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저성장의 늪을 빠져나오려면 경제 활동 인구의 3분의 1인 국민 1000만 명이 사회연대경제 생태계에 참여해야 한다는 과감한 구상이 나왔다. 전국 곳곳에서 사회연대경제 방식의 창업이 필요하다는 정책적 방향도 나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한국 성장 전략을 주제로 나눈 대담에서다.
우리 사회가 과거의 성장 전략을 넘어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적 가치를 새로운 자본주의의 핵심 성장 지표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착함을 과학적 형태로 바꿔서 사회적 가치를 제대로 측정하고 보상하는 것이 필수 조건으로 제시됐다.
사회적가치연구원(이사장 최태원)은 10일 서울 한국고등교육재단 컨퍼런스홀에서 '2026 가치와 성장 포럼'을 개최했다. '저성장 돌파구, 솔루션 변화'를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학계와 정책 전문가, 기업 관계자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포럼의 핵심은 경제 성장과 사회적 가치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한계에 달한 국가 성장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데 맞춰졌다.
경제활동 인구 3분의 1 참여 필요, "골목마다 사회연대경제 창업하자"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진행한 대담이었다. 이들은 사회적 가치 영역에 최대한 많은 국민들이 참여하는 것을 국가 성장의 필수 조건으로 꼽았다.
최 회장은 "사회적 가치 하나만으로 모든 성장이 이루어지지는 못하지만, 가치가 빠진다면 국민이 행복하지 않은 의미 없는 성장이 될 수 있다"면서 성장에 대한 새로운 설계가 필요하다고 전제하고, 내수 확대와 실질적인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기 위한 그림을 제시했다.
그는 "aspiration(염원)이 필요한데, 제 생각에는 경제 활동 인구인 3000만 명 중에 사회적 경제에 참여하는 인원이 최소한 1000만 명은 돼야 한다"면서 "새로운 성장에 공감하는 주체들이 정부, 기업, NPO, 소셜벤처 등을 가리지 않고 최대한 모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만 폭발적인 시너지가 난다는 의미다.
윤 장관도 "우리 기업들이 수출을 많이 하면서 대한민국이 크게 성장해 왔지만 내수에서의 성장도 대단히 중요하다"면서, "내수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공동체적 성장이며 이를 해결하는 것은 사회연대경제"라고 말했다. 그는 "도시든 농촌이든 어촌이든 골목마다 마을마다 사회연대경제 방식으로 창업하자"고 제안했다.

▲(왼쪽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2026 가치와 성장 포럼'에서 한국 성장 전략을 주제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오른쪽은 모더레이터를 맡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장용석 교수. ⓒ 사회적가치연구원
사회적 가치 품은 '새로운 자본주의', 주민에게 이익 돌려주는 '제2의 공동체 운동'
두 사람은 대규모 참여를 이끌어내려면 기존 자본주의의 잣대부터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업은 경제적 이익을 최대로 추구하고 정부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금을 투입하는 전통적 방식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최 회장은 "새로운 자본주의는 성장이라는 함수 안에 사회적 가치를 포함해야만 한다"고 짚었다. GDP로 보여지는 기존의 단순 성장만으로는 양극화 등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회적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의미다. 최 회장은 "사회적 가치를 포괄하는 새로운 형태의 GDP 측정 방법을 학계와 연구소가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성장 함수에 사회적 가치를 넣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도 거론됐다. 최 회장은 "착함을 과학적 형태로 바꿔야 된다"고 말했다. 누군가의 도덕성에만 기대서는 복잡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이다.
SK가 지난 10년간 진행한 사회성과인센티브(SPC) 실험을 예로 들었다. 선한 의지를 과학적인 데이터와 보상 체계로 전환하는 작업이다. SPC를 환경 분야로 넓힌 환경보호크레딧(EPC) 개념도 소개했다. 환경을 덜 훼손한 주체에게 인센티브를 주어 규제 회피 대신 자발적 환경 보호를 유도한다.
윤 장관은 정부 부처 간, 그리고 중앙과 지방을 잇는 '연결'을 강조했다. 그는 행정안전부를 중심으로 사회연대경제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기후 위기 대응과 지역 돌봄 문제 해결에 사회연대경제 조직이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행정안전부는 지역 주민이 직접 참여하고 수익을 나누는 에너지 전환 사업 '햇빛 소득 마을'도 2500개 조성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오는 3월 27일부터는 전국적으로 통합 돌봄 관련 법도 시행된다.
윤 장관은 이를 '제2의 공동체 운동'이라고 명명했다. 과거 새마을 운동을 제1의 공동체 운동이라고 한다면, 사회연대경제 방식으로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창출된 경제적 성과를 오롯이 지역 주민에게 돌려주는 제2의 공동체 운동이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성장과 가치의 분리가 낳은 '저성장 늪'

▲‘불균형의 시대: 경제 성장과 사회 가치의 분리’ 세션에서는 한국 경제의 현황 진단이 이어졌다. (왼쪽부터)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이은주 교수(진행),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이재원 원장,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임동균 교수. ⓒ 정진영
대담에 앞서 진행된 세션에서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진단이 이어졌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달성했지만, 삶의 질과 사회적 지표는 제자리걸음인 현실이 도마 위에 올랐다.
'불균형의 시대: 경제 성장과 사회 가치의 분리'를 주제로 진행된 세션1에서 패널로 나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임동균 교수는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경제 성장을 짓누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니계수가 상승할수록 1인당 GDP가 하락한다는 분석을 근거로 제시하며, 경제 구조에 사회적 가치가 반영된 '사회적 번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이재원 원장 역시 잠재성장률 하락을 가장 큰 위기로 꼽았다. 경제 성장에만 매달린 결과 인구 소멸과 지역 불균형이 발생했고, 이는 고스란히 정부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이 원장은 단기 처방을 넘어선 근본적인 구조 개선을 촉구했다.
숫자로 증명된 보상의 힘, 10년의 'SPC' 실험

▲사회적가치연구원 정명은 실장이 '사회성과인센티브(SPC)로 설계하는 가치 기반 성장'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사회적가치연구원
세션2 '연결의 경험'에서는 최 회장이 언급한 '착함의 과학화'에 대한 실제 결과물이 공개됐다. 사회적가치연구원 정명은 실장이 지난 10년간 진행된 사회성과인센티브(SPC) 프로젝트의 성과를 발표했다.
SPC는 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성과를 화폐 단위로 측정하고, 그에 비례해 현금을 보상하는 구조다. 지난 10년간 468개 기업이 참여해 약 5364억 원의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냈고, 769억 원의 인센티브가 지급됐다.
효과는 명확했다. 인센티브를 받은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3배 더 많은 사회적 성과를 냈다. 매출도 미참여 기업 대비 34% 높았다. 정부의 전통적인 사전 보조금 방식보다 고용과 생산 유발 효과가 최대 2배가량 높았다. 정 실장은 사회문제 해결이 더 이상 비용이 아니라, 기업의 재무적 안정성을 높이는 자산이자 새로운 성장 전략임을 수치로 보여줬다.
"착한 일도 시장 논리로" 현장의 룰 메이커들

▲'가치의 연결' 세션에서는 사회적 가치와 비즈니스 성공을 동시에 추구하는 소셜 벤처 창업가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왼쪽부터) 우주 김정현 대표, 수퍼빈 김정빈 대표, 사회적가치연구원 정명은 실장(사회) ⓒ 정진영
세션3 '가치의 연결'에서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미션으로 고군분투해 온 소셜 벤처 창업가들의 생생한 경험담이 공유됐다.
AI 기반 순환자원 회수 로봇 '네프론'을 운영하는 수퍼빈 김정빈 대표는 공공재인 환경 문제를 시장 안으로 끌어들였다. 재활용에 동참한 시민에게 즉각적인 보상을 지급하는 구조를 설계해, 환경 보존과 경제적 이익을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청년 주거 문제를 다루는 우주 김정현 대표는 철저한 시장 논리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사회문제를 풀겠다는 선의로 출발하더라도, 실제 사업은 투자자를 설득할 수 있는 경제적 언어로 설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두 창업가의 이야기는 사회적 가치 추구와 비즈니스 성공이 결코 상충하지 않음을 보여줬다.
포럼을 주최한 사회적가치연구원 나석권 대표이사는 "한때 성장은 비교적 분명한 개념이었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고, 더 크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은 나중에 해결하면 될 비용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 그런 분리적 사고로는 성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포럼은 가치가 성장의 조건이 될 수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자리"라면서,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제도와 구조로 작동시킬 수 있는 정부와 시장의 만남을 더 많이 하기 위한 첫 발자국"이라고 이날 행사의 의미를 전했다.

▲사회적가치연구원이 개최한 ‘2026 가치와 성장 포럼’에는 학계와 정책 전문가, 기업 관계자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 사회적가치연구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소셜임팩트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