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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04 10:56최종 업데이트 26.03.04 10:56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진격한 까닭

내가 나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알고리즘이 만든 '거인'

'인간 지성의 종말'
'AI 때문에 사라질 직업 TOP 10'

요즘 유튜브를 켜면 이런 제목의 영상이 끝없이 올라옵니다. 화면 속 AI는 마치 의식을 가진 괴물처럼 묘사됩니다. 인간보다 수만 배 빠른 속도로 글을 쓰고, 정교한 이미지를 순식간에 만들어 내는 모습에 우리는 압도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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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뉴스를 접할 때마다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저 무시무시한 기술이 머지않아 내 쓸모를 비웃으며, 나를 밟고 지나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여기서 잠깐, 생각을 멈추고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셔 볼까요. 그리고 천천히 내쉬면서, 다음 문장을 최대한 느리게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AI는 정말 우리를 파멸하러 온 '거인'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만든 '풍차'일까요?

거인의 팔인가, 풍차의 날개인가

 오늘날 인공지능은 돈키호테의 풍차와 비슷합니다.
오늘날 인공지능은 돈키호테의 풍차와 비슷합니다. ⓒ cadop on Unsplash

돈키호테의 모험 중 가장 유명한 장면이죠. 돈키호테와 산초 눈앞에 서른 개가 넘는 풍차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돈키호테는 눈을 반짝이며 말합니다.

"저기 흉측한 팔을 가진 거인들이 서 있다. 이제 내가 나서서 저 괴물들을 물리쳐야 한다."

산초는 깜짝 놀라 말립니다. 자기 눈에는 그저 곡식을 빻기 위한 풍차일 뿐입니다. 바람을 받아 돌아가는 날개는 거인의 팔이 아니라, 맷돌을 돌리는 구조물입니다. 하지만 돈키호테에게 산초의 말은 겁쟁이의 변명처럼 들립니다. 그는 창을 높이 치켜 들고 풍차를 향해 돌진합니다. 결과는 잘 알고 계시지요. 세차게 돌아가는 풍차 날개에 부딪혀 창은 부러지고, 돈키호테는 말과 함께 멀리 나가떨어집니다.

예전에 저는 이렇게 질문했었습니다. 얼마나 미치면 풍차가 거인으로 보일까? 하지만 지금은 질문이 달라졌습니다.

"풍차가 거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돈키호테에게 있지 않을까?"

돈키호테는 자신을 '세상을 구해야 하는 기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의 정체성과 모험이 의미를 가지려면 무찔러야 하는 무언가가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평범한 풍차도 그의 눈에는 '무찔러야 할 괴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요. 그는 평범한 현실 위에 자신의 역할과 욕망을 덧씌워, 자기만의 현실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AI라는 풍차, 내가 만든 거인

오늘날 인공지능은 돈키호테의 풍차와 비슷합니다. 특히 생성형 AI는 우리가 쓰는 말투를 흉내 내고, 멋진 그림을 만들고, 코딩까지 짜 줍니다. 유튜브와 뉴스는 이 풍차를 거인으로 묘사하는 데 열심입니다.

"AI가 자기들끼리 대화하고, 자체 종교를 만든다."
"초지능 AGI가 인류를 지배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면, 우리가 AI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슬금슬금 바뀝니다. 그때부터 AI는 더 이상 텍스트와 이미지를 편하게 만들어 주는 도구가 아니라, 내 일과 생계를 위협하는 거대한 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산초의 눈으로 다시 보면, 풍차는 여전히 풍차일 뿐입니다. 바람의 힘을 이용해 곡식을 빻는 편리한 기계.

AI의 본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해, 다음에 올 글자나 픽셀을 계산하는 확률적 기계일 뿐입니다. 우리를 돕고 싶어 하는 마음도, 해치고 싶어 하는 악의도,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잘난 척 하는 생각도 없습니다. 문제는 기술보다, 우리가 거기에 붙이는 말들입니다.

"AI가 내 마음을 이해한다."
"AI가 스스로 생각한다."

이런 표현들은, 사실 풍차를 괴물이라고 부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철학의 한 갈래인 현상학은 이 차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우리는 세상을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무엇으로서' 봅니다. 베테랑 변호사에게 AI는 판례 검색을 돕는 편리한 '도구로서' 보일 수 있지만, 신입 변호사에게는 자기 자리를 빼앗는 '악당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같은 대상이라도 자기 입장과 그에 대한 자기 이해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것이죠.

거인을 만들 것인가, 풍차를 돌릴 것인가

결국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나'입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AI는 나의 자리를 빼앗는 거인이 되기도 하고, 내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풍차가 되기도 합니다. 실업자가 될까 두려워하는 이에게 AI는 일자리를 집어삼키는 무시무시한 거인처럼 보일 것입니다. 반대로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이에게 AI는 아이디어를 더 멀리 실어 나르는 든든한 날개가 될 수 있습니다.

자동차의 속도가 빨라졌다고 해서 자동차의 뜨거운 열정이 되살아났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자동차는 그저 잘 작동할 뿐이고, 어디로 갈지 결정하는 것은 운전석에 앉은 인간의 몫입니다. AI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법사 같은 광고 문구와 과장된 이야기들에 속아 기술에 인격이나 신격까지 부여하며 스스로를 위축시킬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는 풍차 앞에서 창을 휘둘렀던 돈키호테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만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건, '나는 AI 시대에 나를 무엇으로서 지향하는가'입니다. 나아가 이 질문이 마음속 다짐으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기술이 바꾸는 일자리와 제도, 그리고 이 변화가 어떤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일어나는지도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AI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시선과 태도, 그리고 사회적 환경에 대한 현실 인식이 함께 갈 때, 우리는 거인으로만 보이던 풍차를 잘 써먹어야 할 강력한 도구로 볼 수 있게 됩니다. 내가 나 자신을 새로운 가치의 편집자이며 창조자로 규정하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합의와 구조에 대한 감각을 놓치지 않는다면,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AI는 평화롭게 돌아가는 유능한 풍차로 모습을 바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조용히 한번 물어보길 바랍니다.

나는 지금, 어떤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AI#일자리#돈키호테#실직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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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진 (dasiosim) 내방

자본 시장에서 26년째 사람 붙들고 가르치는 늙은 팀원이자, 어쩌다 철학 박사가 된 생계형 인문쟁이입니다. 고전 문학과 철학을 소환해 AI 시대에도 사람답게 버티며, 함께 버틸 수 있는 공동체의 가치를 찾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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