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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부터 봄학기가 시작되었다. 방학 중 신청했던 동화 특강도 진행 중이라 시간 안배를 잘해야 한다. 한 달에 두 편의 동화를 써서 합평 수업을 받는데, 다음 주에 제출해야 할 과제는 역사 동화다. 초고는 써 놓았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아 틈틈이 퇴고해야 한다. 학기 수업도, 동화 수업도 밀리지 않도록 초집중해야 한다. 하나라도 삐끗하면 장학금이 날아가거나 공모전에 발도 들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에는 여섯 과목의 강의를 듣는다. 하루에 한 과목씩 듣는 것을 목표로 하다 보니 토요일이면 대부분 강의를 끝내는 편이다. 학교에서 정해준 기간은 2주일이지만 그 주 안에 마치지 못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할 일을 미루지 않으려고 스스로 세운 원칙이다. 지난주에는 손님을 맞이하는 일과 다른 글을 쓰는 일이 겹치면서 남은 한 과목을 일요일에 들어야 했다.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 uns__nstudio on Unsplash
그 가운데 '가족과 문화' 과목의 목표는 '역사적 구성체로서의 가족을 이해'하고, '사회 변동 속에서 가족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평소에도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에게 무척 흥미로운 강의였다. 지난 15일 강의를 들으며 조선 시대와 현대 사회의 가족 문화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다. 특히 강의 중에 본 영상이 인상 깊었다.
KBS <역사 스페셜>의 '조선판 사랑과 영혼, 400년 전의 편지' 편이었다. 임진왜란 무렵 세상을 떠난 이응태에게 아내, 이른바 '원이 엄마'가 남긴 편지 이야기였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슬픔과 그리움을 담은 글이었는데, 그 애절한 마음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 이야기를 '조선판 사랑과 영혼'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런데 강의를 들으며 더 놀라웠던 것은 편지의 애틋함만이 아니었다. 당시의 가족 제도였다.
이언적 가문의 봉사록을 보면 조선 중기에는 집안의 제사를 아들과 딸을 구분하지 않고 나누어 맡거나 번갈아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해남 윤씨 가문의 윤희봉 사록에도 문중 제사를 특정 자녀가 도맡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해마다 순서를 정해 돌아가며 담당했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고 한다. 심지어 출가한 딸이 친정아버지의 제사를 지낸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또 유성룡의 분재기를 보면 재산 상속 또한 비교적 공평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결혼한 딸에게도 재산을 나누어 준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는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재산 분배에서도 남녀차별이 크지 않았던 셈이다. 조선왕조실록(성종조)에는 남자가 여자 집에 들어가 사는 것을 표현하는 말로 "장가간다"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처가살이가 흠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로 여겼다는 것이다.
400년 전 이응태의 편지에서도 흥미로운 표현이 등장한다. 아내가 남편을 부르며 "자내(자네)"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이런 점만 보더라도 당시 부부 사이의 관계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같은 전란을 겪으면서 조선 사회는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성리학 문화가 강화되면서 가족 제도 역시 점차 부계 중심으로 바뀌어 갔다. 장자가 제사를 맡는 '장자봉사'가 일반화되고, 남성을 중심으로 한 가족 질서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관습도 있다. 제사는 맏이가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나, 여성이 '시집간다'라는 표현 속에 담긴 시가 중심의 문화가 그 예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젊은 세대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 사이에서도 이런 약속을 자연스럽게 나눈다고 한다.
"설날에는 시가에 가고 추석에는 친정에 가자. 양가 부모님 용돈도 똑같이 드리자."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지혜로운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를 들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오래 전 존재했던 균형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400년 전, 원이 엄마의 편지와 당시의 가족 문화를 떠올리며, 지금 우리가 찾고 있는 답이 이미 역사 속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