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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11 10:36최종 업데이트 26.03.11 10:36

"인공지능 발전할수록 인간이 사유할 것 늘어나"

[인터뷰] '에세이철학회' 창립 준비하는 이종철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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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언제부터 우리 삶에서 멀어졌을까. 대학 강의실의 전문 언어가 되거나, 값싼 자기 계발 문구로 소비되는 사이, 철학 본래의 숨결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이종철 박사는 그 빈자리를 오래 바라보아 왔다. 그가 내놓은 답이 바로 '에세이철학'이다.

에세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형식으로 철학을 다시 불러내고, 한글이라는 우리 언어로 세계와 대화하겠다는 선언. 2026년 봄, 그 선언이 '에세이철학회'라는 공동체로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 2월 24일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한 이종철 박사와 1차 대화를 나눈 뒤 카톡과 전화 등으로 이야기 나눈 것을 재구성해 보았다. 필자도 부전공이 언어철학인지라 긴 대화를 나누었지만 짧게 줄였다.

에세이철학 운동을 벌이고 있는 이종철 회장과 누리집을 만든 최은경 씨
에세이철학 운동을 벌이고 있는 이종철 회장과 누리집을 만든 최은경 씨 ⓒ 김슬옹
- '에세이철학회' 창립을 준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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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을 오래 연구하면서 늘 묻게 되었습니다. '대중들에게 철학은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가', '왜 한국 철학자들은 외국에서 들여온 남의 철학이나 옛 철학만 하고 있는가'. 철학이 대학 강의실에 갇히거나 자기 계발 문구로 소비될 때마다 본질적인 것이 빠져 있다는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에세이철학'은 그 답답함에 대한 저 나름의 응답입니다. 추상적인 분과 철학이 아니라, 삶의 매 순간 깊이에서 만나는 철학입니다. '삶이 무엇인가, 왜 살아야 하는가, 자유란 무엇인가'와 같은 근본 물음을 일상언어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한글이야말로 철학에 최적화된 언어임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2026년 1월, 뜻을 함께할 귀인을 만났습니다. 에세이철학회 웹사이트(www.essayphilosophy.com)가 출범한 지 한 달 만에 회원 150명, 전문 칼럼 700여 편이 쌓였습니다. 텍스트가 홀대받는 이 시대에 '거대한 텍스트 생태계'가 조성되는 순간입니다."

- 에세이를 철학의 형식으로 본다는 것,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몽테뉴가 에세이를 처음 쓸 때, 그는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 물음 자체가 철학이었어요. 에세이는 완성된 진리를 전달하는 형식이 아니라, 사유가 길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에세이'와 '에세이철학'은 다릅니다.

에세이가 주관적 감성에 머문다면, 에세이철학은 그것을 보편화하고 객관화합니다. 무엇보다 에세이철학은 철학 고유의' 비판'을 강조합니다. 베이컨의 네 가지 우상에서' 권력과 국가의 우상'까지, 일체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망치의 철학을 지향합니다."

- 저서 <철학은 반란이다>와 같이 '에세이철학회'도 어떤 의미에서 '반란'인가요?

"하하, 좋은 연결이네요. 저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 반란이라고 봅니다. '철학은 전문가만 하는 것'이라는 통념과 '에세이는 가벼운 글쓰기'라는 편견, 이 두 가지에 반란을 겁니다. 한국 철학계는 아직도 서양철학의 언어로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세계 10대 강국이지만 우리가 만든 <철학 대사전>조차 없고, 네이버 철학 사전은 일본 번역본입니다. 이 상태로는 한 세기가 지나도 서양 사유의 식민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에세이철학회는 그 탈주의 출발점입니다."

- 인공지능이 글을 쓰는 시대에 인간의 '에세이철학' 쓰기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인공지능은 정보를 조합하고 언어를 생성하지만, '왜 이것이 나에게 문제인가'를 묻지는 않습니다. 에세이철학은 바로 그 '나'에서 출발합니다. 개인의 균열, 시대의 모순, 관계의 상처, 이것을 심층적이고 총체적으로 사유하는 언어가 에세이철학입니다.

인공지능의 기능과 능력이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이 사유할 것은 더 많이 늘어납니다. 컴퓨터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사용자가 쓸 줄 모르면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듯, 인공지능의 답변도 결국 묻고 결정하는 인간에 의해 결정됩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수십만 년의 진화 속에서 역경을 극복해왔습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사유하는 능력이 더 소중해집니다."

- 에세이철학회에 함께하기를 바라는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어도 됩니다. 삶이 때로 무겁고, 때로 아름답고, 때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분이라면 충분합니다. 에세이철학은 이 시대 가장 대중적이고 융합적인 사유입니다. 사유는 자기에서 시작하지만 혼자 완성되지 않습니다. 에세이철학회는 그 사유가 서로에게 닿는 자리입니다. 양팔을 번쩍 들어 환영합니다."

에세이 철학을 주창한 ≪철학과 비판≫(이종철 저) 표지 @수류화 에세이 철학을 주창한 ≪철학과 비판≫(이종철 저) 표지 @수류화
에세이 철학을 주창한 ≪철학과 비판≫(이종철 저) 표지 @수류화에세이 철학을 주창한 ≪철학과 비판≫(이종철 저) 표지 @수류화 ⓒ 도서출판수류화개


이종철 회장과의 대화는 철학이 얼마나 뜨거운 현실의 언어가 될 수 있는지를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반란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용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그는 철학의 오래된 문을 다시 열고 있다. 한글로 철학을 하고, 에세이로 세계를 읽으며, 함께 쓰는 공동체를 만든다는 그 꿈. 에세이철학회의 항해는 이제 막 닻을 올렸다.

#에세이철학#에세이철학회#이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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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학과 세종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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