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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또 유튜브 봐?"
요즘 내가 가장 자주 듣는 말이다. 핸드폰도 없는 딸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유튜브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조금 한심하게 봤다. 자기 관리가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요즘 틈만 나면 유튜브에 들어간다. 푹 빠진 채널이 생겼다. 민음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민음사TV'다.
한 번 보고 빠져들다
처음에는 우연이었다. 세계문학전집을 두고 토너먼트를 벌이는 '세문전(세계문학전집) 월드컵' 영상이 알고리즘에 걸려 들어왔다. 어릴 때 세계문학전집을 꽤 재미있게 읽었다. 나는 데미안 파였다. 그래서 였을까, 손가락이 먼저 갔다. 과연 1위가 누가 될지 숨죽이며 기대하게 됐다.
영상에는 민음사 마케팅팀 조아란 부장과 편집자가 나왔다. 예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한 책들을 두고 두사람이 대화를 나누는데, 마치 오래된 친구들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격식 없이 웃고 반박하고 공감하는 그 분위기가 편하게 느껴졌다.
특히 조아란 부장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소개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어른들의 속물근성과 위선에 염증을 느낀 주인공이 3일간 방황하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어른이 되어서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한 번도 분노를 표출해 본 적 없는 어른도 분명히 있을 거 아니에요."
그 말을 듣고 잠깐 멈칫했다. 책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감정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 채널을 계속 보게 된 건 그때부터였다.

▲김민경 편집자민음사TV에서 요즘 가장 활발한 활약을 하고 있는 김민경 편집자의 회사일상브이로그가 담긴 동영상이다. ⓒ 민음사 TV
민음사 TV를 파다 보니 해외문학팀 김민경 편집자도 알게 됐다. 입담은 빠른데 설명은 조리 있다.고전을 이야기하는데 잠이 오기는커녕 , 어느새 소리 내어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녀가 책 줄거리를 소개할 때면, 일타강사처럼 귀에 꽂힌다. 당장이라도 책을 구입해 읽어보고 싶어진다. 그녀가 파는 게 옥장판이 아니라 책이라는 사실이 다행처럼 느껴진다.
내가 가장 즐겨보는 컨텐츠는 해외문학팀에서 진행하는 '세문전(세계문학전집) 독서클럽'이다. 한 권의 책을 놓고 자유롭게 사유를 나누는 형식이다.
최근엔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이야기하던 회차가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는 윌리를 두고 "방향은 잘못됐지만 정말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미워하기보다 연민이 먼저 드는 인물이었다. 독서클럽을 듣다보면 한 작품을 여러 방향에서 다시 보게 된다.

▲민음사TV ‘세문전 독서클럽’ 유튜브 화면 캡쳐민음사TV ‘세문전 독서클럽’ 촬영 장면. 스튜디오에서 편집자들이 함께 책을 놓고 대화를 나눈다. ⓒ 민음사TV
유튜브 때문에 책 읽고 사는 이상한 일
요즘 나는 이 채널을 라디오처럼 틀어놓는다. 집안일을 하면서 듣다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어릴 때 갈 데가 없어서 바닥에 배 깔고 책만 읽던 시절이 있었다. 그 정서가 아직 어딘가에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출판사 유튜브를 라디오 삼아 듣고 있으면 나는 패널도 아닌데 괜히 같이 말하게 된다. 거실에서 혼자 고개를 끄덕이거나 피식 웃으면서.
댓글창도 비슷하다. 나처럼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들이 거기 모여 있다. 어떤 사람은 "책은 좋아하지만 읽는 건 게을렀는데 이 채널 덕분에 다시 읽게 됐다"고 썼다. 영상 아래에 작은 독서모임이 하나 더 열려 있는 것 같다.
책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직원들의 사무실 일상이 담긴 브이로그도 재밌다. 보다 보면 자기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유쾌하게 해내는 사람들을 보며 웃게 된다. 같은 책을 좋아하고 서로 응원해주는 사이 같은 친밀감이 든다. 화면 너머의 사람들인데도.
요즘 고전이 다시 읽히고,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가 베스트셀러에 다시 오르는 것도 그런 맥락인지 모른다. 책이 재미없어진 게 아니라, 책 이야기를 같이 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드디어 모일 곳을 찾은 것일 수도 있다.
김민경 편집자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자책 때문에 종이책이 안 팔리는 게 아니에요. 저희의 적은 넷플릭스, 유튜브, 닌텐도 그리고 너무 긴 대한민국의 노동 시간이죠."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유튜브가 나를 다시 책으로 데려다 놓고 있다. 예전에는 서점에서 책을 만났지만 요즘은 유튜브에서 먼저 만나는 일도 생긴다. 유튜브에 빠진 사람들을 한심하게 보던 내가, 유튜브 덕분에 다시 책을 펼치고 있다.덕질의 끝이 책방이라니.
오늘도 딸이 나를 의심한다.
"엄마 또 유튜브 봐?"
"그래. 근데 엄마 지금 책 주문하려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