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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11 11:21최종 업데이트 26.03.11 11:21

[주장] 실손보험의 폐해, 의료계에 돌아오는 부메랑

의료의 신뢰와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변화를 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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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의료 ⓒ hush52 on Unsplash

실손의료보험은 원래 국민건강보험이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는 의료비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민간보험이다. 제도의 출발만 놓고 보면 그 취지는 분명했다.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상해 앞에서 개인이 감당해야 할 의료비 부담을 덜어 주는 보완 장치라는 점에서 실손보험은 일종의 안전판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보험은 본래의 순기능을 넘어 한국 의료체계의 왜곡을 키우는 구조로 바뀌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단순히 보험료가 오르는 현상이 아니다. 비급여 의료와 실손보험이 결합하면서 의료비를 통제하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졌고, 그 부담이 이제는 가입자뿐 아니라 의료계 전체에도 되돌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실손보험의 가장 큰 폐해로 지적되는 것은 비급여 과잉진료다. 이제는 병원문을 들어서는 순간 실손보험 가입 여부부터 물어보는 건 일상화된 풍경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까지 폭넓게 보장하다 보니, 환자는 의료비 부담을 직접 체감하지 못하게 된다. 병원의 측면에서 보면, 가격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하고 진료 횟수도 자율적으로 운영하기 쉬운 비급여 영역을 확대할 동기가 생긴다. 도수치료, 체외충격파, 각종 비급여 주사와 검사가 대표적이다. 이런 항목들은 꼭 필요한 치료인지 여부와 별개로 반복되기 쉽고, 비용도 빠르게 늘어난다. 그 결과 실손보험은 환자의 부담을 줄여 주는 장치이면서 동시에 불필요한 진료를 키우는 구조가 됐다.

이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도 빠르게 확산했다. 환자는 '어차피 보험이 있으니'라는 생각으로 필요 이상의 검사나 치료를 선택하기 쉬워지고, 일부 의료기관은 그 지점을 활용해 비급여 진료를 더 적극적으로 권하게 된다. 보험사 역시 초창기에는 넓은 보장 범위를 앞세워 시장 확대에 집중했다. 결국 환자, 병원, 보험사 모두가 제도의 빈틈을 공유하는 구조가 형성되었으며, 그 비용은 사회 전체로 전가됐다.

그에 따라 과잉진료와 보험금 지급 증가가 누적되면서 손해율은 악화했고, 보험사가 받은 보험료보다 지급한 보험금이 더 많은 상태가 반복됐다. 이런 부담은 결국 전체 가입자에게 돌아간다. 병원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 사람도 과다 이용이 반복되는 구조의 비용을 함께 떠안게 되는 것이다. 소수의 고액 이용자가 보험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다수의 가입자는 이를 함께 부담하는 현실은 실손보험이 더는 공정한 위험 분산 장치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실손보험의 왜곡, 의료체계의 불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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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실손보험의 왜곡은 국민건강보험 체계와 의료전달체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비급여 진료가 수익성이 높은 영역으로 자리 잡으면서, 의료자원은 점점 그쪽으로 쏠리게 된다. 반면 응급, 외상, 분만, 소아, 중증 치료처럼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필수의료는 상대적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실손보험은 민간보험이지만, 그 파장은 민간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비급여 진료의 팽창은 결국 의료체계의 불균형으로 이어진다.

이런 구조적 문제는 문재인 케어 이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는 평가가 많다. 문재인 케어의 핵심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였다. MRI 건강보험 적용 확대, 초음파 급여화, 선택진료비 폐지, 상급병실료 급여 확대 등은 국민이 직접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를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정책의 취지 자체는 정당했고, 실제로 많은 환자가 혜택을 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비급여의 총량과 구조를 함께 관리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기존의 주요 비급여 항목이 급여화되자 일부 의료기관은 줄어든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새로운 비급여 항목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도수치료, 체외충격파, 영양주사를 비롯한 각종 비급여 검사와 처치가 그 자리를 빠르게 채웠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문재인 케어는 비급여 일부를 급여권 안으로 끌어들였지만, 비급여의 가격과 종류, 이용량을 함께 통제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보장성은 확대했으나 비급여 시장은 다른 형태로 다시 팽창했고, 실손보험은 그 비급여를 그대로 떠받쳤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권과 당국은 이 문제를 통제하지 못했다.

결국 건강보험 확대 정책과 민간 실손보험 구조가 충돌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건강보험이 부담하고 남은 비용을 실손보험이 보장하는 구조에서는 환자가 체감하는 의료비 장벽이 매우 낮아진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강화될수록 원래는 국민 부담이 줄어들어야 하지만, 비급여 영역이 동시에 다시 커지고 실손보험이 그것을 흡수해 버리면 전체 의료 이용량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 검사도 늘고, 치료도 늘고, 병원 방문도 는다.

예를 들어보자. 영양주사 논란은 이런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초기 실손보험은 약관이 포괄적이어서, 의사가 치료 목적이라고 기재하면 비급여 주사 역시 비교적 폭넓게 보상되는 경우가 많았다. 피로 해소나 컨디션 개선 수준의 주사도 진료 기록상 치료 목적이 부여되면 보험금 청구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영양주사 시장은 빠르게 커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심사 기준이 달라졌다. 이제는 단순히 의사가 처방했다는 이유만으로 지급이 되지 않고, 해당 성분이 실제 질환 치료에 필요한지, 검사 결과와 허가사항에 맞는지를 더욱 엄격하게 따진다. 이는 제도가 얼마나 느슨하게 운용됐는지를 보여 주는 동시에, 의료의 판단이 점차 보험 심사의 틀 속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뜻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의료계는 실손보험 문제를 더는 남의 일로만 볼 수 없게 된다. 실손보험을 통한 비급여 팽창은 한때 일부 의료기관에 낮은 의료수가 문제 해결과 함께 수익 기회를 안겨 준 것처럼 보였을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이것은 의료계에 '독이 든 성배'가 되고 있다. 처음에는 달콤해 보였지만, 결국 의료계의 자율성과 신뢰를 갉아먹는 구조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부메랑은 의사의 진료 자율성의 위축이다. 예전에는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보고 치료를 판단하면 됐다. 지금은 이미 보험금 지급 여부를 둘러싸고 보험사의 심사 기준이 진료 현장 깊숙이 들어와 있다. 식약처 허가사항, 검사 수치, 진료기록의 표현 하나까지 보험사의 검토 대상이 된다. 환자는 치료가 필요한지보다 보험이 되는지를 먼저 묻고, 의사는 의학적 판단보다 나중에 문제 될 가능성을 먼저 고려하게 된다. 의사의 판단이 보험사의 해석에 종속되는 현실은 결국 진료 자율성을 잠식한다.

이 과정에서 환자와 의사의 신뢰도 함께 흔들린다. 진료실이 치료의 공간이 아니라 보험금 상담과 서류 발급의 공간처럼 변질되면, 의료 본연의 목적은 뒤로 밀린다. 보험금이 거절되면 환자의 불만은 보험사만이 아니라 병원으로 향하고, 진료 현장은 설명과 설득의 공간이라기보다 갈등과 방어의 공간이 된다. 여기에 비급여 중심 진료과와 필수의료 사이의 격차까지 커지면서, 의료계 내부의 불균형도 심해진다. 결국 단기적 수익처럼 보였던 구조가 장기적으로는 의료계 전체의 신뢰를 깎아내리는 셈이다.

의료계도 자정 노력 필요해

우리 의료계는 어찌해야 하는가? 이제 더는 단순 방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먼저 의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과도한 비급여 처방을 스스로 절제하려는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 실손보험 문제를 외부 규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의료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내부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비급여 항목의 명칭과 기준, 가격 체계를 더 투명하게 만드는 논의에 의료계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표준화 논의에 소극적으로 머무를수록 주도권은 보험사와 정부 쪽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셋째, 비급여 수익에 기대지 않아도 필수의료가 유지될 수 있도록 적정 수가 보장과 공적 지원 확대를 더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지금처럼 낮은 급여 수가와 비급여 의존 구조가 계속되면, 왜곡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싸워야 하는 이유다.

결국 지금의 실손보험 문제는 어느 한쪽만 탓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보험사는 넓은 보장을 경쟁적으로 팔았고, 의료기관은 비급여 시장을 수익 통로로 활용했으며, 환자는 보험을 이유로 의료 이용에 대한 절제를 잃기 쉬웠다. 정부 역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비해 의료수가의 현실화, 비급여 관리, 실손보험 구조 개편에는 더디게 대응했다. 이 모든 요소가 겹치면서 실손보험은 위험을 덜어 주는 장치가 아니라 비용을 키우고 신뢰를 깎아내리는 구조로 변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보험료를 올리거나 보장을 줄이는 식의 미봉책이 아니다. 비급여 항목의 가격과 명칭, 진료 기준을 투명하게 만들고, 실손보험이 제한 없이 비급여를 떠받치는 구조를 손봐야 한다. 동시에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는 의료수가의 현실화와 비급여 관리가 함께 가야 한다. 공보험은 확대되는데 민간보험이 그 틈을 통해 다시 비급여 시장을 키우는 방식이라면, 국민의 부담은 줄어들지 않고 다른 경로로 되돌아올 뿐이다.

실손보험의 폐해를 요약하면, 비급여 의료와 실손보험이 결합하면서 의료비가 통제 없이 증가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 케어는 구조적 모순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낸 계기였다. 의료계 또한 이 문제를 더는 외부의 규제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독이 든 성배를 계속 손에 쥐고 있을 것인지, 아니면 의료의 신뢰와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변화를 택할 것인지, 이제는 답해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 글쓴이 김태중 인권연대 운영위원은 의사로 재직 중입니다.


#실손보험#영양주사논란#의료개혁#김태중#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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