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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는 간첩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국가는 아버지를 고문했고, 그 자식들의 미래까지 걷어찼습니다."

1976년, 전남 여수의 작은 섬 적금도에서 태어나 일찍 군산으로 넘어와 배를 타며 생계를 이어가던 24살 청년 김정구의 삶은 조업 중이던 바다 위에서 느닷없이 중단되었다. 군산 앞바다에서 조업 중 갑자기 찾아온 해경 배에서 나타난 경찰들은 김씨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를 체포해 군산경찰서 지하 유치장으로 밀어 넣었다.

그로부터 48년이 흐른 2024년 7월, 평생 억울한 마음에 재심이라도 해 진실을 밝혀야겠다던 김씨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그의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는 그는 다시 절망에 빠졌고, 결국 김씨는 그해 말, 억울함을 풀지 못한 채 끝내 눈을 감고 말았다.

하지만 2025년과 2026년, 사건의 몸통이자 주범이었던 신명구와 동료 고 신충관이 잇따라 무죄를 선고받으며 죽은 김정구씨가 외쳤던 진실이 비로소 세상을 향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경찰의 구둣발이 앗아간 청년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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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경찰서 지하 유치장은 비명소리조차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는, 완벽히 폐쇄된 공간이었다. 왜 잡혀왔는지도 모르는 김씨에게 경찰은 다짜고짜 '납북 귀환 어부 신명구를 아느냐'고 물었다. 김 씨는 그저 같은 고향 사람이라 안다고 대답하자, 답변 직후 돌아온 것은 무차별적인 폭행이었다.

수사관의 구둣발은 김씨의 몸을 가리지 않고 두들기기 시작했다. 정신이 들게 하기 위해 수사관들은 김씨에게 찬물을 끼얹으며 고문을 이어갔고, 정체불명의 알약을 먹으라고도 강요했다. 알약을 먹으면 정신이 하나도 없게 되고 멍한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었다.

 김정구 등을 1976년 10월 19일 구속 보고했다는 문서가 존재한다.
김정구 등을 1976년 10월 19일 구속 보고했다는 문서가 존재한다. ⓒ 김정구 가족

수사관들의 폭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김씨를 유치장 창살에 매달리게 하거나 허리와 다리를 구둣발로 짓밟는 가혹행위를 하며 약 일주일 가까이 폭행을 지속하였다.

이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오는 동안 김씨의 몸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고문 직후부터 핏물이 섞인 소변이 나오기 시작했으며, 평생 성생활이 불가능한 신체 불구와 오른쪽 귀의 청력 상실이라는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김씨를 목격했던 신명구씨는 "화장실을 가다 김정구를 보았는데, 고문 당하며 조사를 받는 상황이라 말 한마디 붙일 수 없었다"며 그 참혹했던 현장을 증언했다. 결국 김씨는 경찰이 원하는 대로 "북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허위 자백을 한 뒤에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이라는 판결을 받고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대를 이어간 '반공법'의 저주

판결문 속 형량은 짧았으나, '반공법 위반'이라는 주홍글씨는 김정구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의 앞길까지 철저히 가로막았다. 김씨는 생전 진술서에서 가장 가슴 아픈 기억으로 아들의 입사 취소 사건을 꼽았다. 여수 한국전력공사에 합격해 설레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했던 아들은 당일 직장 상사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아버지가 반공법 위반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들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고, 그 길로 입사가 취소되어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딸 역시 대한항공 입사 시험에 합격하고도 신원조회 벽에 걸려 채용이 거부되었고, 김씨 본인 또한 선장 자격으로 취업하려하거나 시청 청소부로 지원하는 것조차 번번이 무산되었다. 국가는 그를 고문한 것으로 모자라, 그의 가족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며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가난의 굴레에 가두었다. 김씨는 나중에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도 "고문받아 다쳤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배에서 일하다 다쳤다"고 거짓말을 해야 할 만큼 평생을 공포 속에 살았다.

죽어서야 마주한 진실, 남겨진 자들의 숙제

김씨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당시 그가 수사 과정에서 자백했다는 점, 항소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고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2024년 7월 끝내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기각 결정을 받은 김씨는 평생의 한을 품은 채 그해 세상을 떠났다.

 군산지원은 고 김정구 씨의 재심을 기각했다. 불법감금이 명확함에도 재판부는 김정구 씨의 재심사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군산지원은 고 김정구 씨의 재심을 기각했다. 불법감금이 명확함에도 재판부는 김정구 씨의 재심사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 변상철

하지만 이대로 끝날 같았던 고 김정구씨의 명예는 동료들의 무죄 판결을 통해 다시 살아나고 있다. 2025년 4월, 사건의 핵심이었던 신명구씨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백상빈)는 납북 어부 신명구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를 통해 고 김정구씨에게 적용됐던 혐의 자체가 경찰의 고문으로 조작된 허구였음이 증명된 셈이다.

또 지난 1월 29일 또 다른 동료 고 신충관씨가 무죄판결을 받았다. 같은 재판부는 이날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고 신충관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 판결 현장에서 김씨의 아내는 "내 남편은 죽어서도 눈을 못 감았다"며 오열하며 울부짖었다. 그녀는 "똑같이 끌려가 고문 당했는데 누구는 무죄를 받고, 내 남편은 기각 결정문을 손에 쥔 채 죽음을 맞았다"며 국가의 책임을 물었다.

이제 공은 다시 사법부와 국가로 넘어왔다. 고인이 된 김정구씨가 남긴 낡은 진술서는 국가 폭력의 잔인함을 증언하는 유일한 기록이 되었다. 유족들은 고인의 무덤 앞에 놓일 '무죄 판결문'을 위해, 그리고 50년 넘게 이어진 연좌제의 고리를 끊기 위해 또다시 법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국가가 걷어찬 것은 한 청년의 신체만이 아니라, 한 가족의 존엄과 미래였다는 사실을 법원은 이제라도 인정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변상철씨는 공익법률센터 '파이팅챈스' 국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환경,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 그룹입니다.


#파이팅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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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뒷이야기 : 공익법률지원센터 파이팅챈스 백브리핑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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