 관직을 독점하게 하지말 것.
⑥ 관직에 취임하는 자격을 가급적 합리적으로 정할 것.
⑦ 관직취임을 이용하여 이득을 얻지 않도록 할 것.
⑧ 국가적 재정상태를 충분히 보고함으로서 관직자가 사리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할 것.
⑨ 너무 지나치게 개인의 권력을 강대화해서는 안 될 것.
⑩ 정기적인 국세조사를 실시하여 국가구성원의 재산자격에 대해 적당히 조정함으로써 국가구성원의 일정한 부분을 유지해야 할 것.
⑪ 개인의 생활을 적당히 감독할 것.
⑫ 국내분쟁은 외래침략을 가져온다는 것을 인식시킬 것.
⑬ 특히 지배계급내의 분쟁을 가급적 제거할 것.(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한용희, <혁명론>, 10쪽, 일 조각, 1974)

고종 정부는 동학을 여전히 탄압하면서 1886년 5월 기독교와 천주교의 선교 사업을 공식으로 허용하였다. 이에 따라 1887년 아펜셀러가 정동교회(감리교)를 창립하고, 9월에는 언더우드가 감로교회를 세웠다.

조선의 남녘에서 혁명의 열기가 일어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횃불#촛불#응원봉#동학농민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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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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