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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관조가 미덕이던 전시장, 그 전통적 상식의 벽이 깨진 자리에 강렬한 비트와 예술가들의 거친 숨소리가 채워졌다.

지난 7일 오후 5시, 전국 각지에서 모인 100여 명의 예술가들로 북적인 부산 금정구 복합문화예술공간 'MERGE?'는 전시장이라는 개념을 넘어, 작가들간 서로의 영감이 뜨겁게 충돌하고 섞이는 거대한 '예술적 용광로' 로 변모했다.

이번 행사는 지난 2025년 한 해 동안 'MERGE?'가 걸어온 예술적 발자취를 집대성한 '2025 MERGE? 연간지'의 발간을 기념함과 동시에, 새로운 도약을 알리는 기획전 '해빙기(解氷期)_유연한 파편들'의 서막을 알리는 자리였다.
MERGE?에서 발간한 책들 2017년 개관 이후 매년 매년 발간한 MERGE?에서 발간한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MERGE?에서 발간한 책들2017년 개관 이후 매년 매년 발간한 MERGE?에서 발간한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 복합문화예술공간MERGE?

기록, 역사가 되다

이번에 발간된 연간지는 무려 2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다. 여기에는 지난 한 해 동안 'MERGE?'라는 플랫폼을 거쳐 간 40여 명 작가들의 예술적 실험과 치열한 창작 과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단순히 완성된 작품 사진을 나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작가 개개인이 마주했던 고뇌의 흔적과 현장의 역동성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는 점에서 '집대성'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는 평가다.

특히 이번 연간지는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에 정식으로 납본되어, 한국 현대미술의 소중한 사료로 보존될 예정이다. 이는 지역 대안 공간이나 민간 예술 거점의 활동이 일회성 전시나 단발적 이벤트로 소모되지 않고, 국가적 차원의 예술적 자산으로 편입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기록화 작업은 지역 예술 현장의 생생한 흐름을 보존하고 미래 세대와 연결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현장에서는 사라지지만 기록 속에서 영생을 얻는 예술가들의 목소리는, 향후 부산 미술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대체 불가능한 1차 사료로 기능하게 된다.

한 권의 책으로 응축된 2025년의 기록은 이제 'MERGE?'의 담장을 넘어 대한민국 미술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될 준비를 마쳤다. 이번 연간지 발간을 통해 지역 예술의 자생력과 아카이브의 힘을 보여준 'MERGE?'의 행보는 향후 다른 예술 거점들에게도 유의미한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위예술가 조은성 작가의 한국적인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있다.
전위예술가 조은성작가의 한국적인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있다. ⓒ 복합문화예술공간MERGE

전시 오프닝은 기존의 엄숙하고 정형화된 형식을 과감히 탈피했다. 시각 예술 작품을 배경으로 라이브 공연과 퍼포먼스, DJ의 감각적인 음악이 한데 어우러진 자유로운 '아트 파티(ART Party)' 형식으로 진행되어 현장의 열기를 뜨겁게 달궜다.

인연과 기록, 그리고 여는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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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의 서막은 DJ가 선곡한 감각적인 음악과 함께 시작되었다. 참여 작가 한 명 한 명을 호명하며 주인공으로 세우는 소환의 시간을 통해 전시장 분위기는 금세 고조되었다.

축사에 나선 옥영식 평론가는 2004년부터 20여 년간 이어온 성백 대표와의 인연을 회고하며 격려의 말을 전했다. 김종기 평론가는 "'머지(MERGE?)'가 부산 예술 씬에서 차지하는 독보적인 위치와 그 활동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의 숭고함"을 강조했다. 이어 조은성 작가가 한국적 정서가 물씬 풍기는 '여는 퍼포먼스'를 선보였으며, 이를 통해 전시장 내부의 기운을 뜨거운 예술적 에너지로 가득 채웠다.

밴드0153 작곡가 조현진, 기타리스트 이재웅, 보컬리스트 엄가영의 축하 공연
밴드0153작곡가 조현진, 기타리스트 이재웅, 보컬리스트 엄가영의 축하 공연 ⓒ 복합문화예술공간MERGE

2부에서는 밴드 '0153'(작곡가 조현진, 기타리스트 이재웅, 보컬리스트 엄가영)의 축하 공연이 전시장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감미로운 선율 속에 마이크를 잡은 성백 대표는 'MERGE?'의 운영 철학과 소속 작가들을 소개하며 2025 연간지의 의미를 직접 설명했다.

특히 성백 대표는 "본인 스스로를 예술가로 인정하는 이들을 우리도 예술가로 인정한다. 우리가 그들을 훌륭한 예술가로 불러줄 때, 비로소 진정한 예술가로 태어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현장을 메운 예술가들은 이 발언에 뜨거운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다.

홍라무 홍성률 작가 두명의 즉흥 협업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홍라무 홍성률 작가두명의 즉흥 협업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 복합문화예술공간MERGE

몰입의 끝, 밤늦도록 이어진 예술적 영감

행사의 대미를 장식한 3부 네트워킹 파티는 장르 간 융복합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사운드 아티스트 홍성률의 실험적인 사운드 퍼포먼스에 이어, 부토 아티스트 홍라무와 안야의 보이스 퍼포먼스가 결합한 무대는 전시장 전체를 압도했다. 관객들은 보이스와 몸짓이 자아내는 몰입감 넘치는 퍼포먼스에 숨을 죽이며 빠져들었다.

공연 이후에는 DJ 서윤택과 조예솔의 플레잉이 이어졌으며, 현장에 참석한 100여 명의 작가, 평론가, 문화 기획자들은 비트에 몸을 맡긴 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새벽까지 예술적 담론과 영감을 나눴다.

조예솔 작가 DJ플레잉을 하고 있다. 복합문화예술공간MERGE,예술공간MERGE
조예솔 작가DJ플레잉을 하고 있다. 복합문화예술공간MERGE,예술공간MERGE ⓒ 복합문화예술공간MERGE

"개인의 기록 넘어 지역 예술의 이정표 될 것"

현장에서 만난 성백 'MERGE?' 대표의 표정에는 자부심과 설렘이 교차했다. 그는 전시장을 가득 채운 인파와 작품들을 응시하며 이번 행사의 기획 의도를 전했다. 성백 대표는 "겨울의 모진 추위를 견뎌내고 굳은 땅을 뚫고 솟아오르는 생명처럼, 작가들의 작품이 세상이라는 드넓은 바다와 다시 만나는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이번 연간지 발간에 대해 "단순히 개인의 작업물을 모은 책자가 아니라, 파편화되어 사라질 수 있는 지역 예술 현장의 생생한 흐름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하는 예술적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그 의미를 강조했다.

복합문화예술공간MERGE?의 성백 대표 행사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
복합문화예술공간MERGE?의 성백 대표행사에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 ⓒ 복합문화예술공간MERGE

이번 기획전 '해빙기(解氷期)'는 그 이름에 걸맞게 국가와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유연함을 보여준다. 곽순곤, 권영일, 노주련 등 한국 현대미술의 허리를 지탱하는 국내 중견 작가들은 물론,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소콜로프(Alexandr Sokolov), 프랑스의 가에탕(Gaëtan), 이탈리아의 카르미네 레타(Carmine Leta) 등 6개국의 해외 작가들의 작품이 한 공간에서 조화를 이룬다.

전시장 곳곳에는 설치 미술부터 평면 회화, 그리고 미디어 아트까지 배치되어 관람객들에게 풍성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현장을 찾은 한 관람객은 "해외 작가들의 날 선 감각과 국내 작가들의 깊이 있는 서사가 '해빙'이라는 주제 안에서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며 감탄을 전했다.

지역 예술의 자생력을 증명하며 새로운 기록의 역사를 쓰고 있는 이번 전시는 오는 20일(금)까지 관람객을 맞이한다. 전시와 관련된 상세한 작가 정보 및 프로그램 일정은 'space MERGE?' 공식 블로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해빙기' 전시장 전경 전시장에 미디어 작품을 비롯 다양한 시각예술 작품40여전이 전시 되었다.
'해빙기' 전시장 전경전시장에 미디어 작품을 비롯 다양한 시각예술 작품40여전이 전시 되었다. ⓒ 복합문화예술공간MERGE

[전시 안내]

전시명 : 2025 MERGE? 연간지 발간기념 및 네트워크 전시 '해빙기(解氷期) 유연한 파편들'
일시 : 2026년 3월 7일 ~ 3월 20일
장소 : 복합문화예술공간 MERGE? (부산 금정구 부산대학로 50번길 49)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openARTsNEWs에도 실립니다.


#부산전시#해빙기#복합문화예술공간MERGE#유연한파편들#성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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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발 (gurqkf) 내방

회화, 행위미술, 설치미술, 사진작업을 하며 안동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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