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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할 때 떨리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 앞에서 말하거나 발표할 때, 심지어 몇 명 안되는 모임에서 조차 말해야 할 때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목소리에는 진동이 생겼다. 말하는 것이 콤플렉스여서 발표하는 일이나 나서는 일이 있을 때는 웬만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거나 피해왔다. 인원이 많거나 적거나, 타인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오늘 모임에선 거의 떨리지 않았다.
얼마 전부터 동네 커뮤니티에서 초급 영어회화반 인원을 충원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전부터 영어를 배워보려고 시도했지만 번번이 하다가 말았다. 이번에도 '오래 다니지 못하겠지'라는 생각에 신청을 못하고 있었다. 세번째 공지 글을 보고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당장 내일 수업이 있으니 와보라는 답을 받았다. 이슬아 작가의 책 제목처럼 <갈등하는 눈동자>가 되었다가 '일단 한번 가보는거야'라고 마음먹고 가겠다고 했다.

▲글을 쓰면서 찾아온 변화 ⓒ hannaholinger on Unsplash
카페 입구에서 한 여성 분이 두리번 거렸다. 여기가 ○○카페가 맞냐고 묻는다. 그분도 영어회화 수업이 처음이라고 한다. 다행히 동지를 만났다. 카페 입구부터 책과 아기자기한 팬시 용품으로 가득했다. 비슷한 시간에 들어온 사람들이 차를 주문하고 안쪽 공간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영어회화 수업을 듣는 사람들인것 같아 음료를 주문하고 따라 들어갔다.
안쪽 공간은 푸른색 벽지로 되어 있고 모서리 책장에는 책들이 꽂혀 있었다. 책장에는 <총균쇠>와 더불어 문학 책들이 보였다. 좁은 방에 긴 책상과 의자가 9개가 있었다. 복사기까지 있는 것을 보니 모임이나 수업을 하는 공간 같았다. 누군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선생님인가했는데 가장 오래 수업에 참석하신 분이었다.
기존 학생 3명과 오늘 새로 온 학생 2명, 그리고 마지막에 선생님이 오셨다. 선생님이 반갑다고, 잘 왔다고 인사를 하신다. 약간 수줍게 영어로 자기 이름을 말했다. 전날 저녁 영어로 자기 소개를 준비하라는 연락을 받았던 터라 만들어 놓은 내용을 훑어보고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으랴, 자기소개 기억해내랴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자기소개를 건너뛰었다. '야호' 쾌재를 부르며 평온한 마음으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보고 읽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쓰여진 대로 읽으면 되니까. 문제는 프린트를 보지 않고 말하거나 배운 것을 응용해야 할 때이다. 박완서 작가의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책에서 주인공이 영어가 안 나와 입에서만 맴돌고, 영어로 말하자면 스펠링을 먼저 완성시켜야 하는 그 심정이 그대로 이해가 되었다. 예전 같으면 얼굴이 빨개지거나 당황해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을 텐데 어쩐 일인지 심장이 그렇게 빨리 뛰지 않았다.
웃으면서 모르겠다고 뻔뻔하게 말했다. 선생님은 친절하게 알려주셨고 그대로 따라서 말했다. 선생님은 내 차례가 되면 말할 수 있도록 잘게 쪼개서 알려주시고, 구문을 나눠서 설명하신 후에 해보라고 하셨다. 잘게 잘게 쪼개 떠먹을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을 숟가락에 담아서 떠먹으니 잘했다고 박수를 치고 좋아하신다. 처음 왔는데 이렇게 잘한다면서. 물론 '선생님이 다 알려주셨잖아요'라는 말을 했지만 '그래도 못하시는 분들도 계셔요'라고 하셨다.
다음은 여행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잘못되었음을 표현하는 내용이었다. '이 길이 아니예요. 어떻게 된거죠?'라는 표현을 배우는데 선생님의 생생한 연기로 스릴러 영화의 한 장면이 연출 되었다.수업 분위기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흘러갔다. 다음으로 내가 말해야 하는 문장은 잘못된 길로 들어섰을 때 당장 세워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읽기 전에 "감정을 담아서 읽어야 하나요?"라고 물으며 "'당장 차 세웟!'이라고?"라고 말했다. 그러자 동시에 모두 웃음이 터졌다.
수업이 다 끝나고, 그제서야 선생님이 멤버들에게 자기 소개를 해 달라고 했다.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 차례가 되자 이상하리 만큼 차분해지면서 더듬더듬 몇 마디를 얘기했다. 첫 수업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편안하게 끝났다. 돌아오면서 생각하니 말 할 때 떨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유가 뭘까. 웃기려고 하지 않았는데 웃기게 된 것, 말 할 때 떨리지 않는 것이 아무래도 글을 쓰기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어딜가도 글을 쓴다고 말한다. 전에는 글을 쓴다고 말하지 못했다. 글을 쓰는 내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글도 아닌데 글을 쓴다고 하기 창피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를 하고, 매일 쓰면서부터 '글을 쓴다'고 말한다. 내 글이 누군가 읽어도 되는, 읽을 만한 글이라는 것을 인정받고 나서는 글을 쓴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오늘도 자기소개에서 "글을 읽고 책을 읽는 것에 관심있다"고, 에세이를 쓰고 소설을 읽는다고 말했다.
글을 쓰면서 내 안에 말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내가 말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상관없이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두꺼운 마음이 생겨났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나만의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내 안에 생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아무래도 글쓰기에 이런 힘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나에게 일어난 건강한 변화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어나기를 바란다. 주변의 누군가를 만나면 글쓰기를 해보라고 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