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의 오심 한 번이 한 시민의 삶을 27년이나 짓밟았습니다. 최근 정부와 정치권이 '법원 개혁'을 화두로 올렸지만, 정작 사법부 내부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은 여전합니다. 기자는 법원 오심에 대한 이장호씨의 외로운 사투를 20여 년간 취재해왔습니다. 그의 투쟁기를 통해 사법 정의의 민낯을 다섯 차례에 걸쳐 고발합니다. 이 연재가 오심에 책임지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실질적인 사법 개혁과 신뢰 회복의 마중물이 되길 바랍니다.

ⓒ 이은영
사기미수 혐의로 8개월 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구속기간 7개월)됐던 이장호(67)씨는 2002년 6월 출소하자마자(당시 42세) 모든 일을 뒤로하고 명예 회복에 나섭니다.
그 결과 소송 상대방이 법원에 제출한 서류가 위조되었음을 밝혀냈습니다. 형사 사건(사기미수)은 물론 민사 사건에서 '건물 증축 여부'는 '전부명령 확정판결' 서류 못지않게 판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 증거였습니다. 증축한 사실이 없어 학원매매대금에 '증축 비용은 애초 없었다'는 상대방의 주장을 뒤집을 핵심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이씨와 A씨 사이의 분쟁이 시작되기 전인 1997년. 관할 기관인 대전 중구청에서 발급한 건축물관리대장에는 분명 증축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송 과정에서 A씨가 법원에 제출한 건출물관리대장에는 증축 사실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증축 기록이 없는 가짜 서류를 본 재판부는 이씨를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웠고, 이 변조된 서류는 이씨를 사기 미수범으로 만들어 7개월 간 차가운 감옥에 가뒀습니다.
결국 이 서류는 변조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검찰 의뢰에 따른 문서감정 결과 "적어도 1회 이상 디지털(팩스나 복사기) 기기를 사용하여 복사한 것"이라며 "동일한 원본에 의해 생산된 문서로 볼 수 없다(변조)"고 판정했습니다. 학생의 성적표에서 'A'를 'F'로 교묘하게 고쳤고, 학교 측은 그 가짜 성적표만 보고 제적 처분을 내린 격입니다.
이씨는 건물 증축 사실을 부정하며 위증한 건물주와 증축업자를 고발했고, 대법원도 위증을 인정했습니다. (건물주: 구속 후 집행유예, 증축업자: 집행유예)
재심은 흔히 '바늘구멍'이라 불리지만, 이씨는 국과수의 감정 결과와 건물주의 위증 고백이라는 결정적 증거로 출소 4년 만인 2004년 3월, 재심의 문턱을 넘었습니다.
한 지붕 아래 두 목소리, 대전지법의 기괴한 '자기모순'

▲2006년 1월 19일 재심 형사사건 무죄 선고를 알리는 당시 보도기사. 하지만 다음날 열린 재심 민사재판부는 기각 판결했다. ⓒ 심규상
2006년 1월, 형사 재심 재판부(이승훈, 신혜영, 최성욱)는 1년 6개월의 심리 끝에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증거가 조작되고 증인이 거짓말을 하여 이씨가 억울하게 처벌받았음을 재심 법원이 처음으로 공식 인정한 것입니다. 7개월의 옥살이가 사법부의 '명백한 오류'였음을 사과하는 선언이었습니다.
이제 민사 재판부(청구이의 소)의 무죄 판결만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누구나 승소를 예측했습니다.
학원매매대금 중 건물증축비용의 실체가 인정된 데다 이미 전부명령이 확정돼 끝난 사건에 대해 오심을 반복한 원심판결을 바로잡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특히 당시 민사 재판부(한상곤, 허선아, 박상현)는 "관련 형사 사건의 결과를 보고 판결하겠다"며 심리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재심 변호사는 오심의 원인이 된 전부명령 확정 법리를 강조하며 "처음부터 각하했어야 할 사건"이라고 주장했습니다. ①과 ②의 기사에서 설명했듯 전부명령이 확정(1999년 11월)되는 순간 이씨 승소로 마무리돼 법적으로 다툴 원인 자체가 사라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쁨은 채 하루를 가지 못했습니다. 불과 24시간 뒤, 같은 건물의 민사 재심 재판부는 이씨의 청구를 기각하며 다시 A씨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단 한 차례의 심리도 하지 않았던 재판부는 "건물주가 위증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은 인정되나, 이를 제외하더라도 A씨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단 한 번도 심리 하지 않은 채, 이미 심리된 형사 무죄 판결을 뒤집는 비논리적 폭거를 저지른 것입니다.
양승태 주심과 임시재판부의 정체는?

▲사법농단(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 유성호

▲이장호씨의 민사 재심 상고를 기각한 2006년 4월 13일 대법원 판결 ⓒ 오마이뉴스
이씨는 대법원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민사 재심 상고를 심리조차 하지 않고 기각(2006년 4월, 심리불속행, 재판장 강신욱, 고현철, 주심 양승태, 김지형)하더니, 이어 형사 재심 무죄 판결마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2006년 10월, 김황식, 김영란, 이홍훈, 안대희)했습니다. 심리조차 하지 않고 내린 민사 패소를 근거로 1년 6개월 간 심리를 통해 내린 형사 무죄판결까지 뒤집은 것입니다. 결국 2007년 11월, 대법원은 형사 환송심 최종 판결을 통해 유죄를 확정했습니다.
이 잔인한 '결론 뒤집기'의 중심에 양승태 주심 대법관이 있었습니다. 양 대법관은 2006년 민사 재심 상고심 주심으로서 기각 결정을 내린 데 이어, 2007년 형사 파기환송심에서도 다시 주심으로 등장했습니다.
특히 2007년 판결 당시 그는 일반 재판부가 아닌 '임시재판부(임시 1부)' (재판장 전수완 , 고현철, 주심 양승태, 김지형) 소속으로 이 사건을 직접 처리했습니다. 특정 사건의 형사와 민사 주심을 동일인(양승태)에게 몰아준 것도 이례적이지만 대법원에서 이씨 사건만을 위한 임시 재판부를 구성한 것은 극히 이례적입니다. 이는 무작위 배당 원칙을 무력화하고 사법부의 치부를 덮기 위해 가동된 '별동대'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양승태 대법관은 이후 박근혜 정부 시절 대법원장(2011~2017)에 올라 상고법원 도입 등을 위해 재판을 거래했다는 '사법농단' 의혹으로 구속 기소된 인물입니다.
법원이 재심에서도 명백한 증거를 외면한 이유는?

▲대전지방법원 법정 증인석 ⓒ 연합뉴스
그렇다면 법원이 명백한 증거를 외면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사건을 오랜 시간 취재해 온 기자는 그 원인이 '사법부 조직 보위'에 있다고 봅니다. 이씨의 무죄를 인정하는 순간, 1999년부터 이어진 모든 판결이 '총체적 부실'이었음을 자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법리와 양심보다 사법부의 체면과 안위를 우선시한 '사법 카르텔'의 방어 기제가 작동한 결과라고 보는 이유입니다.
이 사건이 훗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보여준 '조직을 위해 정의를 덮는' 사법 농단의 서막이었던 셈입니다.
결국 이씨에게 찾아온 재심의 기회는 '사기미수' 전과를 재확인하는 좌절의 시간이 되었고, 그의 삶에는 깊은 상처만 남았습니다.
[관련기사]
-
[사법카르텔①] 법원의 기괴한 자아분열... '유령판결'이 만든 27년 잔혹사
-
[사법카르텔②] 8명의 엘리트 판사는 왜 '오심'을 반복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