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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가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나서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2019.10.2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가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나서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2019.10.2 ⓒ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월 2일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이병태 카이스트 명예교수를 위촉했다. 같은 날 남궁범 에스원 고문, 박용진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함께 위촉됐다. 청와대는 기업·정치·학계 인사를 고루 배치해 규제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취지의 '통합·실용 인사'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선 직후 논란이 불거졌다. 조국혁신당은 "막말과 혐오를 조장한 자격 미달 인선"이라며 재고를 공개 요구했고, 일부 시민사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은 MBC 라디오에 출연해 "과거 발언이 부적절했지만, 우리 사회가 납득할 만한 해명이 이루어진다면 사회통합 차원에서 봤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요지는 분명하다. 이번 인선을 '사회통합'의 맥락에서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단순하다. 통합이라면 무엇이든 허용되는가. 통합에도 최소한의 기준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의 자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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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합리화위원회는 대통령 직속 기구로,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을 통해 확대·개편됐다.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으면서 위상은 한층 격상됐다. 부위원장은 총리급으로 분류된다. 정부 각 부처가 신설하거나 강화하려는 규제를 심의·조정하고, 정책 추진의 속도와 방향을 조율하는 기능을 맡는다.

이는 형식적인 자문기구가 아니다. 정부 정책의 '마지막 관문'에 가까운 자리다. 따라서 이 자리는 단순한 전문가 영입을 넘어선다. 국가가 공적 권위를 부여하는 행위이며, 정부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자리다. 인선의 무게가 가벼울 수 없는 이유다.

이 교수는 2021년 <이코노미조선> 기고문에서도 "부동산 불로소득은 죄가 아닙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법적·형식적 의미에서 틀린 말은 아니다. 자본소득은 제도 안에서 허용된 소득이고, 투자 자체를 범죄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죄가 아니다'라는 명제가 곧 '공익적으로 바람직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 칼럼에서 이병태 교수는 "노동소득이 자본소득보다 더 신성하거나 도덕적일 이유는 없다"라고 말한다. 노동소득 역시 사회적 수요와 구조의 산물이라는 지적은 경제학적으로 일정 부분 타당하다. 그러나 그 논리를 그대로 확장해 노동과 자본 사이의 사회적 의미 차이까지 지워버리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노동소득은 최소한 자신의 시간과 삶을 투입한 대가라는 점에서 공동체 구성원 대부분이 접근할 수 있는 소득 형태이지만, 자본소득은 자산 보유 여부에 따라 기회 자체가 구조적으로 갈린다. 출발선이 다른 현실을 외면한 채 두 소득을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불평등의 문제를 설명하기보다 희석하는 효과를 낳는다.

결국 규제개혁위원회가 누구를 위한 개혁을 지향할 것인지, 시장의 효율성과 함께 사회적 균형을 어떤 기준으로 조율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통합을 말한다면, 특정한 시장 철학의 일관성만이 아니라 공익과 형평을 함께 고려하는 균형 감각이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왜 과거 발언이 다시 소환되는가

이병태 교수는 경제·경영 분야에서 활동해 온 학자지만, 과거 여러 차례 논쟁적 발언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그는 한일 관계 논쟁 과정에서 "친일은 당연하고 정상적인 것"이라는 취지의 글을 SNS에 게시했다. 일본과의 협력 문제를 둘러싼 비판 여론을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표현이 사용됐고, 이는 단순한 외교관계 논쟁을 넘어 식민지 경험과 역사 인식을 둘러싼 논란으로 확산됐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도 그는 사회적 추모 분위기를 두고 "이 사회의 천박함의 상징"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세월호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국가 책임과 공동체의 윤리를 묻는 사건이었다. 그 기억과 애도의 과정을 폄훼하는 듯한 언어는 유가족과 시민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청년 세대를 향한 발언 역시 논란이 됐다. 이른바 '헬조선' 담론을 비판하며 "헬조선이라 빈정대지 말라"라는 취지의 글을 남겼다. 청년층의 좌절과 구조적 문제 제기를 과장된 피해 의식으로 보는 듯한 어조였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세대 간 공감 대신 단정과 훈계의 언어가 사용됐다는 비판이었다.

또한 그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두고 "사기"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정책 논쟁 과정에서 거친 언사를 사용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정책 비판은 자유다. 그러나 공직에 요구되는 것은 단지 견해가 아니라 표현의 절제와 책임이다.

이 밖에도 교수 재직 시절 음주 상태에서의 부적절한 행위 의혹으로 수사를 받아 직위해제 조치를 받은 사실이 있다. 이후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지만,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 기준과 관련해 이번 인선에서 다시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과거 행적이 다시 소환되는 이유는 정치적 성향 때문이 아니다. 공적 기억(세월호), 역사 인식(친일 논란), 세대 문제(청년 담론)에 대해 보인 태도가 공직의 자격에 맞는지를 묻는 것이다.

통합은 무조건적 포용이 아니다

홍익표 수석이 사회통합 차원에서 이병태 교수의 인선을 봤으면 좋겠다고 한 발언은 오히려 중요한 전제를 드러낸다. 통합에는 조건이 있다는 것이다. "납득할 만한 해명"이라는 표현 자체가 기준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통합은 서로 다른 사람을 한 자리에 앉히는 기술이 아니다. 통합은 최소한의 공동 규범을 공유하자는 약속이다. 그 최소 기준은 분명하다. 역사 문제를 단순한 진영 구도로 재단하지 않을 것. 국가적 참사와 희생을 조롱하거나 폄훼하지 않을 것. 세대와 집단을 자극적 언어로 갈라치지 않을 것.

보수 인사를 기용하는 것이 통합의 상징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성찰과 설명 없이 자리를 부여하는 것은 통합이 아니라 갈등의 재점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

사과 없는 통합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번 논란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은 당사자의 분명한 해명과 사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그런 표현을 사용했는지, 지금도 같은 생각인지, 공동체의 상처에 대해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가 먼저 밝혀져야 한다. 통합은 망각이 아니다. 통합은 기억을 공유하는 과정이다. 과거의 발언이 공동체에 상처를 남겼다면, 그에 대한 성찰과 사과는 선택이 아니라 최소한의 예의다. 그리고 분명히 말하자.

이병태 교수는 사과부터 해야 한다. 하지만 자리를 얻은 뒤에 하는 사과는 진짜 사과가 아니다. 임명 이후의 사과는 자리를 지키기 위한 해명으로 읽힐 가능성이 크다. 진짜 사과는 자리를 조건으로 하지 않는다. 스스로 책임을 인정하는 용기에서 나온다.

국민통합과 사회통합은 구호가 아니다. 통합은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잘못된 언행이 있었다면 인정하고, 상처를 준 표현이 있었다면 고개를 숙이며,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 그 위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정책을 논의하는 것. 그것이 통합이다.

기준을 버린 통합은 결국 또 다른 분열의 시작이다. 상처를 덮는다고 치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리 채우기가 아니라, 아픔 앞에 멈춰 서는 통합의 품격이다.

위촉(委囑)은 부탁하여 맡기는 일이다. 국가는 그 사람의 이름을 빌려 자리를 맡기고, 그 사람은 그 이름으로 공동체의 책임을 떠안는다. 이병태 교수는 자리를 맡기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사과와 성찰은 직위의 부속물이 아니다. 그것은 정부 요직을 지키기 위한 공직자의 쇼(show)가 아니라, 자신의 발언과 행적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건네야 할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다.

#이병태#규제합리화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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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에 행복과 미소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대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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