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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눈이 많지 않던 도시에 펑펑 눈이 내려 거리마다 하얗게 쌓여 있었다. 오후에 이슬이 비치자 남산만큼 불룩한 배를 부여잡고 부랴부랴 종합병원의 산부인과를 찾았다. 친정 큰올케가 운전해 주는 차 안에는 두려움과 설렘의 묘한 감정이 공기와 함께 떠다니고 있었다. 오후 네 시에 입원해 저녁 8시 35분,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건강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1990년 2월의 추운 겨울이었다.

첫아들이자 마지막 아들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던 새댁과 꼬마 신랑이었던 남편은 2박 3일간의 짧은 산후조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얀 포대기에 싸여있던 갓난쟁이 아들의 유난히 크고 까만 눈동자는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내가 이제 정말 엄마가 되었구나. 우리가 부모가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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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부모가 되진 못하겠지만, 최선을 다해 아들을 키우리라 마음먹었다.

지난 3월 3일, 우리 부부가 딸이라 부르는 남편의 화물차 '누리'가 오는 날이었다. 남편이 '지니'(15년간 타고 다니던 화물차 애칭)와 마지막으로 일하는 날은 오전 근무만 하였다. '지니'를 보내고 '누리'를 맞이해야 하는 일정이 계획되어 있었다. 남편은 일을 마치고 '지니'와 함께 자동차 해체 재활용 센터로 바로 갔고, 나는 남편을 데리러 그곳으로 갔다.

"어디쯤이야? 뭔가 일이 꼬인 것 같은데."

남편의 전화를 받았지만, 초행길이라 내비게이션을 켜고 가는 중이라 길을 잃을까 봐 일단 먼저 끊었다. 자동차 해체 재활용 센터에 도착하니 남편은 미리 길가에 나와 있었다. 운전석을 남편에게 양보하고 나는 옆자리로 이동했다.

"'누리'가 오늘 못 온대. 탁송이 밀려서 9일이 되어서 도착한다네."

늦어도 4일에 오기로 한 '누리'를 맞이하기 위해 남편은 이틀 동안 휴무를 빼놓았다. 행정 업무부터 선팅이나 제조 업무가 많아 그렇게 한 것인데 9일에 차가 온다면 여러 날 공백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차가 없으면 일을 하지 못하니 경제적인 부분도 타격이 생기고, 팀원들도 휴무를 사용하지 못해 곤란한 경우가 생기게 되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 않는가. 배가 고픈 우리 부부는 남편이 그 일대에서 먹어 본 음식 중 찜해 둔 갈비탕을 먹으러 갔다. 식당에서도 남편은 제대로 밥 먹을 여유 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정신없었다. 결국,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 얻어낸 묘안은 우리가 '누리'를 데리러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리'는 가까이 있지 않았다. 경기도 화성이라는 주소를 받고 보니 막막했다. 내 경차를 타고 가서 남편은 '누리'를 타고 나는 다시 내 차를 타고 따로따로 내려오기에는 너무 버겁고 위험했다.

"자기야, 아들에게 이 주소를 찍어주고 어떤 경로로 가면 좋을지 알아봐 달라고 하는 건 어떨까?"

채 몇 분이 되지 않아 아들에게 연락이 왔다. 수원까지 기차를 타고 간 다음 화성 출고센터까지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는 말이었다.

4일 출고 시간은 오전 11시였다. 새벽 기차를 이용하면 출고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았다. 남편이 화물차 운송업에 종사하는 동안 연달아 쉬는 날이 잘 없어 여행을 다녀온 지도 까마득한 옛날 일이었다. 남편이 여행 삼아 같이 가자고 제안하였다. 그렇지. 당연한 거지. 내 대답은 예스였다. 이런 기회는 잘 없으니 바로 꽉 잡아야지.

아들이 3일 저녁 6시 40분 기차를 예매해 주었다. 급히 내 차를 타고 바로 집으로 왔다. 고양이 밥과 물을 챙겨놓고, 불을 하나 켜두고 역으로 향했다. 동대구에서 수원까지 KTX를 타고 걸리는 시간은 두 시간 정도 걸렸다. 오래간만에 둘이 나란히 앉아서 하는 기차여행이라 그런지 피곤하지도 않고 잠도 오지 않았다. 소곤소곤 귓속말하다 보니 수원에 닿았다.

수원역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한 일은 숙소를 정하는 일이었다. 지리를 잘 모르니 일단 번화가인 것처럼 보이는 역 건너편으로 갔다. 발품을 팔아 숙소를 정한 후 저녁을 먹으러 갔다. 숙소 직원에게 물어 맛집을 알아낸 곳이다. 늦은 밤, 낯선 거리에서 남편과 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여행의 묘미는 다했다. 꼭 여행이 목적이어야 할 이유 없이 즐겁고 재미난 시간이었다.

4일 아침 9시에 출발 준비를 마칠 즈음 아들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어머니, 카카오 택시를 타셔야 합니다."

친절하게도 앱을 깔고 사용법을 영상으로 올려 주었다. 숙소에서 앱으로 택시를 예약했더니 5분 만에 도착하였다. 화성 출고센터까지 가는 데 요금이 3만 7200원이 나왔다. 지리도 이동수단도 모르니 이 정도 교통비는 감내해야 한다.

출고센터 경비실에서 신원조회를 마친 후 안으로 들어가니 왠지 '누리'일 것 같은 아이가 늠름하게 서 있었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다가가 보니 조금 전 보았던 그 아이가 바로 '누리'였다. 금방 태어난 갓난쟁이 아들처럼 피부도 뽀얗고 눈망울이 크고 빛이 나는 차 딸 '누리'를 만나는 순간 남편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차 딸 '누리' 금방 태어난 갓난쟁이 누리가 출고센터에 있어요
차 딸 '누리'금방 태어난 갓난쟁이 누리가 출고센터에 있어요 ⓒ 황윤옥

'누리'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의 옆모습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기뻐서 연신 입꼬리가 올라갔다. 수동을 몰다가 자동을 운전하니 처음엔 자꾸 기어 변경하는 것처럼 헛손질하여 마음이 불안했다. 하지만 금방 적응하는 것 같았다.

도착해서도 '누리'는 설치해야 할 것이 많아 다른 곳으로 이동했고, 나는 또 남편을 데리러 가야 했다. 다음날인 5일에도 '누리'가 있는 곳까지 태워다 주었다. 출산하고 2박 3일간의 입원 후 아들을 데리고 나오는 심정이나 '누리'를 만나기 위해 2박 3일간 고군분투한 마음이 비슷했다. 아들은 몸으로 낳았지만 '누리'는 마음으로 낳은 딸 같은 마음이다.

새 차 딸 '누리'를 운전하며 싱글벙글 웃어대며 행복해하는 남편을 보니 어느 한때가 떠올랐다. 1997년 IMF가 터지기 직전인 4월에 남편은 타고 다니던 중고차를 정리하고 인생 새 차를 샀다. 그 당시 신형이었던 카니발이었다.

남편은 차를 산 날, 밤늦도록 집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혹시나 해서 주차해 둔 골목길에 나가보니 남편이 차 안에서 자고 있는 것이었다. 왜 집에 들어오지 않느냐는 나의 말에 남편은 정말 귀엽고 순수한 대답을 했다.

"너무 좋아서 오늘은 차 안에서 자고 싶어."

지금은 '누리'와 같이 일한 지 나흘째이다. 퇴근해 올 때마다 받아쓰기 백 점 받은 어린아이처럼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와! 오늘 보니까 핸들에도 열선이 들어와서 따뜻하더라."
"요즘은 일하는 게 아니라 여행 다니는 기분이야. 블루투스로 음악 틀어놓으면 너무너무 신나."

나도 새 차는 타본 지 오래 지나 어떤 점이 좋은지는 모른다. 여하튼 남편이 '누리'를 만나 일을 행복하게 하고 편하게 한다니 나 역시 기분이 좋다. 귀여운 남편의 끝판왕 한 마디.

"'누리'와 함께라면 80까지도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누리#차딸#화물차#운송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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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좋아서 세종사이버대 문예 창작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다해 정성껏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현재 브런치 작가입니다. 사는 이야기를 주로 씁니다. 가끔 음식 이야기도 씁니다. 삼강 문학상 수필 부문 신인상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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