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저문 바람의 노래
- 고재종
바람이 쓰다듬는 저물녘의 노래는
시오리 읍내 장에 갔다가 뉘엿뉘엿 돌아오던
아버지의 두루마기 자락처럼 지극하네
불콰해진 강물, 반짝이는 고요를 깨며
누군가를 몰래 호출하는 뻐꾸기
이때쯤 바람은 수수밭 가를 서성거렸지
늘 굽은 등을 보이며 숨어드는
쓸쓸한 꿈들과
짐짓 보람도 없이 저미는 시간의 갈기조차
가만가만 다독이던 바람의 노래
노을빛, 휘파람소리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은 능선으로 굽이친다네
이제는 노래로도 모자라 노래도 버리고
너무 멀어져서 명치끝만 타는 사랑의
길목 어둡지 않게
하나 둘 별들을 송출하는 분꽃 나팔들
내 늦은 귀가를 조율하던 어머니의 마루에서
오늘은 무엇을 넣고 빼서
처마 끝에 그리움의 풍경을 내다 걸까
출처_시집 <독각>, 문학연대, 2022
시인_고재종 : 1984년 <실천문학> 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바람 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 <새벽 들><사람의 등불> <날랜 사랑> <앞 강도 야위는 이 그리움>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독각>등이 있다.

▲말로 나오지 못한 것들은 산 능선처럼 오래 굽이친다. ⓒ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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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코로의 그림이 좋다. <큰 나무 두 그루가 있는 초원>(1865~1870)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면의 풍경화처럼 느껴진다. 코로의 풍경화를 보고 있으면 고재종의 <저문 바람의 노래>가 떠오른다. 그의 시에는 소쇄원의 바람 소리가 배어 있다. 관조적 순간을 향유하는 시인은 존재의 평온을 누린다. 노을빛과 휘파람 소리가 막힘없이 탁 트인 느낌을 준다. 그래서 더 아름답게 다가온다. 이렇게 소박한 사물들로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의 세계를 노래하다니! 이것을 풍경의 음악이라고 해두자.(이병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