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작업반장
- 이영주
인간은 멸종해라, 하수구에 들어가 중얼거리고 있을 때 인간들이 떼로 지나간다. 멸종할 수 있을까? 나는 더 깊숙이 엎드려 의심하기 시작한다. 나보다 더 깊숙한 곳에서 전기 건설 기사가 작업을 하고 있다. 플래시를 떨어뜨리고 아차차, 그는 외마디 비명을 지른 채 더 깊이 들어간다. 나는 눈을 뜬 채 의심의 바닥 안으로 주저하며 들어간다. 이 하수구 안에는 그가 있다. 낮은 포복으로 플래시를 찾아간다. 자기 안을 더듬는다. 그렇다면 사라질 듯 말 듯 이 빛은 어디에서 움직이는 거지. 그는 영원히 작업을 지휘한다. 무형의 형태가 가득한 이런 곳에 그가 있으니 어떤 멸종도 이루어지지 않겠지. 나는 보이지 않는 행렬의 끝에 서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한다. 이 전선과 저 전선을 이어야만 빛이 드니까! 그는 자신의 내부에 대고 소리치지만 아무도 듣지 못한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자신의 안을 키워 온 사람이다. 사해의 소금을 먹으며 바닥으로 가라앉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이다. 활활 타오르던 녹슨 철판 위에서 죽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챈 사람이다. 나는 전선 사이를 흐르는 극의 감각을 알 수 없어 구석에 웅크린 채 그의 안을 살펴본 적이 있다. 가끔 그는 내 머리칼을 쓸어주었지. 깊이 들어가면 행렬의 끝에 다다르나. 맨 마지막 자리에는 누가 멸종을 시도하나. 하수구 위에서 인간들이 떼를 지어 사라지고 있다. 어둡고 처참한 자리에는 그가 있다. 이 전선과 저 전선을 이어 붙이기 위해 플래시를 찾는 자. 나는 빛을 끄고 싶어 병든다. 어떤 깊은 어둠 속에서도 빛은 꺼지지 않는다.
출처_ 시집 <여름만 있는 계절에 네가 왔다> 아시아, 2020
시인_이영주: 2000년〈문학동네〉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108번째 사내> <차가운 사탕들> <언니에게>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 <여름만 있는 계절에 네가 왔다>가 있다.

▲하수구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그는 끝내 전선을 잇는다. ⓒ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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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닥보다 더 아래에 있어요. 내 머리 위로 인간들이 떼로 지나갑니다. 나는 그들을 미워하며 멸종을 바라지만, 멸종은 좀처럼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보다 더 낮은 곳에 한 사람이 있어요. 그는 인간에게 빛을 주기 위해 작업을 합니다. 아니, 작업을 이어가기 위해 떨어뜨린 플래시를 찾고 있네요. 그는 어둡고 처참한 자리에서 오래 일해 온 사람입니다. 바닥을 지나며 경험으로 자신의 내부를 키워온 사람입니다. 빛은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이어 붙여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그는 내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어떤 깊은 어둠 속에서도, 그 사람으로 인해 인간들의 빛은 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빛 때문에 나의 병도 쉽게 그치지 않습니다. (배수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