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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09 09:57최종 업데이트 26.03.09 09:57

110분간의 아름다운 산책, 봄날 '문학' 도보 여행

서촌에서 시작한 여정... 이상의 집에서 대오서점까지

지난 7일 토요일. 봄은 아직 이른 듯 차가운 기운을 머금고 있었지만, 인왕산 자락에는 이미 만연한 봄 기운이 문학의 향기와 함께 피어나고 있었다. 도심 한복판에서 자연과 예술의 정취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서울 서촌~인왕산 코스를 따라, 약 1시간 50분간의 '힐링' 트레킹을 다녀왔다.

이상의 집, 천재 시인의 난해하고도 아름다운 세계

이상의 집 서촌 초입에 있는 시인 이상이 20여 년간 살았던 집터.
이상의 집서촌 초입에 있는 시인 이상이 20여 년간 살았던 집터. ⓒ 이상돈

서촌 골목 초입에 있는 이상의 집은 시인 이상이 20여 년간 살았던 집터 일부에 조성된 문화 공간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의 생애를 다룬 영상이 흐르고,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서적들은 그의 난해하지만 매혹적인 문학 세계를 대변한다. 과거의 한옥 틀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이 더해진 이곳은 여정의 시작으로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윤동주 하숙집 터, 고뇌하던 청년의 산책로

윤동주 하숙집 터 시인이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별 헤는 밤', '자화상' 등을 다듬었던 장소
윤동주 하숙집 터시인이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별 헤는 밤', '자화상' 등을 다듬었던 장소 ⓒ 이상돈

길을 따라 올라가면 누상동 골목 끝자락에 윤동주 하숙집 터가 나타난다. 시인이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후배 정병욱과 머물며 '별 헤는 밤', '자화상' 등을 다듬었던 장소다. 지금은 비록 터만 남았으나, 시인이 매일같이 오갔을 그 길 위에서 청년 윤동주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다.

수성동계곡, 진경산수화 속으로

수성동계곡 겸재 정선이 '장동팔경첩'에서 아름다움을 찬양했던 진경산수화의 실제 배경인 '수성동계곡'
수성동계곡겸재 정선이 '장동팔경첩'에서 아름다움을 찬양했던 진경산수화의 실제 배경인 '수성동계곡' ⓒ 이상돈

인왕산 자락길의 시작점에 위치한 수성동계곡은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이곳은 조선 시대 안평대군의 집 '비해당'이 있던 곳이자, 겸재 정선이 '장동팔경첩'에서 아름다움을 찬양했던 진경산수화의 실제 배경이다.

2011년 옥인아파트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이 계곡은 거대한 암반과 시원한 물줄기가 조화를 이루며 도심 속 무릉도원을 연출한다. 특히 계곡 아래 놓인 '기린교'는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과거 선비들이 시를 읊던 풍류의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더숲 초소책방과 청운문학도서관, 산속에서 만나는 글 향기

더숲 초소책방 청와대 경비를 위해 사용되던 경찰 초소를 리모델링한, 베이커리 카페이자 서점인 '더 숲 초소책방'
더숲 초소책방청와대 경비를 위해 사용되던 경찰 초소를 리모델링한, 베이커리 카페이자 서점인 '더 숲 초소책방' ⓒ 이상돈

청운문학도서관 종로구 최초의 한옥 공공도서관인 청운문학도서관.
청운문학도서관종로구 최초의 한옥 공공도서관인 청운문학도서관. ⓒ 이상돈

인왕산 자락길을 따라 오르면 나타나는 더숲 초소책방은 과거 청와대 경비를 위해 사용되던 경찰 초소를 리모델링한 베이커리 카페이자 서점이다. 초소의 외벽 일부를 남겨 역사적 의미를 더했으며, 통창 너머로 보이는 서울 전경은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이어지는 청운문학도서관은 종로구 최초의 한옥 공공도서관으로, 폭포 소리가 들리는 정자 '열람터'에서 시집을 읽으며 진정한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윤동주문학관과 시인의 언덕

윤동주문학관 시인의 순결한 영혼을 닮은 공간인 '윤동주문학관'
윤동주문학관시인의 순결한 영혼을 닮은 공간인 '윤동주문학관' ⓒ 이상돈

시인의 언덕 '서시(序詩)'가 새겨진 거대한 시비가 세워져 있는 '시인의 언덕'
시인의 언덕'서시(序詩)'가 새겨진 거대한 시비가 세워져 있는 '시인의 언덕' ⓒ 이상돈

버려진 용수 가압장을 개조해 만든 윤동주문학관은 시인의 순결한 영혼을 닮은 공간이다. 닫힌 우물과 열린 우물로 명명된 전시장에서는 그의 시적 세계를 시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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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문학관 뒤편으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면 나타나는 시인의 언덕은 인왕산 자락길 중에서도 가장 서정적인 장소다. 이곳은 청년 윤동주가 하숙 시절 올랐던 산책로로, 시인이 시대의 아픔을 달래며 시상을 가다듬었던 역사가 깃들어 있다.

언덕 한가운데에는 그의 대표작 '서시(序詩)'가 새겨진 거대한 시비가 세워져 있어 지나는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솔바람 소리와 함께 시를 읊조리다 보면 차가운 봄바람마저 시적인 위로로 다가온다. 언덕 아래 자리 잡은 야외 카페 '별뜨락'은 문학적 여운을 간직한 채 잠시 숨을 고르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다.

"시인의 고뇌, 인왕산 바람에서 느꼈습니다"

시인의 언덕에서 한참 동안 '서시비'를 바라보던 시민 김민석(42)씨는 "교과서에서만 보던 윤동주의 시를 그가 실제로 걸었던 이 언덕에서 다시 읽으니 느낌이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서울 도심의 화려한 빌딩 숲을 배경으로 낡은 성곽길과 시비가 놓인 풍경을 보니, 수십 년 전 시인이 느꼈을 고뇌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묘하게 겹쳐 보여 가슴이 뭉클해졌다"고 전했다.

무무대전망대, 비움으로 채우는 서울 전경

무무대에서 바라본 서울 남산타워부터 롯데월드타워까지 서울의 파노라마 뷰가 한눈에 들어오는 '무무대'
무무대에서 바라본 서울남산타워부터 롯데월드타워까지 서울의 파노라마 뷰가 한눈에 들어오는 '무무대' ⓒ 이상돈

하산길에 만나는 무무대(無無臺) 전망대는 '아무것도 없기에 오히려 모든 것이 다 있다'는 이름의 의미처럼 마음을 비워주는 장소다. 남산타워부터 롯데월드타워까지 서울의 파노라마 뷰가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은 시민들에게 최고의 조망 명소로 사랑 받고 있다.

박노수미술관

박노수미술관 한식, 중식, 양식 건축 양식이 절묘하게 혼합된 독특한 구조를 자랑하는 '박노수미술관'
박노수미술관한식, 중식, 양식 건축 양식이 절묘하게 혼합된 독특한 구조를 자랑하는 '박노수미술관' ⓒ 이상돈

서촌 깊숙한 곳에 자리한 박노수미술관은 한국 화단의 거목 박노수 화백이 40여 년간 거주하며 가꾸어온 집이다. 1937년경 지어진 이 건물은 한식, 중식, 양식 건축 양식이 절묘하게 혼합된 독특한 구조를 자랑한다. 미술관 내부는 화백의 섬세한 필치가 돋보이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으며, 야외 정원에는 그가 직접 수집한 수석과 조각품들이 배치되어 있어 마치 한 편의 입체적인 동양화를 보는 듯한 감동을 준다.

대오서점,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책의 기억

대오서점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리를 지켜온 '대오서점'
대오서점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리를 지켜온 '대오서점' ⓒ 이상돈

여정의 마침표는 대오서점에서 찍는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리를 지켜온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다. 이제는 북카페로 운영되지만, 빛바랜 책장과 손때 묻은 문고판 서적들, 그리고 낡은 간판은 여전히 수많은 문학적 기억을 품고 여행자를 배웅한다.

머지않아 길 위에는 연분홍 진달래가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개나리가 노란 물결을 이룰 것이다. 메마른 일상에 쉼표가 필요한 날, 혹은 시 한 구절이 그리운 날에 망설임 없이 이 길을 찾아보길 권한다. 봄이 무르익어가는 지금, 인왕산은 당신에게 건넬 가장 아름다운 시 한 편을 준비한 채 시민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추천 코스 요약 (약 1시간 50분 소요)
• 출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 경로: 이상의 집 → 윤동주 하숙집 터 → 수성동계곡 → 인왕산 자락길(종로둘레길) → 더숲 초소책방 → 청운문학도서관 → 윤동주문학관 → 별뜨락(휴식) → 시인의 언덕(서시비) → 무무대 전망대 → 박노수미술관 → 대오서점
• 도착: 서촌 통인시장 부근


#서촌#인왕산자락#문학여정#수성동계곡#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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