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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마다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로 고소하고 달콤한 향이 마을을 감싼다. 두 집 건너 한 집마다 큼직하게 '한과' 간판이 내걸려 있다. 이 마을에서 한과는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삶의 일부임을 보여준다. 강릉시 사천면 노동리, 이른바 갈골은 오랜 시간 한과의 전통을 지켜온 마을이다.
그 중심에는 150년 넘게 한과의 전통을 이어온 최봉석(84) 명인이 있다. 한과 한 조각이 완성되기까지 그의 손끝에서는 단순한 기술을 넘어, 세월과 삶이 고스란히 스며든 이야기가 빚어진다.
4월 첫날, 달콤한 향이 가득한 마을에서 평생 한과의 길을 걸어온 명인을 만났다.

▲강릉시 사천면 갈골마을의 일몰 풍경.굴뚝마다 연기가 피어오르며, 옛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고요한 시골마을의 모습이다. ⓒ 진재중
손끝에서 피어나는 달콤한 역사
한과는 명절이나 큰 잔치 때 즐겨 먹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과자로, 유과·유밀과·다식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각각의 한과에는 오랜 전통과 정성이 담겨 있다. 그중 과즐은 유과의 한 종류로 쌀 반죽을 발효하고 건조한 뒤 기름에 튀겨 조청과 고물을 입혀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강릉 갈골마을에서는 50여 가구가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한과를 만들고 있다. 이곳의 한과는 세대를 거쳐 이어져 온 삶의 방식이자 전통의 가치를 담고 있다.

▲한과 재료를 직접 점검하는 명인의 모습. 손끝으로 상태를 살피며, 전통의 맛을 지켜내기 위한 세심한 정성과 집중이 담겨 있다. ⓒ 진재중
전통 방식으로 만든 과즐은 과거 강릉 지역에서 일부 가정에서만 이어지던 귀한 음식이었다. 금산마을의 몇몇 집과 사천 갈골마을의 최봉석 명인 가문, 그리고 인근의 서너 가구가 그 명맥을 겨우 지켜오고 있었다.
갈골마을의 과즐은 본래 판매를 위한 상품이 아니라, 명절 제사상에 올린 뒤 가족들이 함께 나누어 먹던 소박한 음식에서 출발했다. 이러한 갈골과즐이 외부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명인의 작은댁 할머니가 명절에 남은 과즐을 주문진 어시장에 내다 팔면서부터였다.
이후 과즐은 강릉 일대로 판로가 점차 확대되었고, 입소문을 타고 강릉중앙시장까지 알려지며 많은 이들이 찾는 기호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더 나아가 방송을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농협과 백화점 등으로 주문이 이어졌고, 이는 본격적인 성장의 계기가 되었다.

▲갓 튀겨져 먹음직스러운 한과가 함지에 담겨있다. ⓒ 최형준

▲손으로 빗어 만든 과즐. 모양은 일정하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성과 손맛이 깊은 풍미를 전한다. ⓒ 진재중
오랜 경험이 빚어낸 한과의 깊이
최봉석 명인은 지금도 한과를 직접 만들며 오랜 전통과 정성을 이어가고 있다. 반죽을 빚고 모양을 내며 튀기는 모든 과정이 명인의 손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과즐은 눈으로 색과 형태를 보고, 귀로 튀겨지는 소리를 들으며 완성도를 판단합니다. 이런 감각이 쌓여야 비로소 제대로 된 과즐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는 과즐의 완성은 결국 사람의 감각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재료의 상태를 읽고, 온도와 시간, 힘의 균형을 맞추는 섬세한 조절은 오랜 경험에서 나온다.
갓 만든 과즐은 바삭한 식감이 살아 있고 시간이 지나 조청이 스며들면 맛은 더욱 깊어진다. 겉의 바삭함과 속의 부드러움, 그리고 은은하게 퍼지는 단맛의 조화. 그것이 전통 과즐이 지닌 본연의 매력이다.

▲과즐 하나하나를 직접 점검하며 정성을 기울이는 명인 ⓒ 최형준
삶을 빚어온 한 조각의 무게
한 조각의 과즐을 들어 보이며 명인은 조용히 말을 이어간다.
"이 일은 단순한 생업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의 고된 노동을 견디며 이어온 삶 그 자체입니다. 그 과정 속에서 과즐은 우리 가족을 지탱해 온 힘이었습니다."
그의 말에는 세월을 지나며 켜켜이 쌓인 묵직한 기억이 담겨 있었다. 동시에 과즐을 지켜온 시간 속에서, 개인의 성취를 넘어 마을과 함께 만들어낸 변화에 대한 조용한 자부심도 느껴졌다.

▲과즐을 직접 만들며 정성을 다하는 진지한 모습의 명인 ⓒ 최형준
전통과 문화로 자리 잡은 과즐
과즐은 이제 이 마을의 가장 중요한 생업이자 '작목'으로 자리 잡았다. 밭농사와 벼농사에 의지해 어렵게 살아오던 마을은 과즐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았고, 그에 따라 삶의 모습도 서서히 변화해갔다.
명절이 다가오면 갈골마을은 전국에서 손꼽히게 분주한 곳으로 변한다. 강릉과 주문진 일대에서 주부들이 일손을 돕기 위해 모여들고, 친척과 지인들까지 더해지며 마을은 금세 활기로 가득 찬다.
"명절 한 달 전부터는 정말 눈코 뜰 새가 없습니다.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온 마을에 불빛이 꺼지질 않지요. 덕분에 마을 형편도 많이 나아졌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선조들의 덕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 전통을 잘 지켜가야지요."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갈골마을의 과즐은 단순한 지역 특산품을 넘어, 전통을 이어가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작은 시작이 모여 오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처럼, 과즐 한 조각에는 세월과 정성이 묻어있다.

▲한과 포장을 하나하나 직접 점검하며 전통의 품질을 지켜내는 명인 ⓒ 진재중
인내로 빚어내는 전통의 맛
"과즐 하나를 만들어내는 일은 결국 인내와의 싸움입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손이 많이 가지만 그 과정을 견뎌내야만 제대로 된 맛과 형태가 완성됩니다."
최 명인의 과즐은 '시간'으로 완성된다. 찹쌀을 물에 담가 7일에서 길게는 15일까지 발효시키는 것으로 시작해 반죽과 찌기, 꽈리치기, 건조, 튀김까지 모든 과정이 장인의 손을 거친다. 완성까지는 꼬박 한 달이 걸린다. 특히 꽈리치기 과정은 떡을 차지고 부드럽게 만드는 핵심 단계로 이 작업의 완성도가 한과의 품질을 좌우한다.
건조된 반죽을 저온과 고온에서 두 번 튀기면 손바닥 크기의 바탕이 순식간에 네 배로 부풀어 오른다. 이때 균형을 잡는 것이 장인의 기술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산자와 강정은 기포가 살아 있어 부드럽고 깊은 맛을 내며, 조청을 입히고 깨나 튀밥을 묻히면 비로소 완성된다.

▲과즐을 만드는 명인부부 ⓒ 최형준

▲과즐의 풍미를 좌우하는 것은 재료의 품질이며, 그 중심에는 찹쌀이 있다. ⓒ 진재중
험난했던 명인의 도전
"우리 집안에서는 과즐이 늘 주인공이었지요."
그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 속에는 그 시절의 고단함과 묵직한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한 겨울, 따뜻해야 할 안방은 늘 과즐 재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방 안에 널어 말리는 과즐 사이에서 가족들은 좁은 틈을 비집고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청해야 했다. 그야말로 과즐이 주인이었고, 사람은 객이었다. 오랜 세월 한과와 함께해온 그의 삶에서 과즐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가족의 중심이자 일상의 일부였다. 궂은 날이면 방 안은 더욱 빼곡해졌고 가족들은 어깨를 맞대고 겨우 잠자리를 마련해야 했다.
정성을 들여 만든 과즐은 입소문을 타며 고객들의 신뢰를 얻었고, 매출도 점차 안정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택배가 없던 시절, 명인은 한과를 직접 싣고 서울까지 오가며 대관령의 험한 고갯길을 넘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생명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과에 대한 신념으로 끝까지 그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실하게 이어오던 사업은 예상치 못한 세무조사로 큰 위기를 맞게 된다. 힘겹게 모아온 수익금 대부분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서, 그는 사업을 접고 싶을 만큼 깊은 좌절을 겪게 되었다.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정성스럽게 한과를 만들고 있는 최봉석 명인 ⓒ 최형준
갈골에서 만나는 살아 있는 무형유산
갈골 한과의 역사는 1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70년, 최봉석 명인의 4대조가 한과 제조법을 체계화한 이후 그 비법은 5대에 걸쳐 전승되어 왔다. 세대를 거치며 축적된 경험과 손맛은 오늘날 갈골 한과만의 깊은 풍미를 만들어내는 기반이 되고 있다.
이러한 전통의 가치는 일찍이 공인되었다. 1989년 농수산부로부터 강원도 전통식품 1호로 지정되었고 1996년에는 '강릉 갈골 산자 영농조합법인'이 설립되며 생산과 유통 체계가 정비되었다. 이어 2000년에는 최봉석 명인이 한과 분야 최초로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23호에 선정되었다. 2013년에는 갈골 한과 제조 기술이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되어 그 전통적 가치를 다시 한 번 인정받았다.
한편, 마을에 조성된 한과 체험 전시관은 전통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2005년 강원도와 강릉시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이곳에서는 2006년부터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방문객들은 반죽과 튀기는 과정을 직접 경험하며 전통 식문화를 몸소 익힐 수 있다.

▲과즐 만들기 과정을 재연하며 전통 방식을 선보이는 최봉석 명인 ⓒ 최형준
아버지의 길 위에 선 아들
이제 그의 곁에는 아들 최형준씨가 함께하고 있다. 대기업을 그만두고 가업을 잇기 위해 돌아온 아들에게 아버지는 "늘 낮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며 장인의 길을 차근히 전하고 있다. 힘들다는 이유로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스스로 선택한 아들의 결심은 오히려 전통의 미래를 밝히고 있다.

▲아들과 함께 과즐을 만드는 명인의 모습. 전통 방식을 하나하나 일러주며, 손끝의 기술과 장인의 정신을 다음 세대에 전하고 있다. ⓒ 진재중
한과, 세계 시장을 향한 가능성을 보다
최형준씨는 한과의 가능성을 해외 시장에서 확인했다. 대기업 근무 시절, 유럽 바이어들에게 한과를 선물했을 때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었고, 이를 계기로 과즐이 세계 시장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지닐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이후 그는 제품을 다양화하고 포장 디자인을 개선하며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변화를 이어갔다.
이러한 노력은 자연스럽게 한과의 해외 진출과 수출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으로 발전했다. 그는 K-POP 열풍처럼 한과 역시 세계인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한다. 특히 설탕 대신 조청을 사용하는 과즐의 특성을 강조하며, 전통 방식에서 비롯된 건강한 먹거리로서 외국인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기호식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K-POP열풍과 함께 외국인들이 관심을 갖는 한과 ⓒ 최형준
명인의 손맛과 철학
최봉석 명인은 '전통한과'에 대한 질문에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담담하게 자신의 기준을 밝혔다.
"전통한과란 가장 좋은 재료로, 가장 정성스럽게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명품 한과는 화려함이 아니라 본질에서 비롯된다. 좋은 재료를 고르는 일부터 제작 과정 전반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정성을 아끼지 않는 태도, 즉 기본에 충실한 축적이 결국 한 시대를 대표하는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전통에 대해 "지키는 데 머무르지 않고, 오늘의 시대에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도 전통의 뿌리를 지키면서, 그 가치를 현재로 확장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그의 손끝에서 완성되는 한과에는 단순한 맛을 넘어 시간과 철학, 그리고 우리 문화의 깊이가 담겨 있다.
명인 명패 앞에 선 그의 미소에는 지난 세월을 묵묵히 걸어온 흔적과 앞으로를 향한 조용한 다짐이 함께 담겨 있다.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과즐은 이제 지역의 전통을 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오랜 시간 지켜온 그 맛과 정신은 변함없이 이어지며, 다음 세대로 전해질 준비를 하고 있다.

▲명인 명패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최봉석 명인.오랜 시간 한 길을 걸어오며 쌓아온 노력과 정성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표정이다. 그의 시선 끝에는 지나온 세월의 기억과, 앞으로도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조용한 다짐이 함께 담겨 있다. ⓒ 진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