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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차. 김애란 수필 '잊히기 쉬운 이름'을 듣다가 고속도로를 잘 못 들어섰다. 부산 방향으로 가야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서울 방향이다. 김애란 작가의 에세이를 오디오북으로 들으면서 어떤 부분에서 갑자기 머리속에서 실타래가 풀리듯 생각이 뻗어 나갔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선배가 책의 어떤 부분을 인용했다는 내용을 들으며 나 또한 김애란 작가의 글이 따라하고 싶을 만큼 좋다고 느끼던 순간이었다.
바로 그 부분이었다. 그러면서 책은 몇천 년 몇백 년을 걸쳐서 글 쓰는 사람들을 이어주고 글쓰기를 이어가게 만든다는 생각을 했다. 이 내용으로 글을 쓰면 되겠다고 글감 한 자락을 막 건져 올린참이었다. 그 순간 눈 앞에는 서울행 톨게이트가 보였고 멋진 글이 나올 것 같은 기대감은 저 멀리 내던져졌다. 시간도 빠듯한데 어짜자고 오디오북을 틀어가지고 이런 실수를 했냐며 스스로를 타박했다. 급하게 오디오북을 끄고 네비게이션 볼륨을 높였다.
김금희 작가의 '첫여름, 완주'를 읽으면서는 그런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 유머가 담긴, 땀이 배어든것 같은 성장이야기. 김애란 작가는 슬라임 만능술사 같았다. 김애란 작가를 통과한 언어는 여러 모양으로 바뀐다. 평범한 언어가 마치 새로운 언어가 탄생하듯이 다른 형태와 색을 입는다. 신비하다고 느껴지고 부럽기도 했다. 박완서 작가의 글은 자신을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해서 오래 남았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읽으면서 작가의 섬세하면서 솔직함에 감탄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안에 무언가를 저장하고 쌓아 놓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 jonasjacobsson on Unsplash
이렇게 말하고 보면 꽤나 책을 많이 읽는것 같으나 책을 읽기 시작한 지 불과 몇달 되지 않았다. 글을 쓰려고 보니 내 안에 꺼내 놓을 만한 재료가 없었다. 그제서야 책을 읽고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읽은 책이 무려, 지난 겨울 동안 10권 정도 된다. 다독가들에게는 우스운 숫자가 나에게는 업적같은 의미이다. 책 읽는 재미를 붙이기 위해서 어려운 고전이나 인문학 쪽보다는 베스트셀러 소설 위주로 읽었다.
요즘은 틈만 나면 오디오북을 듣거나 책을 보게 된다. 부러 가족들도 책에 흥미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 집에서는 큰소리로 틀어 놓는다. 볼륨을 줄여달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아직 나만큼 흥미를 느끼지는 않는 것 같다. 넷플릭스나 유튜브에 빠져 나오고 싶어도 나오지 못하는 이들에게 오디오북을 적극 추천한다. 오디오북 소설과 소설책이 넷플릭스보다 재미있다(박정민 배우의 <혼모노> 소설추천글을 인용했음).
소설책을 듣고, 에세이를 읽으면서 인상적인 표현과 묘사를 기억해 내려고 하거나 비슷하게 흉내내어 보려고 한다. 일반적인 표현보다 조금 다르게 써보거나 나만의 경험에 감정을 덧입혀서 써내는 것이구나를 배워간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안에 무언가를 저장하고 쌓아 놓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는 것을 알아간다. 그것은 관심사일 수 있고, 경험일 수도 있다. 아니면 언어와 지식일 수도 있다. 또는 다른 사람의 글 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저장된 것이 나를 통과해서 나오면 그것은 괜찮은 글이 된다.
다행히 고속도로 중간에 돌아서 갈 수 있는 출입구가 있었다. 돌고 돌아 예상 시간보다 15분 정도 더 걸렸지만 대기 인원이 많아서 늦은 티가 나지 않았다. 약속시간보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도 오늘의 에피소드가 마음에 들었다. 책의 내용에 빠져들고, 오늘은 어떤 글을 쓸까로 이 생각 저 생각 틈틈히 고민하는 변화의 바람이 생경하면서 반갑다. 이전에 없던 경험, 느낌, 실수가 내 인생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