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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우리 집에서 행사장까지 거리는 43.3km. 차로 가면 한 시간 남짓이지만,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면 1시간 50분을 꽉 채워야 하는 길이다.

버스는 서귀포를 출발해 한라산을 향해 천천히 올라간다. 그리고 다시 반대편으로 내려간다. 제주에서 한라산을 넘는다는 건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섬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생활권 하나를 통째로 건너가는 일이다.

나를 축하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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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나는 지난해 한 해의 나를 축하하러 그 긴 여행을 다녀왔다. 바로 2026 제주도민대학 명예학위 수여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행사 시작 한 시간 전이었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로비를 채우고 있었다. 직장인, 자영업자, 은퇴한 어르신, 그리고 나처럼 아이를 키우며 시간을 쪼개 강의를 들은 사람들까지. 나이도 직업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이들은 모두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학생.

 제주도민대학 명예학위 수여식에서 학사복을 입은 본인 모습.
제주도민대학 명예학위 수여식에서 학사복을 입은 본인 모습. ⓒ 이현숙

제주도민대학은 도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강의와 프로그램을 통해 도민들이 새로운 배움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마련된 자리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인공지능 기술을 바탕으로 한 수업이 많이 열렸고, 손으로 만들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강의도 다양하게 진행됐다.

명예 학위를 받은 사람들은 2025년 한 해 동안 100시간 이상 교육을 이수한 사람들이다. 총 63명이 해당된다. 도민대학 강의를 들은 수강생 뿐 아니라 농업과 축산업 등 현장에서 50년 이상 일해 온 도민들에게도 명예직능학위가 수여됐다.

행사에서 소개된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민대학 교육과정은 해마다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강의 수와 참여 인원도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숫자보다 더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젊은 시절에는 시험과 취업을 위해 공부했다. 하지만 중년 이후의 공부는 조금 다르다. 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성적을 매기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시간을 내어 스스로 강의실을 찾는다.

한 명의 학생이 되는 시간

나 역시 그 이유를 조금은 알고 있다. 아이를 키우며 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 집안일과 일상 사이에서 하루가 끝날 때도 많다. 그런데 강의실에 앉아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때면 잠시 다른 사람이 된 느낌이 든다. 엄마도 아니고, 누군가의 아내도 아닌 그냥 한 명의 학생이 되는 시간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이 도민대학을 찾는 이유도 비슷할지 모른다. 새로운 지식을 얻는 일도 의미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다시 배우는 사람으로 살아보는 경험일지도 모른다. 이날 행사에서는 제주도민대학의 앞으로의 계획도 발표됐다. 평생 교육의 지역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제주 전역에 더 많은 배움 공간을 만들겠다는 내용이었다. 누구나, 언제든, 어디서든 배울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다.

행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도 버스는 다시 한라산을 넘는다. 창밖으로 보이는 숲이 바람에 흔들린다. 오늘 하루를 위해 나는 왕복 86 km를 이동했고, 2시간 반의 행사를 위해 약 4시간을 버스에서 보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게까지 해서 참석할 필요가 있나?"

하지만 한 해 100 시간 이상의 배움을 기꺼이 즐겼던 나를 축하하는 길이라면 그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다. 제주 곳곳에서 강의를 듣고 명예수여식에 참여한 사람들의 마음도 아마 비슷할 것이다. 배우는 일에는 나이가 없다. 그래서 나는 한라산을 넘어 다녀온 그 자리에서 또 하나의 마음을 품고 돌아왔다. 올해도 기꺼이 배우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 배움의 다음 단계에서 나는 또 어떤 모습의 삶을 살아가게 될지, 벌써부터 조금 궁금해진다.

#제주살이#제주도민대학#명예학위#평생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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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로 이주해 두 아이를 키우며 삶을 기록하는 엄마입니다. 도시 부모들의 로망과 현실, 육아와 배움의 이야기를 글로 전합니다. 생활 속에서 찾은 진짜 경험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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