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12일, 후쿠시마현 오쿠마시에 위치한 도쿄전력(TEPCO)이 운영하는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4호기 원자로를 지나가는 작업자.
ⓒ AP/연합뉴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과 쓰나미가 촉발한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는 올해로 15년을 맞았다. 그러나 '15년'이라는 말이 이 재난의 종결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후쿠시마 핵재난은 끝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재난이다. 녹아내린 핵연료 약 880톤 가운데 실제로 인출된 양은 0.9g에 불과하고, 하루 평균 80톤의 방사성 오염수가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 생겨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내세우는 '2051년 폐로 완료'는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된 계획이라기보다 정치적 선언에 가깝다.
880톤과 0.9g의 현실
후쿠시마 사고의 핵심은 녹아내린 핵연료 잔해, 이른바 '연료 데브리'다. 후쿠시마 제1 원전 1·2·3호기 내부에는 핵연료와 피복관, 원자로 구조물이 수천 도의 고열 속에서 녹아 뒤섞인 고방사성 물질이 남아 있다. 사람이 가까이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치명적 피폭이 가능한 초고선량 물질이다. 이 데브리를 제거하는 것이 폐로의 핵심이지만, 사고 발생 13년 만인 2024년 11월에야 2호기에서 약 0.7g이 처음 채취됐고, 이후 추가 시료를 합쳐도 총량은 1g에도 미치지 못한다. 880톤과 0.9g. 이 압도적인 격차야말로 후쿠시마 수습의 실제 수준을 보여준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오랫동안 로봇 기술을 통해 데브리를 제거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원자로 내부의 극고선량 방사선은 로봇의 전자회로와 장비를 빠르게 손상시켰고, 수년간 개발한 로봇팔 계획도 사실상 실패했다. 이후 낚싯대 형태의 장비로 소량 채취를 시도하는 방식으로 계획이 바뀌었지만, 본격 인출 시점은 2030년대 후반 이후로 미뤄졌다. 최근 조사에서는 사고 당시 낙하한 조명기구 등 새로운 수중 간섭물까지 확인되면서 작업 경로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사고가 일어난 지 15년이 지났지만, 내부 상황 파악조차 완전히 끝나지 않은 셈이다.
이 계획의 비현실성은 다른 사고 사례와 비교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에서는 약 100톤(잔해 포함 시 130여 톤)의 연료를 제거하는 데만 5년이 걸렸고, 후처리까지 완료하는 데는 약 12년이 소요됐다. 후쿠시마는 그보다 훨씬 많은 880톤 규모의 데브리가 남아 있는 데다, 방사선 환경과 구조물 손상 정도도 비교할 수 없이 심각하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2051년 폐로 완료를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현재의 그램(g) 단위 시범 채취 수준을 감안하면, 단순 계산만으로도 2051년 완료 목표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드러난다.
역사적 선례도 이를 뒷받침한다. 영국 윈즈케일(셀라필드로 변경), 미국 스리마일섬,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등 과거의 중대 원전 사고 가운데 폐로가 완전히 마무리된 사례는 아직 하나도 없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후쿠시마만 40년 안에 폐로를 끝낼 수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오염수 문제는 후쿠시마 핵재난이 왜 장기 재난인지를 더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사고로 파괴된 원자로 건물에는 지금도 지하수와 빗물이 계속 유입되고, 이 물이 연료 데브리와 접촉하면서 방사성 오염수가 매일 80~90톤씩 새로 만들어진다. 일본 정부는 동토차수벽을 설치해 지하수 유입을 막겠다고 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완전 차단은커녕 '일부 억제' 수준에 머문다는 평가가 이어져 왔다. 결국 오염수 발생 자체가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2023년부터 이른바 'ALPS 처리수'의 해양 방류를 시작했다.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통해 일부 핵종을 제거한 뒤 희석해 바다에 내보내는 방식이다. 하지만 오염수가 계속 생기는 한, 방류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장기적인 방출 정책일 뿐이다. 더욱이 ALPS는 방사성 물질을 소멸시키는 기술이 아니라, 그것을 물에서 분리해 다른 형태의 폐기물로 농축하는 기술이다. 그 결과 고농도 방사성 찌꺼기인 슬러리가 계속 발생한다. 이 슬러리는 높은 선량 때문에 장기 보관과 엄격한 차폐가 필요한 고위험 폐기물이며, 최종 처분 방안도 아직 불분명하다. 오염수를 처리하면 할수록 또 다른 고방사성 폐기물이 쌓이는 구조인 것이다.
응급조치가 남긴 또 다른 폐기물

▲지난 1월 22일 일본 후쿠시마현 오쿠마정에 위치한 쓰나미로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3호기 건물에서 작업복과 마스크를 착용한 작업자들이 해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사고 초기 응급조치로 사용된 제올라이트 흡착체도 마찬가지다. 세슘을 흡착해 오염 확산을 줄이는 데는 기여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제올라이트 자체가 고방사성 고체 폐기물로 바뀌었다. 세슘-137의 반감기가 약 30년임을 감안하면, 이 물질 역시 수십 년 이상 관리가 필요하다. 응급조치가 새로운 장기 위험을 낳은 셈이다. 후쿠시마 사고 수습이 단순히 "정리"의 문제가 아니라, 위험이 다른 형태로 옮겨가며 축적되는 과정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해양 방류의 안전성을 강조하기 위해 해양생물 사육 실험 결과를 내세워 왔다. 넙치, 전복, 해조류 등을 처리수에 노출시켜도 유의미한 농축이 관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실험은 실제 바다의 복잡한 먹이망과 퇴적물, 장기 순환 구조를 반영하지 못한다. 인공 수조에서 짧은 기간 동안 단일 종을 관찰한 결과를 근거로, 수십 년에 걸친 해양 방류의 안전성을 단정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무리다. 환경과 보건의 문제에서 중요한 질문은 "위험이 입증되었는가"가 아니라 "안전이 충분히 입증되었는가"이다. 되돌릴 수 없는 해양 방류를 추진하면서 이 질문에 충분히 답했다고 보기 어렵다.
토양 오염 문제 역시 심각하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제염 작업으로 나온 방사성 오염토는 막대한 규모에 이르렀고, 일본 정부는 이를 중간 저장 후 현 밖에서 최종 처분하겠다고 약속해 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정도 규모의 최종 처분장을 확보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 결과 나온 정책이 '오염토 재활용'이다. 일본 정부는 원래 방사성 폐기물로 분류해 온 기준보다 훨씬 높은 8000Bq(베크렐)/kg 이하의 오염토를 공공사업과 농지 조성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 수치의 오염토가 자연 감쇠를 통해 100Bq/kg 수준으로 떨어지기까지는 약 191년이 걸린다. 2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장기 관리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데 있다. 오염토 위를 깨끗한 흙으로 덮어 농지를 만들거나 도로 기초재로 쓰는 방식은 겉으로는 안전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홍수, 침식, 공사, 농지 교란 등으로 흙이 뒤섞일 가능성을 수백 년 동안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오염토 재활용 정책은 처분장 확보 실패의 부담을 미래 세대와 사회 전체 공간으로 분산시키는 방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후쿠시마 사고는 기술의 실패만이 아니라 건강과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고 이후 소아·청소년 갑상선암 문제를 둘러싸고 과잉진단 논란이 이어져 왔지만, 방사선에 특히 취약한 아동의 특성과 체르노빌 이후의 경험을 생각하면 장기적 건강영향에 대한 독립적이고 지속적인 조사가 더욱 필요하다. 또한 후쿠시마 현장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노동자가 폐로 작업에 투입되고 있으며, 고선량 환경에서의 노동은 필연적으로 피폭 위험을 동반한다. 이 재난의 비용은 단지 돈으로만 계산되지 않는다. 주민의 삶, 노동자의 건강, 미래 세대의 불안까지 포함한 사회 전체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여전히 2051년 폐로 완료를 말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은 정반대다. 데브리는 거의 손도 대지 못했고, 오염수는 계속 발생하며, 슬러리와 제올라이트 같은 2차 폐기물은 쌓여가고 있다. 오염토의 최종 처분도 불투명하다. 사고 수습 비용은 계속 불어나고 있지만, 연료 데브리 처분 같은 핵심 비용은 아직 제대로 계산조차 되지 않았다. '2051년 폐로'는 현실을 설명하는 계획이 아니라 불안을 관리하기 위한 정치적 구호일 가능성이 크다.
후쿠시마가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

▲지난 10일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 등 주최로 일본 후쿠시마 핵폐수 해양투기 중단 캠페인이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후쿠시마 15년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원전 사고는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고의 순간은 짧지만, 그 대가는 수십 년, 때로는 수백 년 동안 이어진다. 880톤의 데브리, 하루 80톤의 오염수, 191년짜리 오염토, 끝없이 쌓이는 2차 폐기물은 핵에너지가 남기는 시간의 규모를 보여준다. 우리는 과연 그 시간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용후핵연료와 고준위폐기물의 처분 문제조차 풀지 못한 채, 원전 확대만을 말할 수 있는가.
후쿠시마 핵재난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교훈 역시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낙관적 구호가 아니라, 수습되지 못한 현실을 직시하는 태도다. 후쿠시마 사고 15년은 원전과 에너지 정책을 다시 묻는 출발점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