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소라 통조림 공장
- 허유미
엄마가 소라를 한 짐 캐면
나는 통조림 공장에 져 나르고
공장 마당에 나온 언니는 화상 입은 손으로 소라를 받는다
언니가 양철 깡통 위에 앉아
펄펄 끓는 소라 솥을 지켜보며
녹슨 파이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왈츠 리듬으로 세는 동안
나는 의자만 생각했다
왜 바다에는 의자가 없을까
왜 통조림 공장에는 의자가 없을까
누가 길에서 소라색을 물었을 때
이렇게 길게 되물어 대답을 했다
빛이 닿지 않는 곳엔
끓는 솥에서 새는 김 소리와
비늘처럼 쌓인 깡통 더미를 헤집는 소리가 짙었다
언니는 그 소리를 따라 발끝으로 왈츠를 추며
빈 소라 구멍 속에 노래를 넣어 주고 사라졌다
소라를 한 짐 내어 주는 엄마에게
이것이 희망인지 죽음인지 물었을 때
죽음이라도 다 건져 내면
바다에 희망이 남지 않겠냐 말하고 사라졌다
뜨거운 공장과 차가운 바다 사람들의
한쪽 눈에서 아침이 나오고
다른 한쪽 눈에서 밤이 새어 나왔다
출처_시집: <바다는 누가 올려다보나> 걷는사람, 2025
시인_허유미: 2016년 <제주작가> 신인상과 2019년 <서정시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우리 어멍은 해녀> <바다는 누가 올려다보나>가 있다.

▲절망을 다 건져 올리고 나면 바다에는 희망이 남는다. ⓒ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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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하는 엄마와 공장에서 노동하는 언니는 잠시라도 몸을 의탁할 의자 하나 없다. 노동은 삶의 부분이 되지 못하고 전체를 삼킨다. 그런데도 엄마는 내게 절망을 건져내고 남은 희망을 주려 한다.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도 언니는 물소리를 리듬 삼아 아름다운 노래를 남긴다. 이 시는 소라 통조림 공장이라는 구체적이고 협소한 공간 안에서 노동하는 삶의 고통과 희망이 분리되지 않고 한 존재 안에 공존함을 보여준다. 바다와 공장, 차가움과 뜨거움, 한 눈으로 낮을, 다른 눈으로 밤을 보는 이미지들이 겹치며 의미를 깊게 한다. 의자 하나의 부재가 말하지 못한 모든 것을 대신하듯, 조용한 언어의 울림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우은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