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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날씨는 여전히 오락가락하지만, 오랜만에 볕이 좋은 날이었다. 베란다 밖으로 다양한 새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홀린 듯 카메라를 둘러메고 뒷산으로 향했다. 지난 9일에도 이 길을 올랐다.
좁은 길 사이로 새 소리를 따라 올라가니 유난히 새가 많이 모여 있는 작은 텃밭을 발견했다. 그 텃밭 맞은 편에서 어떤 새가 저렇게 우는지 관찰을 시작했다. 얼마 전에 보았던 동박새보다 크고, 까치 보다는 조금 작은 크기의 회색 머리를 가진 직박구리 무리임을 알 수 있었다.
직박구리 한 마리가 빼액, 삐이익 울기 시작하자 다른 직박구리들도 맞장구치듯 따라 울었다. 한참을 서로 떠들던 직박구리 무리는 밭 옆 나무에 매달려 있다가 몇 마리가 바닥으로 내려 앉았다. 직박구리를 설명하는 자료를 보니 지상으로 내려오는 일이 거의 없다고 되어 있다. 그 설명을 잠시 의심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노리고 지상으로 내려 왔는지 곧장 알게 되었다. 상추였다. 텃밭 한쪽에서 여린 잎을 자랑하던 상추를 향해 직박구리 무리들이 번갈아 내려앉기 시작했다. 한 무리가 망을 보는 동안 다른 무리의 직박구리들은 망설임 없이 상춧잎을 뜯어 먹기 시작했다.
상추 식사에 집중하던 직박구리들

▲직박구리상추 서리의 현장 ⓒ 이의진
직박구리와 눈이 마주친 것 같았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카메라 전원을 켜고 직박구리가 상추를 서리하는 장면을 찍었다. 얼마나 야무지게 상추를 뜯어 먹는지, 내 입에서 군침이 돌 정도였다. 평소 먹는 방송을 보는 편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왜 그런 영상을 보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10분이 흘렀다. 그런데도 이 상추 도둑들은 식사를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상추를 다 뜯어 먹어야 그만둘 기세였다. 순간, 텃밭 주인이 안타까워 "상추 도둑이야!" 하고 외쳐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때 문득 동물 관련 프로그램에서 겨울 잠을 자기 전 새끼에게 먹이 구하는 법을 가르치는 어미에게 귤 서리를 당한 농장 주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농부들은 씨앗을 심을 때 세 개를 심는다고 한다. 하나는 나를 위해, 하나는 동물을 위해, 하나는 자연을 위해."
가만히 보니 그 텃밭의 다른 작물들은 새가 먹지 못하도록 그물을 씌워 두었다. 그런데 상추 밭만 그물이 없었다. 그제야 어쩌면 이 상추 밭은 원래 이 공간의 주인인 새들에게 내어준 식탁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넓게 보지 못하는 옹졸한 나의 마음으로 저 녀석들을 도둑으로 몰아세운 셈이었다.
텃밭 입구에는 대개 '무단침입 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땅은 원래부터 새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던 터전이었다. 무단 침입은 사람들 사이의 약속일 뿐 그날 내가 목격한 것은 도둑질이 아니라, 누군가가 미리 남겨 둔 봄 한 끼 식사였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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