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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의 숨결이 벽을 타고 흐른다. 교실이라기보다 시간이 멈춘 채 생명만 남아 꿈틀거리는 작은 정글 같다. 다른 벽에는 강렬한 색채의 호랑이가 포효한다. 분노와 생명 그리고 시간의 흔적이 뒤섞여 있다. 이곳의 호랑이들은 모두 다르지만, 하나의 호흡으로 이어져 있다. 두 사람이 함께 그렸기에 가능한 생명이다. 붓은 둘이었지만, 숨은 하나였다. 낡은 책상과 바랜 칠판이 있는 이곳은 더 이상 아이들의 배움터가 아니다. 폐교가 된 이 공간에서, 4월의 마지막 주말, 부부 화백을 만났다.

▲살아 있는 호랑이를 능가할 만큼 용맹하게 그려진 이 작품은, 날카로운 눈빛과 힘찬 기세로 화면을 압도하며 강렬한 생명력과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 진재중
한얼문예박물관: 폐교를 예술 공간으로 되살리다
입구에 들어서면 수백 년은 된 듯한 낙락장송과 세월의 흔적이 남은 시멘트 계단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곳곳에 남아 있는 학교의 모습은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운동장 앞 국기봉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건물에는 '박물관'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우천면에 있는 한얼문예박물관은 폐교된 용둔초등학교를 활용해 조성된 문화예술 공간이다. 이곳은 부부 화가 이양형(84)과 이정자(74)가 상주하며 운영하고 있다. 2008년 전문박물관으로 등록되면서 현재의 명칭을 갖추었고, 2013년에는 강원전문예술단체로 지정되어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옛 학교 분교를 개조해 만든 한얼박물관. ?소박한 공간 속에 예술과 추억이 어우러져 또 다른 문화 공간으로 새롭게 숨 쉬고 있다. ⓒ 진재중
두 화백, 한 호흡으로 완성한 세계
작은 교실, 폐교의 적막 속에서 붓이 움직인다. 붓끝이 닿는 순간 호랑이의 털이 살아나듯 꿈틀거린다. 눈빛은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날카롭게 번뜩인다. 정지된 그림이 아니라 막 포효를 터뜨릴 것 같은 생명의 순간이다.
붓을 들고 있는 두 부부 화백은 주변의 기척조차 느끼지 못한다. 여든을 넘긴 나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깊이 몰입한 모습이다. 그 집중 속에서 호랑이들은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함께 호흡하는 존재가 된다. 작품을 마주한 순간, 오히려 질문이 돌아온다.
"호랑이가 튀어나올 것 같지 않나요?"
부부 화가 이양형, 이정자는 이렇게 웃으며 말을 건넨다.
그 말에는 살아 있는 듯한 호랑이를 그려낸 자부심이 담겨 있다. 이양형 화백은 힘 있는 선으로 호랑이의 기운을 끌어내고 이정자 화백은 섬세한 번짐과 색으로 그 생명에 숨을 불어넣는다.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두 사람은 같은 세계 속에서 붓을 든다.
"의견이 다를 때도 많지만, 호랑이를 그리고 있으면 어느새 한마음이 돼요. 그 순간만큼은 한 몸이 된 것 같죠."
이양형과 이정자 화백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그들이 함께한 작품 속 호랑이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먹의 농담 속에서 떠오르는 호랑이는 흐릿한 경계에도 강렬한 눈빛으로 공간을 긴장시킨다. 다양한 색감으로 쌓아 올린 호랑이는 포효 직전의 에너지를 품고, 보이지 않는 울림으로 주변을 채운다.

▲부부 화백은 나란히 선 자리에서 서로 다른 화풍과 시선으로 각자의 한국화 세계를 이끌어가며, 조화와 개성이 공존하는 예술적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 진재중

▲포효하는 호랑이를 그려낼 때면 두 화백은 서로의 호흡을 맞추며 강렬한 기운과 생동감 넘치는 순간을 함께 화폭에 담아낸다. ⓒ 진재중
폐교에서 시작된 한얼문예박물관의 탄생
두 화가는 원래 강원도와 특별한 인연이 없었지만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 봉사 활동을 계기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게 되었다. 봉사 과정에서 만난 한 군 장성의 권유로 자연 환경이 좋은 조용한 곳을 물색했고, 그 결과 산과 물이 어우러진 횡성에 정착하게 되었다.
처음 계획은 박물관이 아닌 문화예술대학 설립이었다. 폐교된 분교를 최적지로 판단해 필요한 시설과 공사 준비를 마치고 건설을 시작했지만, 공사 소음으로 인한 마을 주민들의 반대로 결국 학교 설립은 포기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함께하려던 대학 교수들은 하나둘 떠나고 결국 부부만 남게 되었다. 두 사람은 원주의 고물상에 기계와 각종 도구를 헐값에 처분하며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그때 소중한 자료들을 헐값에 많이 처분했어요."
화백은 잠시 말을 멈추며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어 후회가 됩니다. 이 박물관에 전시했더라면 더 의미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부부는 이렇게 말하며 지나온 시간을 조용히 회상했다.
3년간의 깊은 고민 끝에, 부부는 남농 선생의 뜻을 이어 폐교에 박물관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산으로 둘러싸이고 냇물이 흐르는 분교의 자연 환경은 산수화 작업에 더없이 적합했다. 상처로 가득했던 이 폐교는 그렇게 새로운 문화 예술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양형(동헌)·이정자(설매) 두 화백은 오랜 시간 쌓아온 예술적 깊이와 부부 작가로서의 조화로운 호흡을 함께 드러내고 있다. ⓒ 진재중
부부 모두 허건(남농) 선생의 직계 제자
이양형(동헌)과 이정자(설매) 화가는 한국 남종화의 거장 허건(남농)의 직계 제자로, 약 20년에 걸쳐 그의 문하에서 전통 한국화 기법과 자연과 인간을 아우르는 예술 정신을 수학했다.
이들의 인연은 사제 관계를 넘어선다. 이정자 화백은 남농 선생의 눈에 띄어 화가의 길에 들어섰고, 이후 미술을 공부하던 이양형 화백과 만나 부부의 연을 맺으며 예술적 동반자가 되었다. 특히 두 사람이 함께 남농 선생의 후계자로 공식 인정받은 것은 한국 화단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사례로, 예술 정신과 전통이 개인을 넘어 부부라는 공동체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작품 세계를 더욱 심화하며 한국 남종화의 전통을 계승해 왔다. 이양형 화백은 비구상의 세계를 통해 내면의 사유를 확장하고, 이정자 화백은 구상의 형상을 통해 자연과 삶의 정서를 섬세하게 담아내며 서로 다른 방향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좌측은 남농선생, 중앙은 이정자(설매), 우측은 이양형(동헌) ⓒ 진재중
묵향으로 이어진 부부 화가의 예술 세계
스승 남농의 맑고 깊은 먹색과 힘 있는 붓놀림은 한국적 정서와 민족적 감수성을 담아내며 큰 울림을 전해왔다. 이러한 남농 선생의 예술 정신과 붓끝을 이어받은 이양형 화백은, 전통의 맥을 현대의 감각으로 계승하며 자신만의 산수 세계를 구축해 왔다.
팔순을 넘긴 그의 붓끝에는 여전히 흔들림이나 망설임이 없다. 붓을 드는 순간마다 응축된 힘이 살아나 강인한 기상과 생동감이 화면 위에 그대로 드러난다. 보는 이에게 화면 속 생명을 직접 마주하는 듯한 생생한 인상을 준다.
한편 이정자 화백은 부드럽게 번지는 수묵과 자유로운 운필로 또 다른 산수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그의 작품은 관람객을 자연 속으로 이끌며, 고요하고 깊은 정서를 자연스럽게 체감하게 한다.
이들의 작품 세계는 서로 다른 방향을 지니면서도 묵향 속에서 삶과 자연을 담아낸다는 공통된 미학으로 이어진다. 또한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하며 먹빛의 깊이와 표현의 자유로움을 꾸준히 탐구해 왔다.

▲동헌 작품, 비구상 ⓒ 진재중

▲이정자 작품, 구상 ⓒ 진재중
고문서에서 현대미술까지, 시간과 장르 넘나드는 전시
한얼문예박물관은 박물관동과 미술관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으로 관람객들에게 폭넓은 예술 경험을 제공한다.
박물관동에서는 고문서와 고서화를 비롯해 백제 향로, 산호, 악기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반면 미술관동에서는 서양화와 유화, 북한 작가들의 작품은 물론 벼루, 목공예·석공예 등 현대 미술과 공예 작품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또한 남농과 제자들의 작품을 포함해 민화, 도자기, 공예품, 고문서 등 3만여 점의 예술품과 자료가 소장·전시되어 있다. 이와 더불어 한국화, 서예, 한지공예 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되어, 관람을 넘어 참여형 예술 경험을 제공한다.

▲각종 고서화와 도자기가 전시된 박물관 ⓒ 진재중

▲남농 선생의 산수화남농은 맑고 깊은 먹색과 힘 있는 붓놀림으로 한국적 정서와 민족적 감수성을 담아내며 큰 울림을 담아냈다, ⓒ 진재중
서울 천년 타임캡슐과 이양형 화백
박물관 입구에는 '자랑스러운 서울시민 이양형'이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는 서울 정도 600년을 기념해 서울의 품격을 높이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설치된 것이다. 서울 천년 타임캡슐 프로젝트는 1994년 11월 29일, 당시 서울의 생활과 문화를 보여주는 자료 600점을 남산에 매장한 사업으로, 2394년에 개봉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이양형 화백은 자랑스러운 서울시민 상을 받았으며, 자신의 작품인 달마도를 타임캡슐에 수장해 후대에 예술적 기록을 남겼다.

▲서울 정도 600년을 기념하는 타임캡슐비 ⓒ 진재중
평생의 붓끝, 예술과 나눔으로 이어진 기록
"우리처럼 많은 상과 수상 경력을 가진 화가는 드물지요. 하지만 여기서 멈출 생각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작업을 이어가며 상을 받아야지요."
두 화백은 이렇게 말하며 여전히 식지 않은 열정과 왕성한 활동 의지를 드러냈다.
교실 한 쪽은 각종 수상패와 감사패로 가득 차 있어, 두 화백이 걸어온 시간과 성과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양형 화백은 개인전 32회와 문화예술대상 11회를 포함해 총 340여 회의 수상 경력을 지닌 작가로, 문인화와 비구상 작품을 중심으로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정자 화백 역시 개인전 30회와 문화예술대상 8회를 포함해 약 320회의 수상 경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환경을 주제로 한 작품과 강원도의 자연을 담은 산수화 작업에 힘쓰고 있다.
두 화백은 1975년부터 2026년까지 종교·사회·예술단체와 협력해 소년소녀가장, 노인, 장애인, 군부대, 다문화가족 등을 위한 서화 자선 전시를 꾸준히 이어왔다. 교류전·기념전·초대전 등을 포함해 총 368회, 2만 5631점에 이르는 작품을 나누며 예술을 통한 나눔을 실천해 왔다.

▲각종 상패와 감사패가 교실 벽면을 가득 메우며, 그동안의 성과와 발자취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 진재중
화백으로서 삶과 한국화 정신의 계승
두 화백은 "저희는 작품을 판매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한국화를 후손들에게 온전히 남기고 싶을 뿐입니다"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두 화백은 작품을 판매하거나 거래하지 않는다. 남농 선생의 후계자로서 한국화의 정신을 계승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또한 작품을 미술관에 남겨 한국화의 혼을 후대에 전하고자 하며, 평생 연구와 창작을 이어가는 삶을 선택했다.
"우리의 박물관은 한국화의 혼을 지키고 후대에 전하기 위한 공간이며, 화백으로서의 삶과 예술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이 부부는 창작 활동을 넘어 한국 남종화의 보존과 계승을 목표로 횡성 냇가가 내려다보이는 터에 동헌·설매 박물관을 건립 중이다. 현재 2,000여 점의 작품이 준비되어 있으며, 박물관은 한국 남종화의 전통을 이어가는 문화 공간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이양형(동헌) 화백은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힘 있고 생동감 넘치는 붓끝으로 여전히 왕성한 창작을 하고 있다. ⓒ 진재중

▲한국화를 그리는 이정자(설매) 화백은 섬세한 붓질로 전통의 깊이와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 진재중
폐교가 되살아난 문화예술의 공간
이 화백은 "처음에는 마을 주민들이 반대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놀이터처럼 편하게 찾아오는 공간이 되었어요. 지금은 오히려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도 반대할 정도입니다"라고 담담히 말한다.
박물관 설립에 반대했던 마을 주민들도 이제는 새로운 문화 공간이 자리 잡았다며 기뻐하고 있다. 많은 탐방객이 남농 선생의 얼을 찾고 두화백의 붓에 담긴 예술을 경험하기 위해 박물관을 찾는다.
이로써 폐교로 방치될 뻔했던 마을은 박물관 덕분에 활기를 되찾으며, 횡성의 중요한 문화예술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주민들뿐 아니라 찾아온 관람객들로 붐비는 박물관. 전시를 관람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활기를 띠고 있다. ⓒ 진재중
한국화의 세계화를 꿈꾸는 동헌·설매 화백
"그림 덕분에 해외에도 자주 나가게 됩니다. 힘들 때도 있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해야지요. 해외에 나가면 오히려 한국보다 더 큰 환대를 받기도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동헌 이양형·설매 이정자 화백 부부는 한국 남종화를 국내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해외에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매년 일본과 중국을 방문해 초대전을 열며, 작품을 통해 한국 남종화의 전통과 아름다움을 소개하고 있다.
두 화백은 해외 전시에 대해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한국화를 알리는 만큼 신명나는 일도 없다"라며 "힘이 닿는 한 한국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라고 말한다.
이들의 활동은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동헌·설매 화백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화 거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호랑이 그림 앞에 선 두 화백 ⓒ 진재중
호랑이를 그리는 이유
"호랑이를 그리고 나면 오히려 힘이 더 생깁니다. 마치 그 기운을 그대로 받아오는 느낌이지요."
부부는 이렇게 말하며 호랑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두 화가는 50여 년 가까이 붓을 벗 삼아 창작 활동을 이어오며 한국화의 묵향을 지켜왔다. 특히 호랑이를 주제로 한 작품을 꾸준히 선보였으며, 다섯 마리 호랑이가 등장하는 '오호도' 연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경인년 호랑이해에는 가로 10m, 세로 1.4m 규모의 대형 작품 '백호도'를 공동 제작해 큰 화제를 모았다.
"다가오는 호랑이해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살아 움직이는 호랑이를 그리고 싶습니다."
이양형 화백은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잇는다.
"그 호랑이를 통해 전 세계가 호랑이의 기운을 받아 평화로운 세상이 되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려 합니다. 요즘처럼 어두운 세상을 호랑이의 힘과 생명력으로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거죠."
화백은 호랑이를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존재로 여기며, 나쁜 기운을 막고 용맹함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지닌 존재라고 말한다. 또한 최근 전 세계적인 갈등과 전쟁 상황, 특히 이란 전쟁의 아픔을 언급하며 호랑이의 포효가 전쟁을 멈추게 하길 바란다고 전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화폭을 가득 채운 호랑이는 살아 있는 실물보다 더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며, 날카로운 눈빛과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압도적인 생명력과 위엄을 전하고 있다. ⓒ 진재중
폐교에 깃든 한국화의 숨결
이양형·이정자 화백 부부의 작업은 단순한 창작을 넘어, 한국화의 뿌리를 지키고 다음 세대로 이어가기 위한 실천에 가깝다.
두 사람은 변화하는 미술 환경 속에서 한국화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그 흐름을 되돌릴 수 있는 힘은 결국 현장에서 이어지는 꾸준한 작업과 전승에 있다고 강조한다.
인터뷰 말미에 두 화백은 "한때 한국화가 한국 미술의 중심을 이루던 시절이 있었지만, 현재는 미술계에서 점점 시들고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라고 말하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이들의 철학과 삶이 고스란히 담긴 한얼문예박물관은 그 실천의 공간이다. 폐교를 되살린 이곳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지역과 예술이 호흡하는 문화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화의 전통적 미감과 현대적 해석이 공존하는 이 공간에서 관람객들은 한 시대의 예술이 어떻게 이어지고 확장되는지를 직접 체감하게 된다.
결국 이들이 남기고자 하는 것은 작품 그 자체를 넘어, 사라지지 않아야 할 한 줄기의 흐름이다. 붓끝에서 시작된 그 조용한 의지는 오늘도 누군가의 시선과 기억 속으로 스며들며, 한국화의 다음 장을 준비하고 있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붓을 놓지 않은 이양형 화백은, 세월이 쌓일수록 더욱 깊어진 시선과 필력으로 여전히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진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