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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주최로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열린 '임신중지로 6년 구형된 여성 무죄 선고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주최로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열린 '임신중지로 6년 구형된 여성 무죄 선고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 이정민

"권OO 피고인에 관련해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이 사건 범행은 엄히 처벌해도 마땅한 범죄지만, 위기 임산부에 대한 사회적·구조적·법적 보호 장치가 아직 부족하다고 보여 이번에 한해 집행유예를 선고합니다."

임신 36주차에 임신중지(낙태) 수술을 받고 살인죄로 기소된 20대 산모 권아무개씨에게 이진관 부장판사가 선고 직후 남긴 말이다. 재판부는 권씨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사회봉사 200시간)를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진관)은 4일 오후 살인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산모 권씨, 병원장 윤아무개씨, 집도의 심아무개씨 등에 대한 선고공판을 진행했다.

 "권ㅇㅇ씨가 항소를 결정한다면 항소 과정에 끝까지 함께 할 것이고, 보건의료 체계와 상담 지원 연계 체제 등에 대해 보건복지부에 책임을 물을 것이다."
"권ㅇㅇ씨가 항소를 결정한다면 항소 과정에 끝까지 함께 할 것이고, 보건의료 체계와 상담 지원 연계 체제 등에 대해 보건복지부에 책임을 물을 것이다." ⓒ 이정민

이 사건은 2024년 6월 권씨가 임신 36주차에 임신중지 수술을 받았다며 그 과정을 유튜브에 올리면서 시작됐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권씨와 심씨를 살인죄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현행법상 임신중지는 처벌할 수 없음에도, 경찰과 검찰은 태아가 세상 밖으로 나온 뒤 숨졌다고 보고 이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날 선고공판에서 "태아가 생존 가능한 시점에 인공적으로 배출돼 살아있는 사람이 된 이상 낙태죄의 문제가 아니"라며 낙태죄 유무와 관계없이 이들의 살인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았다. 이어 "권씨가 병원 진료를 통해 태아가 출생 후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았고, 태아의 심장 소리를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며 "이 상황에서 태아 사체 처리 관련 동의안에 서명하고, 수술을 감행하는 것은 태아의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권씨가 알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진관 "입법공백, 사회적 차별... 과연 권씨만 탓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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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재판부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입법 공백과 혼란이 발생했고, 이는 권씨의 범행 경위에 참작할 여지가 있다고 보았다. 더해 위기 임산부를 보호하는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이 2024년 7월 시행돼 권씨가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했던 점도 언급했다. 이를 고려한다면 사건의 책임을 오직 권씨에게만 물을 수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또한 재판부는 임신과 출산에 뒤따르는 여성의 신체적, 사회적 고통을 나열하며 "성차별적인 관습, 가부장적인 문화, 열악한 교육 여건 등이 가세할수록 더욱 가중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권씨에게 사회적 관계가 충분하지 않은 점, 태아의 생부를 알지 못하는 점, 병원 오진으로 범행 직전까지 임신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종합한 재판부는 "권씨가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숙고할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진관 부장판사: "만약 피고인 권씨가 자신의 임신 사실을 초기에 인지하고 전문가로부터 정신적 지지와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면, 국가가 임신·출산·육아에 장애가 되는 사회적·경제적 조건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면 이 사건과는 충분히 다른 결과에 이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재판부는 "권씨는 사회적,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태아가 태어나면 어머니가 될 자신뿐만 아니라 태어난 자녀마저도 불행해질 것이란 판단 하에 범행을 결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범행 경위와 배경 등을 고려하면 권씨를 무작정 비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특히 재판부는 전문가의 도움, 국가의 제도적 개선 등이 뒤따랐다면 사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고도 보았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인간 생명은 고귀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라며 "권씨가 임신 종결을 원해 임신중지 수술을 받더라도 태아가 태어난 이상 하나의 사람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병원장 윤씨, 집도의 심씨가 권씨의 체내에서 꺼낸 태아를 냉동고에 넣어 사망하게 했고, 이는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병원장 윤씨에게 징역 6년과 벌금 150만 원, 집도의 심씨에게 징역 4년과 아동 관련 기관 취업제한 5년을 각각 명령했다. 이들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브로커 한아무개씨는 징역 1년, 배아무개씨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시민단체 "보건부, 정부의 책임 방치… 반드시 따질 것"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회원들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임신중지'로 6년을 구형 받은 여성에 대한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회원들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임신중지'로 6년을 구형 받은 여성에 대한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이정민

선고 직후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는 기자회견을 열어 "재판부가 (판결에) 보건의료 서비스의 문제와 국가의 의무 부재를 설명했다"면서도 "임신중지가 권리로서 인정되지 않아 권씨가 처벌이란 피해를 겪게 됐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대표는 "낙태죄 위헌 선고가 난 지 7년째지만, 보건부와 정부는 의료 체계를 마련하지 않았고 여성들은 여전히 법적, 의료적 위험을 감수한 채 무허가 의료기관에서 수술을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은 채 절박한 상황에 처한 권씨를 살인죄로 수사 의뢰한 정부의 책임이 있다"며 임신중지에 대한 의료적 지침 및 가이드라인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앞서 이날 오전 11시 중앙지법 정문에서 권씨 무죄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정부의 의료 체계 마련을 강력히 촉구했다.

#임신중지#낙태#낙태죄#임신#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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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 이진민 기자입니다 really@ohmynews.com 모든 제보를 다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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