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이 넘는 나이 차이를 넘어 함께 야구를 즐기는 직장인 야구팀 ‘남인천캐논즈’ 선수들이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김홍의
오늘날 직장 내 '세대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화두다. 성과와 효율을 중시하는 기성세대와 삶의 균형과 수평적 소통을 중시하는 MZ세대 사이의 간극은 때로 조직의 소통을 가로막는 거대한 담장이 된다. '꼰대'라는 냉소와 '개인주의'라는 오해 속에 직장은 그저 차가운 생존의 현장이 되곤 한다.
하지만 여기, 20살의 나이 차이를 가볍게 뛰어넘어 서로를 '형님'과 '동생'으로 부르는 이들이 있다. 프로야구 시즌 소식처럼 화려한 조명과 스타 선수의 소식은 없지만, 지난 3월 14일 인천 동산중학교 야구장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린 남인천우체국 야구팀 '남인천캐논즈'가 그 주인공이다.
11년 만에 마주한 '기적' 같은 준우승
영하의 칼바람이 몰아치던 지난해 12월 20일, 인천 서구 드림파크 야구장(정서진 리그).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잡히는 순간, 흙먼지 묻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주저앉았다. 최종 스코어 9대 11.
창단 11년 만에 처음으로 밟아본 결승 무대였지만, 우승컵은 한 끗 차이로 비껴갔다. 하지만 선수들의 표정에는 좌절보다 묘한 충만함이 서려 있었다. 늘 하위권을 도맡아 하던 팀이 일궈낸 값진 준우승이었기 때문이다.

▲2025년 정서진 리그에서 남인천우체국 야구팀 ‘남인천캐논즈’가 받은 준우승 트로피와 개인상(타율왕·다승왕) ⓒ 김홍의
남인천캐논즈의 역사는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인천우체국 직원 23명이 뜻을 모아 만든 이 팀의 출발선은 지극히 소박했다. 목표는 우승이 아니라 '야구를 매개체로 한 건강한 소통'이었다. 팀명 '캐논즈'에는 시원한 홈런 한 방을 날리자는 소망이 담겼다. 각자의 사비로 글러브를 마련하며 함께한 11년. 이들이 함께한 이유는 단순했다. 야구가 좋았고 그 야구를 통해 만나는 직장 동료들이 곧 나의 '팀'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캐논즈의 평균 연령은 40대 중반이다. 최고 연장자인 신동윤 선수(1975년생)와 막내 이수영 선수(1996년생)의 나이 차이는 무려 20년이 넘는다. 직장 내 세대 갈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요즘, 캐논즈에는 '꼰대'도 '개인주의'도 설 자리가 없다.
사실 직장 동호회가 자칫 '업무의 연장'이나 '또 다른 위계질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캐논즈는 이러한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 매년 한 차례 '1박 2일 MT'를 떠난다. 사무실을 완전히 벗어난 곳에서 밤새워 나누는 진솔한 이야기는 계급장을 떼고 서로를 '사람'으로 마주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
야구장의 수평적인 룰도 철저히 지킨다. 유니폼을 입는 순간 팀장님은 '투수'가 되고 대리님은 '포수'가 되어 사인을 주고받는다. 선배의 실수에 후배가 "나이스 트라이!"를 외치는 문화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직장인 야구팀 ‘남인천캐논즈’의 최고령 신동윤 선수(왼쪽)와 막내 이수영 선수. 두 선수는 20년이 넘는 나이 차이를 넘어 함께 야구를 즐기고 있다. ⓒ 김홍의
동호회 활동은 직장 내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타 부서원, 타팀원과의 야구 활동은 부서 간 장벽을 허무는 '협업의 물꼬'가 되었다. 야구장에서 쌓인 신뢰는 업무 중 발생하는 갈등을 유연하게 해결하는 윤활유 역할을 했다.
직원들의 직무 스트레스 해소는 서비스 질 향상으로 이어졌다. 주말에 흘린 땀방울이 월요일 출근길을 가볍게 만들고 이는 곧 시민들에게 전하는 '행복 배달'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개인의 취미가 조직의 활력이 되고 나아가 우체국의 건강한 이미지를 지역 사회에 알리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이제 시선은 새롭게 시작된 2026년 시즌을 향한다. 지난해 정서진 리그에서의 준우승은 팀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올해부터는 동산중학교 리그로 무대를 옮겨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2026년 캐논즈는 단순한 성적 유지를 넘어 더 큰 꿈을 꾼다. 새로 합류한 외부 선수들과의 화합을 통해 지역 공동체와 더 깊게 호흡하는 것이 올해의 목표다.
지난해 합류한 외부 영입 선수 오용택씨는 "공무원 조직은 딱딱할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캐논즈에 합류해 보니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끈끈했다. 이분들의 밝은 에너지가 우체국을 찾는 시민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창단 멤버이자 감독 겸 주장을 맡고 있는 김지수씨는 말한다.
"2026년 시즌의 목표요? 당연히 즐겁게 야구하는 거죠. 처음부터 목표는 동료 간의 소통이었으니까요. 결과보다 여기까지 함께 걸어온 시간이 더 소중합니다."

▲직장인 야구팀 ‘남인천캐논즈’의 주장 겸 감독인자 감독이 경기 중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다. 남인천캐논즈는 서로 다른 세대의 선수들이 함께 호흡을 맞추며 팀을 만들어가고 있다. ⓒ 김홍의

▲마운드 위에 놓인 야구공. 남인천캐논즈 선수들에게 야구는 세대를 넘어 서로를 이어주는 공통의 언어다. ⓒ 김홍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