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2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추미애 법제사법위원장에게 발언권을 요청하고 있다. ⓒ 남소연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서울동작을)이 1일 자신의 페이스북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나 의원은 "이 대통령의 기념사는 하메네이 사망 작전과 관련해 미국을 비판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나 의원의 글을 면밀히 뜯어보면, 이는 대통령의 발언 취지를 자의적으로 왜곡하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힘의 논리에 의해 국제규범 질서 무너지고 있다"가 미국 비판이라고?
가장 먼저 짚어봐야 할 대목은 이재명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언급한 "힘의 논리에 의해 국제규범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라는 문장을 미국의 이란 공습 작전에 대한 비판으로 둔갑시킨 점이다. 나 의원은 이를 두고 "다른 자유진영 동맹국들과 확연히 차이나는 스탠스"라고 몰아세웠다.
하지만 현재 국제사회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 등 전 지구적인 불안정성 속에서 보편적 가치와 규범이 위협받는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대통령이 원론적인 수준의 국제 질서 회복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이를 특정 작전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해 '반미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아전인수격 해석이다.
현실적인 국제 관계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미국의 행보가 언제나 국제 규범에 완벽히 부합했던 것은 아니다. 최근 미국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과 안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의 국제 규범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무시하며 힘의 논리를 앞세워온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동맹국들에게까지 상당한 부담을 지우며 자국 우선주의를 관철하려는 이러한 횡포에 대해 나 의원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무조건적인 수용만 반복해야 한다는 것인가.
오히려 외교적 현실을 고려할 때 특정 국가를 직접 거론하며 비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제 규범'과 '힘의 논리'라는 보편적인 언어를 빌려 국제사회의 자성을 촉구하고 국익을 대변하는 것은 주권국의 수장으로서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다. 이를 두고 동맹의 위기 운운하며 대통령의 발언 취지를 왜곡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주권적 위상과 외교적 자율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민주노총·조국혁신당이 '여권'?
또한 나 의원은 이번 이란 공습에 대한 외교 당국의 반응이 '역내 긴장 완화'라는 원론적 수준의 언급에 그쳤다며 비판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우리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우리는 북한 핵문제의 당사국으로서 국제 비확산 체제의 수호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해오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나 의원은 이러한 공식적인 외교적 수사들을 완전히 무시한 채 정부가 마치 이란의 편에 서거나 미국의 입장을 배격하고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이는 명백한 사실 왜곡이며 대외 정책에 대한 정당한 비판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더욱 황당한 지점은 이른바 '여권'에 대한 정의다. 나 의원은 김민석 국무총리의 친형인 김민웅 목사, 참여연대, 민주노총, 조국혁신당 등을 '여권'으로 묶어 비판했다. 정치적 상식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듯, 시민사회단체와 노동단체, 그리고 원내 야당은 정부·여당의 국정 운영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주체들이다.
이들이 미국 규탄 집회를 열거나 성명을 내는 것을 두고 마치 집권 세력 주변이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단체나 야당을 '여권'으로 둔갑시켜 대통령과 결부시키는 행태는 논리적 비약이다.
철 지난 색깔론까지 등장... 국제정세 격변 속에서 근거 없는 비난에만 몰두할 것인가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1일 자신의 페이스북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두고 미국의 이란 공습을 비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나경원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글의 말미에 등장하는 색깔론이다. 나 의원은 "집권 세력 주변이 이토록 격렬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혹시, 핵을 가진 다음 독재자가 김정은이기 때문은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정부의 외교 안보관을 북한 독재 체제 옹호와 연결하려는 저열한 정치적 공세로 보인다.
북한의 무인기 사건에 대해 '정부의 의도와 무관하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을 두고 "북한에 대한 사과"라고 규정하는 것 역시 불필요한 긴장 고조를 막고 상황을 관리하려는 외교적 노력을 폄훼하는 발언에 지나지 않는다.
한미동맹의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는 것은 대통령의 기념사가 아니라 사실관계를 왜곡해 우방국과의 관계를 이간질하는 나 의원의 가벼운 언행이다. 나 의원은 대통령에게 이란과 북핵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으라고 촉구하기 이전에 본인 주장의 근거들이 얼마나 빈약하고 사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국제 정세가 격변할수록 정치권은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정제된 비판을 내놓아야 한다. 사실을 비틀고 단체의 성격을 왜곡하며 끝내 색깔론으로 귀결되는 나경원 의원의 이번 비판은 대한민국 외교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은 근거 없는 불안감을 조성하는 선동이 아닌 객관적 사실에 기반한 냉철한 정책 비판을 원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