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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09 09:49최종 업데이트 26.03.09 09:49

동굴 속 같은 시간을 함께 지나오지 않았다면

[시로 읽는 오늘] 김정환 '도미 대가리 매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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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도미 대가리 매운탕
- 김정환

아내가 출근 전에 팔팔 끓여놓고 간
도미 대가리 매운탕 다시 끓여
나 홀로 점심 먹는다. 땀을 뻘뻘 흘려도
도미 대가리 매운탕
새빨갛게 맵고 새까맣게 짜도
소용이 없다.
어두봉미* 눈알을 파먹는 거
별거 아니고 잠깐이고
동굴이다.
춥고 끔찍하여 최소한
아내와 내가 있었지.
얼굴 살 뜯어먹으면 서서히
드러나는 생선
두개골. 광년 너머
지질 연대의.
특히 백악기의.
인간이 먹는 죄가
진화를 능가하고 그것이 참으로
빠른 시간의 먼
거리(距離)였구나. 아내와 나
순식간 멀리 떨어져
아내도 없고 나도 없다.
소름 끼치는데 소름이라는 낱말이 없는 그
백악기에 내가 있다. 아내는 어느 연대에?
그리운, 그리운
구석기여, 음식의
죽음이 보였던. 인간 종(種)의
희망이여, 살갗이었던.
아내여, 이 모든 것이었던.

* 魚頭爛尾 : '물고기는 머리 쪽, 새 고기는 꼬리 쪽이 맛있다.'

출처_시집 <내 몸에 내려앉은 지명 >, 문학동네 2016
시인_김정환: 1980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지울 수 없는 노래> <황색예수> <텅 빈 극장> <순금의 기억> <해가 뜨다> <거푸집 연주> <내 몸에 내려앉은 지명> <죽은 것과 산 것>등이 있다.

 아내도 나도 없는 자리에서, 인간의 희망을 씹어 죄를 삼킨다.
아내도 나도 없는 자리에서, 인간의 희망을 씹어 죄를 삼킨다. ⓒ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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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끓여놓고 간 도미 대가리 매운탕을 데워 먹으며 화자가 느끼는 애틋한 그리움은 현재의 사소한 시간에만 머물지 않는다. 화자의 상상력은 먼 백악기까지 이르며 애틋함의 거리(距離)를 늘인다. 아내도 나도 사라질 정도로 아득한 이 그리움의 크기는 얼마나 큰가. 해도, 맵고 짜고 춥고 끔찍한 동굴 속 같은 시간을 함께 지나오지 않았다면, 그 세월의 얼굴 살들을 다 발라내고 도미 대가리의 두개골 같은 그 세월의 뼈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리움 따위 그리움의 크기 따위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리움이 단절과 고독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실은 커다란 사랑의 모든 "살갗"임을 이제야 알겠다. 더 늦기 전에 도미 대가리 구하러 가야겠다. (김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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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시인#도미대가리매운탕#내몸에내려앉은지명#한국작가회의#시분과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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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오늘

김근 (hanjak1118) 내방

(사)한국작가회의는 이 땅의 대표적인 문인단체로서 표현의 자유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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