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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일 만에 아들네 집을 다녀왔다(관련 기사 :
손자를 7개월째 못 만나고 있어요). 1년 전만 하더라도 나의 몸과 마음은 항상 그곳에 있었다. 손자를 돌봐주기 위해 오후 4시면 어김없이 차를 몰고 길을 달렸다. 매번 가는 길이어도 갈 때마다 첫사랑을 만나는 기쁨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오랜만에 가는 길이지만 그때의 감정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올해 큰손자는 여덟 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작은손자는 일곱 살이 되어 유치원에서 가장 큰 형이 되었다. 큰손자가 유치원을 졸업해도, 초등학교에 입학해도 나는 갈 수가 없었다. 마음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가고 싶었지만, 몸은 언제나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다. 큰손자는 연년생 동생이 태어나면서 만 네 살까지 우리 집에서 내 손에 자랐다. 생후 17개월 때부터 키우다 보니 정이 듬뿍 들었다.
큰손자에게 갑자기 생긴 고양이 알레르기로 육아는 멈추었고, 사랑은 갈 곳을 잃고 내 마음 안에서만 맴돌았다. 매일 아들네를 오가던 내 발걸음도 멈추었고 주말마다 할머니 집에 오는 아이들의 소란도 멈추었다. 간간이 아들이 보내주는 사진으로 깊은 그리움을 달래야 했다.
지난 8일, 큰손자의 휴대전화가 개통되었다는 소식을 아들이 전해 주었다. 오후에 산책하며 아이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연결이 되지 않아 속상한 마음에 산책을 멈추고 큰손자와 추억이 담긴 벤치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아가들이 할머니 손을 잡고 지나가는 모습을 부러운 듯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사랑하는 ○○이'라고 저장된 이름이 떴다.
"응, 사랑하는 손자 안녕?"
"할머니, 아까 전화했더라. 내가 모르고 빨간 버튼을 눌렀어. 할머니! 나 휴대전화 샀어."
"그래, 아빠한테 들었어. 정말 좋겠네. 초등학교에 입학한 거 축하해."
"할머니, 뭐해? 어디야?"
"우리 자주 앉아 있던 나무 의자에 있어. 생각나지?"
"아, 마트 가는 길. 알아 할머니. 영상 통화하자."
그러나 영상으로 전환되지 않고 그대로 끊겨버렸다. 아들이 아직 영상 통화가 안 되고 아이에게 이것저것 알려줄 게 많으니 다음에 통화하라는 메시지가 왔다. 그래도 오랜만에 손자의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지난 11일, 아침 등교 시간에는 통화가 될 것 같아 전화를 걸었지만, 또 받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아들에게 전화했다. 차 태워서 등교할 때 전화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잠시 후 아들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손자 전화기는 집에 놔두었다고 했다.
"할머니~"
"아이고 우리 강아지 학교 가는 거야? 학교 다니니까 어때?"
"재미있어. 어학원도 재미있고."
"그래, 밥도 잘 먹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들어. 발표도 잘 하고."
"어차피 발표는 번호 순서대로 해. 할머니, 전화한 김에 할 말 있어."
"무슨 말?"
"나 할머니가 삶아 준 옥수수가 먹고 싶어."
"옥수수? 마침 할머니가 삶아서 냉동실에 넣어둔 거 있어. 이따가 오후에 다시 쪄서 집 현관 손잡이에 걸어둘 테니까 학교 갔다 와서 먹어."
"알겠어."
"다음에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꼭 말해. 또 가지고 가서 현관 손잡이에 걸어둘게."
전화한 김에 할 말이 할머니표 옥수수를 먹고 싶다는 거라니. 갑자기 없던 힘이 불끈 솟아올랐다. 손주 둘에게 손편지를 따로 써서 봉투에 넣고 찐 옥수수와 함께 보냉백에 담았다. 아이들이 없을 시간에 가져다 놓기 위해 오후 2시 넘어서 출발했다. 살며시 주차한 뒤 가방을 현관 손잡이에 걸어두고 왔다. 손자들이 옥수수를 맛있게 먹었기를 바란다. 할머니 편지를 읽고 활짝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항상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몸도 마음도 불편했다. 전화기가 생겼으니 통화도 하고, 먹고 싶다는 음식도 가져다줄 수 있으니 정말 오래간만에 마음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이 행복하고 충만한 기분을 오래 느끼고 싶다. 천년만년, 내 사랑들. 사랑한다.

▲보냉백손편지와 옥수수가 담긴 보냉백을 아들네 현관 손잡이에 걸어두었다. ⓒ 황윤옥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